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 달빛

2.

by 신성화

집이 엉망이었다. 월요일에 병원을 오간 이후, 집 밖으로 나가지 않고 있었다.


월요일 오후, 병원 응급실에서 눈을 떴을 때, 내 옆에는 진우가 앉아 있었다.


진우는 “옆집 카페 누나가 커피를 전해주러 왔다가……. 나한테 전화했어.”라고 말하고는 굳게 입을 닫았다. 끝을 늘이며 지워낸 말 속에 진우의 놀란 감정이 꾹 눌러져 있었다. 탬핑된 커피가루처럼.


나는 진우에게 “얼굴이 핼쑥해졌다.”라고 말했다.


“누나 얼굴부터 봐.”


내게 그렇게 말한 진우는 한참을 말이 없었다.


진우는 전화를 하러 간다며 잠시 자리를 비우고 돌아온 후에야 푸슬푸슬한 미소를 비추고, 실없는 농담을 건넸다.


집에 박혀 있던 화요일부터 금요일까지의 시간. 진우는 별다른 내색 없이 전처럼 매일같이 메시지를 남겼다.


병원에서 본 굳은 표정의 진우를 떠올리며, 나는 컵에 물을 따랐다. 비쩍 말라붙어 갈라진 입술에 닿은 물기가 따끔했다. 물이 건조한 목을 타고 넘어갔다. 물을 마셔도 계속 갈증이 느껴져 나는 물을 한 잔 더 따라 마셨다.


일단 씻자, 라는 생각으로 나는 목욕가운을 챙겨들고 욕실로 향했다.


쏟아지는 샤워 호스 아래서 한참을 서 있었다. 물줄기가 머리를 세차게 두드려댔지만 머리가 멍했다. 나는 몇 번이나 손가락으로 머리를 꾹꾹 눌렀지만 바뀌는 건 없었다.


방으로 와서 목욕가운을 벗고, 옷장 앞에 서서 입을 옷을 골랐다. 검정 트레이닝 바지와 회색 후드티. 내가 가야할 곳에 필요한 옷차림이었다.


옷을 갈아입고 침대 위에 이불을 대충 펼쳐 정리했다. 방에 너저분하게 흩어진 잡동사니들을 하나씩 주워 제자리로 옮기고, 거실을 지나 현관으로 향했다. 발 한 쪽만 내민 채 손을 뻗어 현관문 손잡이에 걸린 쇼핑백을 안으로 들여왔다.


주방 식탁 위에 똑같이 생긴 쇼핑백이 제멋대로 늘어져 있었다. 손에 들고 있던 쇼핑백에서 죽을 꺼내 냉동실에 옮겼다. 화요일 아침부터 배달된 죽은 한 개 빼고 전부 냉동실에 들어가 있었다. 나는 쇼핑백을 하나씩 접었다.

접힌 쇼핑백을 식탁 한 쪽에 올려두고 싱크대 앞에 섰다. 싱크대 안에는 물로만 헹구고 놔둔 플라스틱 죽 통 한 개와, 숟가락 하나가 있었다. 수세미를 들어 대충 슥 닦아내고는 식기 건조대 위에 올려두었다. 플라스틱 통과 숟가락에서 물기가 뚝, 뚝, 번갈아가며 떨어졌다.


떨어지는 물방울을 바라보며, 나는 싱크대 앞에 멍하니 서 있다가 숨을 후, 하고 짧게 내뱉었다. 아까보다 더딘 속도로 떨어지며 싱크대에 닿는 물방울의 소리가, 내가 토해낸 숨과 번갈아 울렸다. 나는 손에 남은 물기를 탁탁 털어내고 다시 식탁으로 걸음을 옮겼다.


항상 차키를 넣어두는 식탁 위 나무 상자 안에서 차키를 꺼내들고, 소파 위에서 뒹굴고 있던 검정색 캡을 눌러썼다. 모자가 머리를 조였다. 멍하게 흐트러지는 정신을 잡아낼 답답함이 오히려 마음에 들었다. 차라리 모든 걸 꽉 잡아매는 편이 나았으니까.


나는 현관으로 걸어갔다. 가지런히 놓여 있는 하얀색 운동화에 오른발을 끼우다 멈칫하며 발을 뺏다. 지난 4월. 그의 생일에 함께 맞춘 커플 신발. 나는 신발장을 열어 하얀 운동화를 넣고, 검정색에 하얀 로고가 새겨진 운동화를 꺼내 신었다.


차를 타고 골목을 빠져나가 오른쪽으로 돌았다. 큰 길과 만나는 길목에 있는 꽃집. 월요일 이후로 문이 닫힌 나의 꽃집이었다.


옆집 카페에서 커피를 사서 나오는 사람들의 얼굴이 밝았다. 그들의 웃음이 한낮의 햇빛아래서 혼자 적막한 꽃집 앞을 지나쳤다.


신호가 바뀌길 기다리며, 나는 꽃집 입구에 붙은 종이의 글씨를 읽었다. 당분간 쉽니다, 라는 안내문이었다. 병원에서 집까지 나를 데려다 준 진우가 자신의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꽃집 문을 닫으며 붙여 놓은 것이었다.


당분간이라는 말은 잠시 동안이라는 말. 잠시 동안이라는 말은 짧은 시간이라는 말. 언제까지가 당분간이고, 잠시 동안이며, 짧은 시간일까.


마주선 신호등에 좌회전 신호가 켜졌다. 나는 신호가 짧게 느껴졌다.


잠시라는 말의 상대적 의미를 생각하며, 나는 차를 움직였다. 핸들을 잡은 손에 힘이 꽉 들어간 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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