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할머니가 끓여주신 죽으로 아침식사를 마치고, 거실 테이블에 앉아 차를 마셨다. 따뜻한 차를 한 모금 삼킬 때마다 헛헛한 마음의 크기를 가늠할 수 있었다. 할 수만 있다면 찻물과 차향으로 마음을 가득 채워 텅 빈 공간을 메우고 싶었다.
“그 사람이 할머니와 곡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고 했어요. 저한테는 비밀이라면서. 혹시 기억하고 계신가요?”
나는 어렵사리 그가 남긴 곡에 대해 물었다.
“곡에 대한 이야기라면…….”
할머니는 잠시 기억을 더듬더니 말을 이었다.
“태준이가 이 곡을 만들던 이유를 알아요?”
“아니요. 잘…….”
나는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짐작 가는 것도 없어요?”
할머니의 물음에 나는 이유를 짐작해봤지만 생각나는 것이 없었다.
“저한테는 곡을 만들고 있다는 말이랑 기대해도 좋다는 말밖에 하지 않아서 잘 모르겠어요.”
나의 대답이 머뭇거렸다.
할머니가 나를 바라보는 눈빛에 잠깐의 안타까움이 스쳤다. 나는 말을 꺼내기를 주저하는 할머니를 잠자코 기다렸다.
“태준이는 선아씨와 결혼을 생각하고 있었나봐요.”
할머니의 말씀에 찻잔을 내려놓던 나의 손끝이 떨렸다. 나는 두 손을 마주잡아 떨림을 진정시켰다.
그날, 카페에서의 일이 떠올랐다. 희찬 오빠의 청첩장을 건네던 손길과 엄마에게 장미꽃을 선물했다는 꼬마아이의 이야기를 들을 때의 눈빛. 그는 내게 결혼에 대해 묻고 싶었던 것이다. 나와 같은 집에서, 부스스 눈을 뜨고, 부은 얼굴을 마주보며 웃고, 우릴 닮은 아이를 낳아 가족을 이루는 삶. 그가 원했던 가족이라는 단어. 내 대답을 기다리던 그의 시간.
모르고 있었다. 어쩌면 외면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가 내게 건네려던 그 말을.
주변 친구들이 결혼을 한다고 해서 휩쓸리듯 결혼을 해버리고 싶지는 않았다. 나는 플로리스트라는 나의 직업과 내가 차린 작은 가게를 더 단단히 여물게 하고 싶었다. 내가 더 농밀해질 때까지, 그는 언제나 내 곁에 있을 거라고 믿었으니까. 그때가 오면 내가 먼저 그에게 건네려던 그 말의 타이밍을, 나는 영영 잃었다.
속으로 큰 숨을 삼켰다.
“그이는 다정한 사람은 아니었어요. 그렇다고 큰소리를 내거나 괜한 잔소리를 늘어놓는 사람도 아니었고. 오히려 무심하다는 편에 가까웠죠.”
차를 한 모금 삼킨 할머니가 먼저 말씀을 꺼냈다.
나는 조근조근 이어지는 할머니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할머니의 연세만큼 여문 목소리가 묵은 이야기들을 하나씩 꺼내놓았다.
“전쟁 이후에 우리는 한 동네에서 살게 됐어요. 난리 속에서도 사람들은 살아가더군요. 전쟁이라고 하니, 아주 먼 옛날의 이야기처럼 들리죠?”
할머니가 잠시 말씀을 멈추며 나를 바라보았다.
전쟁은 교과서나 영화 속에서만 보고 듣던 아득한 일이었고, 감히 상상조차 안 되는 고통의 시간이었다. 내겐 먼 듯 가까운 듯 알 수 없는 시절이었지만, 나는 “괜찮아요.”라고 말한 뒤 할머니의 뒷말을 기다렸다.
나의 대답을 들은 할머니가 이야기를 이었다.
“그래도 그때가 우리의 청춘이었어요. 내가 택한 시절은 아니었지만 시절은 그렇게 흘렀고, 내가 바라던 삶은 아니었지만 삶은 이어졌네요. 시간은 지나가더군요. 어떤 시간이든.”
할머니가 옆에 놓여있던 클리어 파일을 펼치고 악보를 읽었다. 악보를 따라 테이블 위를 움직이는 할머니의 손이 음을 집어내고 있었다. 할머니의 손이 멈춘 곳은 그가 남긴 미완의 악보가 멈춘 곳이었다. 나는 마음이 아렸다.
할머니는 악보의 몇 부분을 더 손가락으로 연주해보시더니 클리어 파일을 펼쳐 놓은 채로 말씀을 이었다.
“내가 선아씨의 나이쯤 늦둥이 막내 아이를 병으로 잃었어요. 두 살배기였죠. 우리 집 양반이 생전 안 그러다가 작년부터 그 아이 이야기를 꺼내더니,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자신의 명줄을 알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네요. 저승사자는 그리운 이의 얼굴로 나타난다고 하니까요. 내가 갈 때면 두 사람이나 나를 마중 나오겠죠. 먼저 간 그이와 영원히 그 나이에서 머물며, 내 품에 안겨 있던 막내도.”
남편과 아이, 두 사람과의 이별. 할머니는 저 멀리서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하듯 말씀을 잇고 있었다.
모든 감정이 승화된 데서 나오는 덤덤한 말투. 처음 맞는 영원한 이별 앞에서 거친 파도처럼 요동치던 나는, 그 모습이 어른스럽다고 생각했다. 나는 한 사람과의 이별만으로도 정신을 못 차릴 정도인데, 할머니는 어떻게 차분하게 말씀하시는 걸까.
준비된 이별이었을까. 그래서 생긴 어떤 받아들임이었을까. 이미 알고 있던 헤어짐이라도 아프지 않은 건 아니었을 텐데. 아니면 수많은 이별을 겪어낸 사람의 경험치 일까. 이런 일들도 경험이 쌓이다보면 무덤덤해지는 걸까.
나는 감히 가늠할 수 없었고, 적당한 단어를 찾아내지 못해 말을 잇지 못했다. 아직 나에게는 그만한 경험도, 내공도, 인생도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