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 달빛

4.

by 신성화

할머니의 피아노 소리가 멈추었다.


엷은 미소와 함께 할머니의 눈가에 맺힌 눈물이 그렁했다. 나의 눈가도 붉어져 있었다. 무조건적인 슬픔 때문만은 아니었다.


“저 먼저 일어날게요. 할머니.”


녹음 중이던 핸드폰에 멈춤 버튼을 누르며 나는 서둘러 말했다.


할머니는 아무것도 묻지 않은 채, 고개를 끄덕이며 악보를 건넸다.


할머니가 건네준 악보 파일을 받아 들고, 핸드폰과 차키를 챙겨 바삐 차로 향했다. 자동차 스타트 버튼을 누르는 손끝에서 두근대는 심장소리가 들렸다. 나는 달려가고 있었다.


어둠이 내리던 시간은 이내 깜깜해졌다. 남은 몇 시간이 그에게 내 마음을 전할 수 있는 마지막 순간일터였다. 정말 그를 보내줘야 할 시간이 다가오고 있었다.


숲의 입구에 차를 엉망으로 세워두고 급히 차에서 내렸다.


나는 뛰기 시작했다.


철퍽철퍽.


흙길과 신발 밑창이 닿는 소리가 질었다. 빗물이 채 마르지 않은 땅에서 흙탕물이 마구잡이로 튀었다. 신발은 물론 바지까지 엉망이었다.


핸드폰과 스피커를 든 양손에 힘이 들어갔다. 사람의 발걸음이 지워져, 숲의 길로 다시 메워지고 있는 좁은 길을 계속 달렸다. 볼을 스친 얇은 가지에 피부가 따끔했다. 몇 번이나 따끔거리는 피부를 안고 나는 휘청이며 달렸다.


나는 탁 트인 공간과 마주했다. 오랜만인 달음질에 다리가 후들거렸다.


부슬부슬 내리던 안개비가 멎었다.


잠시 가렸던 달빛이 구름 속에서 얼굴을 내밀었다. 달빛이 서서히 비추기 시작했다. 우리가 함께 이곳을 찾았던 그때처럼.


동그랗게 펼쳐진 공간에 산수국이 지천이었다. 그 위로 달빛이 내렸다. 달빛 내린 산수국 꽃잎이 시린 파란색으로 빛났다.


그였다.


나는 숲속 가득히 퍼져가는 그를 맡았다.


핸드폰에 녹음된 곡을 재생했다. 핸드폰과 연결되어 있던 블루투스 스피커에서 음악이 흘러나왔다. 그가 만든, 그리고 내가 덧붙인 우리 이야기의 선율이.


“태준아.”


나는 그의 이름을 큰 소리로 불렀다.


옅은 바람이 머리카락을 스치고 지나갔다.


“이 곡. 완성했어. 듣고 있어? 들리는 거야? 내가……. 내가 꼭 들려주고 싶었어. 당신에게.”


그가 내게 전한 청혼가.


그를 위한 나의 진혼곡.


우리의 음악이 숲속을 흘렀다.


달빛이 내리고 있었다. 고요한 숲에 파란 산수국이 어지러이 춤을 췄다. 그는 숲속 정원을 가득 메우고 내 곁에 잠시 머물렀다. 나는 알 수 있었다.


긴 밤, 푸른빛 피아노 선율은 멈추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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