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어진 계단 따라 마음 깊은 곳으로 내려가면
그곳엔 여리게 돋은 잔디밭과 자그만 묘목 한 그루
그 아래 묻어둔 오랜 일기장을 꺼내어 펼친다
철교를 건너는 전철의 덜컹임이 쏟아지고
서툴게 받아든 장미 한 송이가 피어나고
어쩔 줄 모르는 눈물도 철없이 솟아나고
그해 오래도록 흐르던 유행가와
하늘에 다채롭게 스며들던 노을과
한들한들 불어오던 바람까지도
모든 것이 지나간다
마음에 머물게 두었고
드물게 펼쳐보던 날들마저
흔들리는 시월의 햇살로 일기장을 묶는다
처음을 영원히 추억에 묻는 처음의 날
오늘이여 오늘에서야 안녕
비밀정원을 차곡차곡 닫는다
깊고 깊은 계단을 거슬러 오르며
일기장도 잔디도 묘목도 계단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