어느 날 얼굴에 핀 꽃

1.

by 신성화

서점을 마감하는 방법은 간단했다. 아침에 했던 일을 반대로 행하면 됐으니까. 2층으로 올라가 히터를 끄고, 계단이 삐걱거리는 소리를 들으며 다시 1층으로 내려왔다.


손님의 손길이 닿았던 책을 내 기준에 맞춰 바로 놓았다. 책을 마구 흩어 놓은 건 아니고, 원래 있던 자리에서 조금 틀어져 있었다. 잘 정리해 놓은 곳에 누군가의 손길이 닿았다는 걸 알 수 있을 정도였다. 그저 작은 흐트러짐. 책을 바로 놓자 진열된 책들의 규칙적인 흐름이 단정했다. 정리된 진열대만의 리듬감이 살아있었다.


서점 마감을 끝내고 문을 잠그니 12시 10분이었다. 집까지 걸어가는 길은 보통 10분 정도. 아파트 세 단지만 지나가면 된다. 서점 입구에서 나와 오른쪽으로 한 번, 다시 왼쪽으로 한 번 길을 틀고, 쭉 걸어가다 횡단보도를 한 번 건넌다. 같은 방향으로 계속 직진하다 왼쪽으로 한 번, 오른쪽으로 한 번 꺾으면 집이었다. 걸어서 10분 거리에 위치한 직장은 언제나 친구들의 부러움을 샀다. 매일 출퇴근 전쟁 속에서 들려오는 친구들의 아우성은 내겐 먼 이야기였다.


집에서 서점까지 걸어가는 10분의 시간과 서점에서 집으로 돌아가는 10분의 시간은 하루 중 소중한 시간이었다. 창밖을 통해 바라보는 계절과 달리 직접 계절과 마주할 수 있었기에.


건물들은 매일 똑같은 모습으로 서있다. 좀처럼 변하지 않는다. 아파트 외벽을 새로 칠한다 하더라도 변함이 없다. 하늘과 가로수만 계절의 흐름을 알려준다. 도심 속에서 만날 수 있는 자연이라고는 그 둘 뿐이니까.


특히 가로수가 그 몫을 톡톡히 한다. 하늘거리는 봄바람에 쏟아지는 꽃잎을 맞으면서 드라마 속 여주인공처럼 걷기. 빽빽하게 채워진 여름철 나뭇잎이 만들어낸 그늘로 다니기. 알록달록 물들어 떨어져 내리는 낙엽 구경하기. 추운 겨울밤 두꺼운 옷으로 무장한 채 가로등 빛을 받고 있는 나무 옆을 종종 걸어가기.


그러면 일 년이 지나가는 것이었다. 같은 건물과, 같은 길과, 같은 일상에서 찾는 소소한 재미였다. 나는 늘 변함없이 그 안에 있었고, 변화하는 무언가는 내 안에서 움튼 채로 차곡차곡 머물렀다.


횡단보도에 빨간불이 켜졌다. 나는 걸음을 멈췄다. 도로 위를 지나가는 차들이 적었다. 내가 건널 횡단보도 위로 세 대의 차가 지나갔다. 차가 지나가자 공기를 가른 찬바람이 훅 끼쳤다. 바람에 치인 사람처럼 한 걸음 뒤로 물러섰다.


문득 늘 걷던 길이 내가 아는 길이 아닌 것처럼 느껴졌다. 왼쪽에 보이는 아파트는 우리 집으로 가는 길에 있는 아파트가 맞다. 오른쪽에 있는 건물도 제 위치에 변함없이 그대로 있다. 아스팔트는 아스팔트의 색을 그대로 지니고 있었고, 그 위를 가로지르는 하얗고, 노란 선들도 여전했다.


왜 일까.


6년을 넘게 다니던 길이고, 바뀐 것도 없는데 이상했다. 이토록 해가 한창일 때 집으로 향하는 어색함일까. 집에 가는 길은 늘 어두웠으니까. 외투를 벗어도 춥지 않은 유달리 푹한 날씨 탓일까. 겨울철 집으로 돌아가는 길은 늘 추웠으니까.


몇 년 간 체화된 거리의 공기가 나와 내가 서 있는 곳의 괴리감을 자아냈다. 지켜보는 사람도 없는데 혼자 두리번거렸다. 찬바람이 몰고 온 감정이 낯설었다. 주변의 모든 것이 생소하게 느껴졌다.


차들이 멈춰 섰다. 횡단보도의 신호등이 초록불로 바뀌었다. 나는 걸음을 서둘렀다. 쫓아오는 사람도 없는데 발걸음이 바빴다. 급히 횡단보도를 건너는 걸음조차 낯설었다.

매거진의 이전글어느 날 얼굴에 핀 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