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 달빛

1.

by 신성화

“작년에 냈던 'Moon'이라는 곡 좋던데. 네가 프라하 다녀와서 쓴 곡 있잖아. 울컥했어. 눈물 날 뻔. 나는 지금도 자주 들어.”


“갑자기 칭찬하면 쑥스러운데.”


진우가 웃었다.


“네가 여태까지 누나의 칭찬으로 무럭무럭 자라났는데, 뭘 새삼스럽게.”


나는 진우에게 농담을 던지고, 남은 청포도주스를 한 모금 삼켰다. 왠지 꺼끌꺼끌한 내 감정이 함께 가라앉기를 바라며.


“너한테 그런 쓸쓸한 목소리가 나올 줄 전혀 몰랐잖아. 다른 사람인 줄 알았어.”


“프라하에 한 번 더 다녀와야 하나? 그 곡이 나름 반응이 좋았지. 요즘은 영.”


진우가 손바닥으로 목의 옆 부분을 쓰다듬으며 말했다. 진우가 쑥스럽거나, 멋쩍을 때 나오는 습관이었다.


“난 언제나 네 노래를 들을 준비가 되어 있다고. 어서 나에게 노래를 들려 달라!”


나는 괜히 진우에게 선물을 바라는 아이처럼 보챘다.


“툭 치면 나오는 음악이 아니라고. 진우의 음악은.”


태준이 음료 두 잔과 케이크가 담긴 쟁반을 테이블에 내려놓으며, 나에게 말했다. 나와 진우를 번갈아 보는 눈빛이 따스했다. 언제나 웃고 있는 눈매는 오늘도 보기 좋게 휘어져 있었다.


“늦은 사람은 할 말이 없는 거야.”


내가 서 있는 태준을 올려다보며 말했다. 태준이 내 옆자리에 앉으며 입 꼬리를 활짝 당겼다.


“그래서 이렇게 치즈케이크를 바칩니다.”


태준이 치즈케이크가 담긴 접시를 내 앞에 놓으며 말했다.


“치즈케이크라니. 넌 날 너무 잘 알고 있어.”


내가 말했다.


진우에게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건넨 태준이 씩, 웃으며 나를 바라봤다.


나를 첫 눈에 반하게 한 태준의 미소. 나는 언제나 태준의 웃는 얼굴에 모든 것이 풀리곤 했다. 거기에 치즈케이크까지 얹혔으니, 어쩔 수 없는 기다림에 조금 지쳤던 마음까지도 다 녹아내렸다.


“이래서 사람들이 서럽다고 하는구나.”


진우가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벌컥 들이켰다.


“너도 그 단발머리 친구랑 잘 되는 거 아니었어? 이름이 지수랬나.”


태준의 말에 진우가 사레들린 듯 콜록거렸다.


“아, 형. 그건 비밀이지.”


진우가 급히 태준의 입을 막아보려 손사래 쳤지만 이미 늦었다.


나는 진우를 보며 “오! 단발머리. 지수!”라고 외치고, 태준을 향해 “몇 살이야?”하고 물었다.


“스물 셋이었나. 오빠, 오빠 하면서 진우를 엄청 잘 따르더라고.”


“다섯 살 차이? 나쁘지 않네. 어쩌다 이렇게 재미없는 애를 좋아한대?”


내 말에 진우가 “사람이 앞에 있는데 그러기야.”하고 궁시렁궁시렁 거렸다.


“‘Moon’을 듣고 사랑에 빠졌대. 이런 감수성의 노래를 부르는 사람은 자기랑 잘 통할 거라던데? 사랑하지 않을 수 없는 남자를 사랑하게 되는 건 자기 운명이라나. 말을 재밌게 하더라고. 통통 튀면서. 진우랑 잘 어울리겠더라.”


나와 태준이 진우는 안중에도 없이 지수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진우가 “형!”이라고 다시 부르자 태준이 알았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이고 웃었다.


“역시. 20대 초반. 좋다. 나도 그랬는데.”


내가 포크로 뜬 치즈케이크를 입에 넣고, 스물셋 무렵의 나를 떠올리며 말했다.


말은 그렇게 했지만 사실 별 건 없었다. 단지 7살 더 어린 나였다. 평범한 스물셋 이었으니까. 그때는 대학생, 지금은 사회인. 그로 인한 생활패턴의 변화 정도를 빼면 큰 차이는 없었다.


그럼에도 앞자리가 2였을 때와 3이었을 때는 무언가 마음의 변화가 있어서, 지나간 일들의 거친 기억은 잊고, 모든 걸 낭만과 추억이라는 이름으로 거창하게 덧칠해 놓고 있었다.


“아쉽겠다. 그때의 내 모습을 못 봐서.”


나는 입안에 가득 퍼진 치즈 향을 삼키고 태준에게 말했다.


“난 괜찮아. 진우한테 들은 이야기로 충분해.”


태준의 말에 내가 “야, 현진우…….”하며 진우를 향해 눈을 흘겼다. 진우는 재빨리 “별 말 안했어.”하며 고개를 도리질 쳤다.


“그럼 지수랑 사귈 거야?”


내가 기습적으로 물었다.


미소 지으며 고개를 가로 젓던 진우의 표정이 약간 어두워졌다. 그리고 조심스레 말을 꺼냈다.


“가끔 나를 알아보고 그런 말을 하는 사람들이 있어. Moon을 듣고 위로를 받았다거나, 잘 통할 것 같다거나 하는 말. 감사하고 좋은 일인데. 어쩌다 한 번 씩 헷갈릴 때가 있어. 물론 내가 작사, 작곡하고 노래까지 불러서, 내가 많이 담겨있는 곡이기는 하지만……. 그 곡이 나는 아닌데. 노래를 부른 나도 나이기는 하지만, 그게 나의 전부는 아닌데. 어떤 사람들은 무턱대고 그 하나의 노래만이 내 모습의 전부인 것처럼 생각해. 그래서 헷갈려. 나랑 사귀자고 하는 사람들이 나를 좋아하는 건지, 그 노래 안에 있는 나만을 좋아하는 건지.”


진우의 말에 나는 지난 일을 떠올렸다. 태준이도 별 다른 말을 잇지 않는 걸 보면 아마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던 것 같다.


Moon이라는 곡이 나오고, 가끔 거리에서 진우의 얼굴을 알아보는 사람들이 생길 무렵, 진우는 어떤 여자를 만났다. 진우의 노래가 너무 좋다며 직접적으로 고백을 해온 그녀를.

몇 번의 만남 후 사귀게 된 두 사람의 끝은 안 좋았다. 진우와 그녀 사이의 자세한 연애사는 모르지만 나중에야 태준에게 전해 들었다. 진우가 조금이라도 다른 감성을 보일 때마다 그녀는 진우를 쏘아댔다고. 태준도 그녀를 짧게 한 번 밖에 보지 못했고, 다른 이야기는 드러머인 희찬에게 들었다고 했다.


안 맞아서 헤어졌어, 라며 휴대폰을 타고 들려오던 그때의 진우 목소리가 귓가에 맴돌았다.


덤덤한 줄 알았더니, 지금 저렇게 깊은 표정으로 말하는 걸 보면 고민이 많은 모양이었다. 내가 한 번도 얼굴을 보지 못한 진우의 그녀는 몇 달 만에 진우를 완전히 헤집어 놓고는 사라졌다. 진우가 자신에게 다가오는 새로운 사람 앞에서 머뭇거리게 할만큼.


우리는 화제를 돌려 이런저런 가벼운 이야기들을 나누었다. 셋이 함께 모인 건 오랜만이었기에 나눌 말들이 많았다.


9시 반쯤 진우는 약속이 있어 먼저 일어나겠다고 했다. 음악작업을 하러 간다는 진우의 뒷모습을, 나는 진우가 카페 문을 나설 때까지 바라봤다.


“쉽지 않은가봐.”


진우에게서 시선을 거두며 내가 혼잣말처럼 말했다.


“나처럼 취미로 하는 게 아니니까.”


태준의 대답이었다. 태준의 짧은 대답에는 많은 것이 담겨있다. 나는 얼핏 짐작하는 진우의 상황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자기가 잘 봐주고 있으니까. 그래도 혹시 너무 힘들어 하면. 나한테도 말해줘. 내가 도울 수 있는 건 돕게.”


“내가 아니라 우리.”


잠시 뜸을 들인 태준이 이어 말했다.


“나한테도 소중한 동생이니까.”


나는 태준의 말이 고마웠다. 함께 보내주는 밝은 미소도.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태준을 향해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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