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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세사기 피해자 장마철의 생존일기-11

끝났지만 끝나지 않은 계약

by 장마철

※ 이 콘텐츠는 창작된 픽션이며 법률·부동산 정보는 참고용입니다.

작품에 포함된 내용은 실제와 다를 수 있으며 정확한 판단은 반드시 전문가의 조언을 통해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특정 인물, 단체, 기관과는 무관하며, 법적 효력은 없는 창작 서사임을 명확히 밝힙니다.





끝났지만 끝나지 않은 계약


계약 기간이 끝났다.

하지만 마철은 여전히 이 집에 살고 있다.


떠날 수 없었다.
아니 떠날 수 없게 되었다.


보증금도 마음도 그대로 여기에 묶여 있었다.

끝났지만 끝나지 않은 계약이었다.


전세사기 피해자에게 ‘계약 만료’란
그저 하나의 마침표가 아니었다.
또 다른 시작이었다.

절차와 싸움의 감정과 체념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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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야 할 일이 생겼다.

행복주택 예비번호를 기다리고 있었다.
언제 연락이 올지 모른다.


언제든 떠나야 하기에
지금의 거주를 법적으로 증명해둬야 했다.


‘임차권 등기 설정.’


말은 어렵지만 요지는 하나다.

집을 비워도 여전히 이집을 점유하고 있다는 증명.


먼저 집주인에게 전화를 걸었다.
기대한 건 아니다.

역시나 받지 않는다.


마철은 문자를 보냈다.
한 줄 한 줄, 증거를 남기듯 말을 가다듬었다.


“301호 세입자입니다.
계약이 만료되어 퇴거 예정입니다.
연락이 없으셔서, 내용증명을 발송하겠습니다.”


보냈다. 돌아왔다. 반송. 다시 보냈다. 또 반송.

그렇게 몇 번을 돌고 돌아

겨우 임차권 등기를 신청했다.


모든 게 낯설었다.
법률 용어, 신청 절차, 서류 형식,
내용증명 쓰는 일조차.

하나도 쉽게 느껴지지 않았다.

내용증명 한 줄을 쓰는 데
세 번은 손을 멈췄고
우체국에 가는 발걸음은
마치 법원에 끌려가는 기분이었다.


그렇게 몇 날 며칠을 지나
등기부등본에 마철의 이름이 올라갔다.


임차권 등기권자 – 장마철


그 이름 하나. 절차 하나.
작은 시작을 한 것 같았다.


보증금을 되찾은 것도
상황이 끝난 것도 아니지만
마철은 뭔가를 시작해 낸 느낌이었다.


이 사기극 속에서
스스로를 지킬 수 있는
최소한의 선을 넘은 것.


등기 하나.

그 위에 얹힌 마철의 마음 하나.

무너질 것 같았던 하루 하루
마철은 무너지지 않았다.
하나를 끝냈고, 하나를 붙들었다.


이 싸움은 한꺼번에 끝나지 않는다.
매일 조금씩
하나씩 지켜내야 한다.


아무도 대신 싸워주지 않기에.
지금 마철은 또 하루를 버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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