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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세사기 피해자 장마철의 생존일기 -12

사인 하나, 벌금 천만 원

by 장마철

※ 이 콘텐츠는 창작된 픽션이며 법률·부동산 정보는 참고용입니다.

작품에 포함된 내용은 실제와 다를 수 있으며 정확한 판단은 반드시 전문가의 조언을 통해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특정 인물, 단체, 기관과는 무관하며, 법적 효력은 없는 창작 서사임을 명확히 밝힙니다.



사인 하나, 벌금 천만 원


소방점검.
단톡방이 다시 요란해졌다.
이번에도 시작은 401호였다.
건물 관리를 자처하던 세입자.

고마운 사람이었다.


“소방점검 유예신청하라고 하네요.
작년엔 우리 사설업체 쓴거 알죠?

그거 하고

그냥 사인해서 제출했는데
올해는 유예신청만 받겠대요.
근데 저 이번엔 사인 안 할게요.

근데 벌금물게 한다고 뭐라고 하네요...
혹시 사인해주실 분 계신가요?”


아무도 대답하지 않았다.
조용했다.
분위기만 어색하게 흘렀다.


“전 사인 안 할 예정입니다.
안 해도 별 일 없겠죠?”


아무도 책임지지 않았다.

마철은 잠시 고민했다.
‘설마, 정말 벌금이 나오겠어?’
그런데 벌금이라는 단어가 머리를 때렸다. 두려웠다.

마철은 조심스럽게 401호에게 개인 톡을 보냈다.


“고생 많으셨습니다. 제가 해보겠습니다.”


그렇게 담당 소방관의 연락처를 넘겨받았다.


알고 보니 상황은 간단하지 않았다.

지난달에 소방시설 자체점검을 했어야 했는데
건물주도 없고 책임지는 사람도 없으니
그냥 넘어가버린 거였다.


소방관은 안타까운 목소리로 말했다.


“해당 호수 점유자분들께 불이익이 가면 안 돼서
유예신청을 하라고 전달드린 거예요.

경매에 넘어간 집은 유예신청이 가능하거든요.
건물 관리자가 없어 우리도 난감하네요.”


이번 주까지 유예신청서를 제출하지 않으면
1년 이하 징역 또는 천만 원 이하 벌금.
소름이 돋았다.


마철은 잠시 멈춰 섰다.

어릴 적 봤던 멋있던 옆집 소방관 아저씨가 떠올랐다.

친한 동생의 아버지
떨리는 손으로 전화를 걸었다.


“어, 마철이니? 무슨 일이야?”


천천히 설명했다.


“지금 살고 있는 집이 경매에 넘어가서요...
건물주도 없고, 소방점검 유예신청을 제가 해야 한다는데
이게 잘 안 될 수도 있나요?”


소방관 아저씨는 말했다.

"마철이 많이 힘들었겠구나.. 그런 일이 있었네."


아저씨의 말에 마철은 눈물이 나왔다.

체격도 크고 늘 든든해보여서 멋져보였던 아저씨.

그런 아저씨에게 마철은 이런 자신의 어려운 상황을 얘기하고 싶지 않았다.


"그러게요.. 저도 그런 상황일 줄 몰랐어요."



“음... 일단 신청서를 잘 써서 내야 해. 경매에 넘어가서 주인이 없는 상황이잖아?
공문도 못 받았던 상황이라면 그 부분도 꼭 적고.”


마철은 천천히 유예신청서를 작성했다.


“현재 ○○○ 2차 건물은 건물주가 전세금을 지급하지 못해 경매에 넘어간 상태이며 세입자들은 건물 내 소유자가 부재한 상황에서 소방점검에 대한 안내를 개별적으로 받지 못하였습니다.
저 또한 유예신청서 역시 마감 5일 전에 전달받아 늦게 인지하게 되었습니다... 등등... ”


유예신청서를 손에 쥐고 마철은 소방서로 향했다.
법원보다 무겁게 느껴지는 그걸음.

소방서 담당자는 어린 마철의 얼굴을 보고 당혹감을 비쳤다.


“왜 이제 오셨어요? 오늘 마감인데요.”


“마감 닷새 전에 겨우 알았어요...
세입자들은 공문 자체를 받지 못했고요.”


“작년에 점검하신 분께 제가 계속 말씀드렸는데요?”


“네...? 저는 연락받은게 없는데요”


어이가 없었다.

401호가 평소 얼마나 고생한 사람인지 마철도 안다.
하지만 하지 않을 거라면 차라리 일찍 다른 사람에게 부탁했어야 했다.
직장을 다니고 있었다면 누군가는
휴가를 내고 소방서에 갔어야 했을지도 모른다.

모두가 힘든 일은 피하고 싶어 한다.


"연락 드렸는데 자신은 유예신청 못한다고 계속 그래서 저희도 곤란한 상황이었습니다."


“...몰랐습니다. 개별 세대에 연락이라도 갔으면 제가 알았을텐데요. 상황이 이런지라. 잘 부탁드립니다...”


소방관은 친절했다.

“일단 제가 최대한 신경 써볼게요.
유예신청은 회의를 거쳐야 하니까,
결과는 다음 주쯤 나올 거예요.
혹시 거절되면... 과태료 나올 수도 있어요.”


"네 다음해에도 만약 이런일이 있으면 저에게 연락주세요. 제가 신청할게요."


그리고 며칠 후.
마철의 생일.
선물같은 연락이 왔다.


[소방시설 자체점검(작동) 유예신청에 따른 검토 결과 통보]

유예사유: 건물 경매 진행 및 건축주 소재파악 불가

신청결과: 승인


다행이었다.

올해는 넘겼다.
다음 해로 연기되었다.

하나 또 지나갔다.


벌금도 징역도 피했다.


하지만 마음은 여전히 무거웠다.

매번 이런 일이 닥친다.


누군가 책임지지 않으면
결국 그 책임은
가장 약한 사람에게 떨어진다.


그리고
그 가장 약한 사람은


법을 잘 모르는 세입자들이었다.



� 마철의 생존팁

건물이 경매에 넘어간 상황에서
소방시설 자체점검을 하지 못했다면
세입자(점유자)도 벌금이나 처벌 대상이 될 수 있습니다.

이럴 때는 ‘소방시설 자체점검 유예신청’을 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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