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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말랑한 마시멜로우 Jan 27. 2024

칼국수 아줌마! 살림살이 좀 나아지셨나요?

(나의 아르바이트 이야기 1)

                                                           (사진: 다음 이미지)

                                                                          

감사하게도, 딸내미가 졸업과 동시에 임용에 합격해 선생님이 되었다.

올해로 3년 차에 접어든 딸내미가 말했다.


"엄마~. 배부른 소리긴 한데,,  아쉬운 것이 있어.

대학교 때 아르바이트 좀 많이 해볼걸 하는....

이제 난 평생 이 일만 해야 되잖아.

사실 난 하고 싶은 것이 엄청 많거든.

아쉬운 대로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이것저것 경험이라도 좀 해볼걸 하는 생각이 들어.

엄마는 대학교 때 아르바이트 많이 했다며?"


 (나의 아르바이트 이야기 1)

80년대 신군부 시절, 난 대학생이 되었다.

신군부는 야간 통행금지 해제와 교복 자율화, 대학생 과외 금지 등의 정책을 발표하고, 3s정책(sport, screen, sex.)으로 국민의 관심을 돌리려 했다.

‘대학생 과외 금지령’은 나에게 청천벽력 같은 소식이었다.

내가 대학생이 되어 제일 하고픈 아르바이트였기 때문이다.

'아~ 이제 어쩌지? 할 수 없다.... 다른 알바라도 찾아보자'


- 칼국수 집 알바 시작 -

난 칼국수 집 알바를 구했다.

한 달 급여 10만 원, 홀 서빙과 잔심부름을 하는 곳이다.

나는 찾아간 날 바로 채용되어 그 자리에서 앞치마를 두르고 테이블을 닦았다.

그곳은 유명 칼국수 집답게 손님이 많아도 너무 많았다.

종업원 언니와 나는, 손님이 들어오면 눈짓으로 싫은 내색을 주고받으면서도 손은 부지런히 칼국수를 나르고 테이블을 치웠다.     


이곳을 총괄하는 카운터 아줌마는 사장님 누이였다.

초등학교 남자애를 홀로 키우는 아줌마는 쉴 새 없이 종업원들을 부렸고, 사소한 것에도 인색했다.

아줌마는 밥 먹는 시간만 빼고 우리가 앉아있는 꼴도 못 봤다.


“테이블 얼른얼른 치워라~, 엽차 빨리 갖다 놔라~, 손님 주문 제대로 받아라~”     


아줌마가 유일하게 베푼 인심이라면 , 잘못된 주문으로 남은 음식을 내게 먹어치우라는 것이다.


"야~ 이거 니가 먹어라. 버리기 아까우니까"


그나마 주방 아저씨와 설거지 이모는 내가 대학생인걸 알고 이것저것 물으시며 친절했다.

     

- 칼국수 집 2주 차 -

칼국수집의 노동강도는 정말 셌다.

나는 뛰어다닐 정도로 많은 손님과 엄청난 무게의 쟁반을 감당 못해 매일 몸살기를 달고 일했다.

하루라도 좀 쉬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지만, 내가 결근하면 그 많은 일을 종업원언니 혼자 감당해야 하니 편치 않았고, 무엇보다 아줌마의 잔소리가 두려웠다.

그날도, 나는 써빙을 하다 아랫도리 힘이 너무 빠져 도저히 서있을 수 없는 지경이 되자 아줌마에게    


'잠시만 room에서 쉬면 안 될까요?“' 부탁했다.


내 맥없는 모습을 본 아줌마는, 어쩔 수 없이 고개만 까닥하며 허락 같지 않은 허락을 해주더니 5분도 채 되지 않아 큰소리로 다시 나타났다.     


“야~ 는 이렇게 바쁜데 꼭 누워 있고 싶냐? 언니 혼자 어떻게 이 일을 다 한다냐? 빨리 안 나오냐”  삿대질은 덤이었다.

   

‘아~ 내가 뭐 땜에 여기서 이런 대접을 받으며 이러고 있나?’ 눈물이 나왔지만 나는 후들거리는 다리를 부여잡고 다시 hall에 나와 칼국수를 날랐다.     


-  칼국수집 3주 차-

우리 대학동아리에서는 여름농촌봉사활동이 한참 준비 중이었다.

나는 2학년 준비위원으로 꼭 농활에 참여해야 했다.

어렵사리 아줌마에게 사정 얘기를 꺼냈다.


"남은 1주간은 봉사활동 끝나고 채우면 안 될까요? 그동안 저 대신 일할 후배도 알아뒀어요"   


내 간곡한 선처에도 아줌마의 반응을 살벌했다.     


“뭐어? 어쩐다고? 하여간 대학생들은 책임감이 없다니까. 그래서 내가 대학생은 안 뽑을라고 했는데. 아무튼 한 달 꽉 안채우면 너에게 한 푼도 줄 수 없으니까 그리 알아라잉. 으이그~환장한다 환장해”  

   

‘내가 뭘 그렇게 죽을죄를 졌단 말인가?’  나는 억울하기도 했지만 아줌마의 일그러진 얼굴을 보는 것이 더 힘들었다.


죄인처럼 고개만 숙이고 있는 나에게 아줌마의 악다구니는 한참 동안 계속됐다.

 "xx.. 오매~ 신경질 난그... xx"

 

“그럼 그만하겠습니다”  나는 끝내 참지 못하고 그곳을 나와버렸다.     


1주일간의 농활을 끝내고 여독을 풀고 있을 때, 나는 두 번 다시 듣고 싶지 않은 아줌마의 목소리를 들어야 했다. 전화가 온 것이다.

  

“니 슬리퍼랑 물건들 가져가, 가게 한번 들려라~”     


‘으윽~’ 난 뭐 하려고 고것들을 찾으러 갔을까? 그냥 '버려 버리세요' 했으면 될 것을....    

나를 보자 아줌마는 애매한 웃음을  흘리며 슬리퍼와 함께 만 원짜리 한 장을 내 손에 쥐여주었다.


“차비해라~~’   

  

‘으윽~’ 난 또 뭐 하려고 그 만 원을 받았을까? 그냥 '됐어요' 했으면 될 것을....

그 만원을 들고 집으로 돌아오는데 정말 내 영혼까지 탈탈 털려버린 기분이었다.

선심 쓰듯 내민 아줌마의 손도 미웠고 습관적으로 움츠려 내민 내 두 손도 미웠다.

그렇게 나의 칼국수 아르바이트는 3주간 뼈 빠지게 일해놓고 만원으로 퉁쳐지고 말았다.

틀림없이, 내 나머지 알바비는 그 아줌마 주머니로 들어갔을 것이다.  

지금은 있을 수 없는 일이지만 80년대에 만연한 갑질이었다.

 

"칼국수 아줌마! 그래서 살림살이 좀 나아지셨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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