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빈 상자에 남은 물건들을 차곡차곡 담았다. 어떤 표정도 지어지지 않았다. 감정은 사라지고, 바닥에 놓인 물건을 빈 상자 안에 담는 반복적인 행위만 계속됐다. 나는 우리가 담긴 액자를 마지막으로 넣고, 상자의 뚜껑을 덮었다. 내 옆에 놓인 두 개의 상자가 몹시 보기 싫었다.
나는 차에 싣고 갈 두 개의 상자와 집에 있는 똑같은 모양에 비슷한 내용물이 든 두 개의 상자를 모두 불태워 버릴 생각이었다.
알고 있다.
내 행동이 일종의 광기라는 걸.
나는 멈출 수 없었다. 비워내지 않고서는 견딜 수가 없다. 그의 손길이 닿았던, 숨결이 머물렀던 모든 것을. 다 잊어버릴 것이다. 완벽히 멈춰진 채 영원히 과거로만 표현될 모든 것을.
무겁게 짓누르는 상자를 들고 계단을 내려갔다. 한 번 더 계단을 올라 남은 상자를 들었다. 차 트렁크 안에 담긴 두 개의 상자를 피하려 황급히 트렁크 문을 닫았다.
그의 집안은 내가 훑고 간 죽은 생기만이 감돌뿐이었다. 이제 그의 집에는 남은 것이 하나도 없었다. 나는 빈 공간을 빗자루로 쓸었다. 거뭇한 먼지들과 어디서 떨어진 지 알 수 없는 잡다한 부스러기들이 모였다. 쓰레받기에 그것들을 담아내고 쓰레기봉투에 모두 털어 넣었다.
물기가 마른 그의 화장실로 들어가 걸레를 빨았다. 물기를 꽉 짠 걸레를 들고 그의 방으로 들어갔다. 그의 방 한쪽 귀퉁이를 먼저 닦아내고 나는 신발을 벗어 가지런히 두었다. 내가 한 걸음 앞으로 나아가며 팔을 뻗어 바닥을 닦을수록, 하얀 걸레는 검게 물들어 갔다. 나는 그의 방과 거실과 주방까지 모두 닦아냈다.
거뭇해진 걸레를 쓰레기봉투에 던져 넣고 화장실로 가 손을 씻었다. 뽀득뽀득 씻어내고 싶었지만 텅 빈 화장실에는 비누조각 하나 보이지 않았다. 나는 손의 물기를 털어내고, 방으로 들어가 벗어둔 신발을 챙겼다.
허리가 뻐근하게 아파오고, 팔다리가 쑤셨다. 그런 탓이었다.
전신을 두드리는 근육통. 그 때문에 가슴이 조이듯 아파오는 것이었다. 그것뿐이다.
나는 나를 떠미는 빈 공간의 적막함에 서둘러 현관문을 받치고 있던 굽을 발로 밀었다. 열린 채로 고정되어 있던 현관문이 쿵, 하고 닫히면서 뒤이어 띠리릭, 하는 잠금장치의 소리가 들렸다.
무겁게 나를 밀어내는 강렬한 거절.
연달아 울리는 소리들이 내게 영원한 이별을 말하고 있었다. 나는 더 이상 이 집에 올 이유가 없다. 그는 없고, 그가 남긴 흔적들도 모두 사라졌다. 나는 쓰레기봉투를 손가락에 끼우고 빗자루와 쓰레받기를 들었다. 서둘러 계단을 내려가 이미 놓여있던 상자 옆에 들고 온 것들을 내려놓고, 트렁크 문을 닫았다.
나는 닫힌 트렁크 문에 손을 대고 기대,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
황망하다.
지금껏 살면서 처음 써보는 말이었다. 들어보기는 했지만 그 느낌까지는 알지 못했던 말. 지금은 이 말이 아니면 내 마음을 표현할 길이 없었다. 가슴 한 구석이 텅 비어버렸다. 나는 밀려오는 헛헛함이 차올라 자꾸 한숨을 내쉬었다.
“선아씨.”
나는 뜬금없이 들려온 내 이름에, 소리가 들린 쪽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1층에 사는 주인집 할머니의 얼굴이 보였다.
“안녕하세요.”
나는 인사를 건넸다. 오가며 마주칠 때 몇 번 인사를 나눴던 기억이 있었다.
“소리가 들려서. 일을 끝낼 때까지 기다리고 있었어요.”
할머니가 온화한 목소리로 말했다.
“조금 전에 끝나서 이제 막 인사를 드리려던 참이었어요.”
내가 건넨 이 말은 인사치레였다. 사실 그럴 마음은 없었으므로. 이곳도, 이곳에서 그와 관련된 누구도 기억에서 지우고 싶었으니까.
“줄 게 있어서 나왔어요.”
할머니가 검은색 클리어 파일을 건넸다.
“이걸 왜…….”
나는 할머니가 건넨 검은색 파일을 받아 들었지만 이유를 몰라 되물었다.
“태준씨 거예요. 돌려줬어야 했는데…….”
할머니의 입을 통해 나온 그의 이름. 내 머리에도 심장이 달린 것처럼 머릿속이 쿵쿵 울렸다.
“감사합니다.”
나는 파일의 내용을 확인할 생각도 못하고, 고개만 꾸벅 숙여 겨우 대답했다.
상자에 모두 봉인해버린 그의 흔적이 다시 내게로 닿았다. 나는 울렁이는 속을 주체할 수 없어 입속에서 치아를 단단히 맞물렸다. 잇몸과 턱이 아파왔고, 연신 마른 침을 삼켰다.
“그럼 가보겠습니다. 건강하세요.”
별 다른 말을 찾지 못한 내가 상투적인 인사를 건네며 다시 한 번 고개를 꾸벅 숙였다. 앞으로는 전혀 볼 일 없는 사이였다. 나는 이 동네를 절대 찾지 않을 것이었으므로.
“그 사람을 추억할 물건 하나쯤은 가지고 있는 게 좋지.”
차에 오르는 나에게 할머니가 말했다.
나는 그 말이 과도한 관심처럼 느껴져 어색하게 웃었다. 부담스러웠다. 할머니는 내가 그와 나눈 시간의 흔적들을 모두 불태워 버리려는 걸 이미 알고 있는 사람처럼 말했으니까. 깊게 숨겨둔 비밀 일기장을 들킨 사람처럼 민망했다. 내 속에 묻어둬야 할 비밀스런 이야기가 원치 않게 세상에 까발려진 기분이었다.
“도움이 필요하면 언제든 와요. 적적한 늙은이 이야기 동무나 되어준다 생각하고.”
할머니가 말했다.
“네.”하고 대답한 나는 쌩, 하니 차를 출발시켰다.
백미러로 나를 배웅하는 할머니의 모습이 보였지만 금세 외면했다. 할머니의 행동은 내게는 과한 오지랖이라고 여겨졌다. 다시는 만나고 싶지 않은 사이. 할머니와 나 사이에 있는 그가 떠오를 수 있었으므로.
보조석에 던져 둔 검은색 파일이 자동차의 진동에 따라 흔들리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