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나는 청첩장을 가방에 넣었다.
“또 가시에 긁혔구나.”
태준이 나의 손에 새겨진 붉은 생채기를 보며 말했다. 오늘 낮에 장미 가시에 긁힌 상처였다.
“조심성이 없어서 그래. 지금쯤이면 이런 실수는 없어야 하는데.”
내 말에 태준이 걱정스런 표정을 지었다.
나는 “그 표정 뭐야. 별 거 아니야. 이 정도는.”하고 말하며 상처 난 손가락을 좌우로 흔들었다. 태준은 웃고선 한 모금 남은 카페 모카를 삼켰다.
“오늘은 어떤 손님이 기억에 남았어?”
커피를 마신 태준이 물어왔다.
“음, 꼬마 손님.”
나는 나의 실수를 유발한 꼬마아이를 떠올렸다.
“꼬마?”
“응. 엄마랑 같이 온 꼬마 손님.”
“왜? 귀여웠어?”
“엄청. 엄마 생일이라면서 장미꽃을 선물해야 한다잖아. 그러면서 그 작은 손으로 장미꽃을 고르더니 손에 든 돈을 꼬물꼬물 펼쳐 보이더라구. 너무 귀여워서 장미꽃 한 송이를 선물로 더 줬지.”
나는 꼬마 아이의 꼬물거리던 손동작을 따라했다. 태준이 작게 소리 내어 웃었다.
나는 “어때? 잘 따라하는 것 같아?”라고 묻고는, 고개를 끄덕이는 태준에게 말을 이었다.
“좋아보였어. 그 꼬마아이의 엄마. 세상을 다 가진 표정? 그 엄마는 알려나 몰라. 자기 표정이 어땠는지. 그런 예쁜 미소가 있을까 싶더라니까.”
내 얼굴을 가만히 바라보던 태준이 잠시 머뭇거리더니 말을 이었다.
“우리 작년에 갔던 숲 기억나?”
“산수국 피었던 곳?”
“그래. 거기.”
“그럼. 기억나지. 내가 엄청 좋아했잖아.”
내가 밝은 목소리로 말했다.
그날의 기억은 시간이 지나도 잊히지 않을 것이었다. 달빛과 산수국이 어우러진 그 숲. 선선하게 불어오는 바람과 몽환적인 분위기까지 모든 게 완벽했던 그 밤이.
“올해도 갈까?”
“그래.”
내가 신나게 고개를 끄덕였다.
“아, 주인집 할머니는 괜찮으셔? 며칠 전이 할아버지 49재였다고 했잖아.”
문득 떠오른 생각에 내가 물었다.
“글쎄. 그 다음에 못 뵈었어. 아마 할머니 따님이 서울로 모시고 간 것 같아.”
“그렇구나.”
내가 답했다.
“할머니께 악보를 보여 드렸었는데 아직 못 받았어. 나중에 오시면 받아야지.”
“악보? 그때 곡 쓴다고 했던 거?”
“응. 할머니가 피아니스트셨대. 작곡도 할 줄 아시고. 원래는 완성된 다음에 보여드리려고 했는데 중간에 막혀서. 도움을 좀 청해볼까 하고.”
“원래 미완성인 곡은 안 들려주잖아.”
내가 의아한 표정으로 물었다.
“쑥스러우니까.”라고 말한 태준이 말을 이었다.
“이번 곡은 내게 중요한 곡인데. 아무래도 할머니의 조언이 필요하겠더라고. 가끔 할머니가 해주시는 말씀을 듣고 나면 생각이 풀릴 때가 있거든. 막혔던 작업이 풀려. 원래 곡을 들고 가서 물어보지는 않는데 이번에는 직접 찾아뵀지.”
“뭐야. 어떤 이야기였는지 궁금해.”
“비밀.”
태준이 제법 단호하게 말했다.
“이렇게 궁금하게 해놓고 비밀이라고 할 거야?”
“응. 그래도 비밀. 나중에 곡이 완성되고 나면 말해줄게.”
“기대하고 있어도 되는 거야?”
나의 물음에 태준이 자신 있는 말투로 “그럼.”하고 대답했다.
“이제 그만 일어날까? 내일 부모님 댁에 다녀와야 한다면서.”
태준이 자리를 정리하며 말했다.
“자기는 내일 어디 가는 지 진짜 안 알려줄 거야?”
나의 물음에 태준이 장난어린 표정으로 고개를 저었다.
“오늘은 왜 이렇게 비밀이 많아?”
호기심이 많은 나는 점점 더 궁금해졌지만 그런 내 궁금증을 아는 태준은 끝까지 말을 안 해줄 눈치였다.
“곧 알려줄게. 조금만 참아줘.”
태준이 웃으며 일어났다.
“내일 집에 안 간다고 하고 자기 따라갈까?”
내가 일어나려는 태준을 향해 말했다. 그 모습에 태준이 웃더니, 자리에서 일어나 테이블을 돌아 내 옆으로 왔다.
“난 어머님, 아버님께 미움 받고 싶지 않아.”
태준이 한 손으로 나의 가방을 들고, 다른 한 손으로 나를 일으켜 세우며 말했다.
“왠지 오늘 축축 늘어지는 게 아무것도 안 하고 싶고, 집에 가는 것도 귀찮고, 기분이 좀 이상하네.”
더 이상 묻기를 포기한 내가 무겁게 일어나며 말했다.
“어디 아픈 거 아니야? 감기 기운이 있나?”
태준이 나의 이마에 손을 올리려 해서, 나는 태준의 손을 잡았다.
“초등학생 아니구요. 열도 없구요. 좀 춥기는 하지만 아프진 않습니다.”
나는 장난스럽게 말했다.
“그럼 다행이고.” 하고 말하며 태준이 내 어깨를 감쌌다.
“자, 이제 가요. 차는?”
태준이 물었다.
“오늘 운전하기 싫어서 놓고 왔어. 지하철 타고 갈래.”
“내 차 타 그럼. 비도 오잖아. 데려다 줄게.”
“아니야. 자기가 너무 많이 돌아가야 돼. 집이 같은 방향이었으면 얼마나 좋아.”
“괜찮아. 오늘은 특별 서비스.”
“그래? 그럼 바로 차를 타러 가봅시다.”
나는 태준의 허리를 감싸며, 태준을 이끌었다. 태준이 웃으면서 나에게 끌려가듯 걸음을 옮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