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두 사람은 처음에 어떻게 만났어요?”
말을 꺼내지 못하는 내게 할머니가 먼저 물었다. 할머니의 질문은 맥락 없이 느껴질 때도 있었지만 나의 주의를 환기시키기에는 탁월했다.
내가 누군가와의 첫 만남을 기억하는 건 드문 일이었다.
그러나 그와의 첫 만남은 또렷했다.
나는 첫눈에 반한다는 말을 믿지 않았다. 그 사람에게만 빛이 나고, 주위의 모든 사람들은 지워진다는 말을, 나는 속으로 콧방귀를 끼며 들었다. 사랑에 빠진 사람들은 대개 그들의 첫 만남이며, 그들이 보내온 순간들을 미화하기 마련이었으니까.
때로는 이루어지지 못한 짝사랑조차도 아련한 추억으로 왜곡되고, 각색되어 전해지기도 하고.
몇 번이나 그런 경우를 본 뒤 나는 사랑에 대한 어떤 과장도, 어떤 수식어도 한 번씩 걸러들었다.
그와의 첫 만남도 어쩌면 나의 이런 생각들에 단단히 갇혀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내가 그를 처음본 건 신입사원 때였다. 회사에서는 매년 대학생 봉사활동을 주최했고, 나는 담당부서 직원은 아니었지만 지원을 나갔다. 나는 직원으로, 그는 봉사단원으로 회사 행사에 참여한 것이다. 나는 처음으로 겪는 큰 행사에 정신이 하나도 없었고, 아직 모든 것이 낯설었다.
대학생 봉사단의 인원은 200명. 그 와중에 나는 그를 발견했다. 그가 눈에 띄는 타입의 사람이 아니었음에도.
나는 일반적인 도트 무늬가 아닌 점박이에 가까운 무늬가 프린트된 티셔츠를 입고 있었다. 무난하긴 했지만 흔한 디자인은 아니었다. 그런데 그도 나와 비슷한 옷을 입고 있었다. 왠지 눈길이 갔다. 나와 비슷한 옷을 입은 사람이었으니까. 단지 그 뿐이었다.
나는 행사장을 돌아다니며 진행상황을 체크하고, 선배님들의 심부름을 하면서도, 그를 몇 번이고 몰래 곁눈질했다. 그건 내 의지를 벗어난 일이었다. 그를 보려고 해서 본 게 아니었다. 내가 그를 바라본 걸 의식한 뒤에야, 내가 왜 그를 보고 있을까, 하면서 급히 고개를 돌렸으니.
나는 그를 본 게 아니라 그가 입은 옷을 보고 있는 거라고 생각했다. 하얀 운동화, 짙은 색의 청바지, 나와 비슷한 셔츠.
그의 셔츠가 나와 똑같지 않고 비슷하다는 점이 마음에 들었다. 똑같은 셔츠라면 많은 사람들이 알아보고 얘기했겠지만, 비슷한 셔츠이기 때문에 나만 그것의 닮음을 의식하는 편이었다. 어느 누구도 나와 그의 셔츠에 신경 쓰지 않고, 오직 이 셔츠를 입고 있는 나만이 그의 셔츠에 눈길을 줬으니까.
그도 나의 셔츠를 본 것인지 내 쪽으로 시선이 향하는 듯 했다. 어쩌면 그도 나와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을지도 모르겠네, 라고 생각했다.
그의 얼굴이 내게로 향하는 그 찰나의 순간에 나는 고개를 돌렸다. 내가 고개를 돌리는 것이, 그가 내게로 얼굴을 돌리는 것보다 빨랐을 거라고 확신한다.
나는 원래부터 다른 일을 하고 있던 척 했다. 나는 겉으로는 평범하게 일을 하는 듯 보였을 테지만 속으로는 허둥대고 있었다.
그와 눈이 마주치면 지금 내게서 움튼 어딘지 불편한 감정이, 어떤 확신으로 바뀔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던 것도 같다. 내가 그렇게 부정하고, 아니라고 했던 나의 오랜 믿음이. 첫눈에 반하는 일은 없을 거라던 그 말이.
그의 시선이 내게서 떠나간 지 한참이 지나고, 다시 잠깐의 시간이 더 지난 후에야 나는 다시 그를 바라봤다. 한 곳에만 시선이 머무는 걸 들키지 않으려 이쪽저쪽을 살피는 척하면서.
계란형 얼굴에 얇은 검은 테 안경. 이마를 덮은 부드러운 검은 머리카락. 스무 살 언저리는 지났고, 아마 군대도 다녀온 듯 보였다. 그는 때때로 머리카락을 이마 위로 쓸어 넘기며 주위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그 동작이 자연스러워 자꾸 쳐다봤다.
그가 웃었다.
무슨 재미난 이야기를 나눈 걸까. 지금껏 짓고 있던 미소와 달리 환하게 웃으며 활짝 휘어진 입매가 매력적이었다.
나는 멍했다.
이내 그의 미소가 내게로 옮겨왔다. 심장이 평소보다 조금 빠르게 뛰었다. 나는 그를 보고 있지 않을 때조차 그가 이쪽을 바라보고 있는 걸 알 수 있었다. 그건 어떤 느낌이었다. 실제로 그가 나를 보고 있었는지 아닌지는 모른다.
생소한 감정이 나를 흔들어 댔다. 나는 얼마 전에 알게 된 킬릭, 이라는 타갈로그 단어를 떠올렸다. 날아다니며 배 속을 간질이는 나비들. 그런 기분을 나타내는 말. 나는 낯선 단어를 온몸으로 생생하게 체험하고 있었다.
인사 한 번 나누지 않았지만 나의 회상 속 그 사람의 첫 모습은 선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