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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세사기 피해자 장마철의 생존일기-10

터지는건 물탱크만이 아니었다.

by 장마철

※ 이 콘텐츠는 창작된 픽션이며 법률·부동산 정보는 참고용입니다.

작품에 포함된 내용은 실제와 다를 수 있으며 정확한 판단은 반드시 전문가의 조언을 통해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특정 인물, 단체, 기관과는 무관하며, 법적 효력은 없는 창작 서사임을 명확히 밝힙니다.





터지는 건 물탱크만이 아니었다


어느 날

집에 물이 넘쳤다.

쏟아지는 물소리에 눈을 비비며 복도로 나가보니

물이 뚝 뚝 떨어지고 있었다.


이상하다.

세입자들이 모였다.

꼭대기층에 사는 세입자는 복도에서 물이 심하게 떨어진다고 한다.


물의 근원지를 따라가 보니

건물 옥상 물탱크 배관이 한겨울에 얼어 터져

워터파크처럼 물이 쏟아지고 있었다.


다같이 모여 소방대원도 함께 물탱크배관을 처리했다.

입주민들과 소방대원이 함께 현장을 정리했다.

이런 일에 소방관을 불러 죄송하다며 마철과 입주민들은 고개를 숙여 사과했다.

이 건물에 살고있던 사람들도 몰랐다 누굴 불러야할지.

급해서 입주민중에 누가 소방관을 불렀던 것이다.


누수.


하필 마철이 살고 있는 바로 그 건물.

물탱크도, 정화조도 모두 오래되고 낡았다.

정화조 청소 업체를 불렀다.


옥상에서 터져나온 물은 257톤.


그 달 수도요금은 65만 원을 찍었다.


집주인이 사라진 그 집의 모든 책임은

그 누구도 아닌

점유하고 있는 세입자들의 몫이었다.




친구들과의 만남.


며칠 뒤 오랜 친구들과 저녁 식사를 했다.

간만에 나간 자리. 마철은 오랜만에 기분이 좋았다.

버스를 타고 친구들을 만나러 가는 길

집주인이 잠적한 이후

처음으로 창밖의 풍경이 보였다.

초록색 잎사귀, 부셔지는 햇살.


마철은 이제 슬슬 자신의 상황을 얘기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늘 자존심 때문에 덮어줬던 이야기.


이젠 좀 말해도 되지 않을까.

친구들이 들으면 위로를 좀 해주지 않을까 생각했다.

어렵게 꺼낸 얘기.


밥을 먹다 말고 마철은 입을 열었다

‘그 나 전세 계약한거 돈을 못 돌려 받아. 집주인이 잠적했어.’


오랜 친구 철수는 걱정 어린 시선으로 바라보며 물었다.

“야… 그래서 지금 어떻게 된 거야?”


마철은 그간의 상황을 짧게 설명했다.

.

그 순간 복돌이 툭 내뱉었다.


“야 내가 너 그럴 줄 알았다. 그래서 내가 그때 계약하지 말라고 했잖아?”


순간 마철은 멈칫했다.

지금 그 얘길 왜 꺼내는 거지?


화가 났다.


'내가 안 알아보고 계약한 줄 알아?'

라는 말이 목구멍까지 차올랐지만 마철은 참았다.

마철은 제대로 알아보지 않은게 맞았다.

계약서에 스며든 비 처럼

마음 속 한구석 자리잡은 의심을 거두면 안됐다.

치밀어오는 말을 목구멍 아래로 쓸어 삼켰다.


마철은 생각했다

'복돌은 전세라는 제도 자체에 대해 얼마나 알고 말하는걸까?'


그래 내가 괜히 꼬여서 생각하는걸지도 몰라

그때 내가 그 친구의 진심 어린 말에 귀 기울이지 않은거겠지...


마철은 조심스럽게 물어봤다.

“그때 복돌 니가 그랬었나? 왜 그랬지? 집주인이 좀 이상한걸 눈치챘어?”


복돌은 기다렸다는 듯 말했다.

“그럼~ 너 급하게 계약하려고 했잖아. 큰 돈 넣는데 계약서도 제대로 안 봤지? 그거 딱 봐도 사기지.”


마철은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복돌은 한숨을 쉬며 계속 떠들었다.

“너가 잘 알아 봤어야지. 그거 딱 봐도 사기꾼이구만. 으휴 너 급하게 계약한다 했어.”


마철은 고개를 숙였다.

맞는 말이었다.

공부하지 않은 것도

조짐을 무시한 것도

의심스러운 부분을 넘긴 것도 사실이었다.


하지만 이상하게 마음이 무거웠다.


복돌의 말은 마철에게

그저 ‘나는 안 당했다’는 자랑처럼 들렸다.



“근데 너는 전세는 아예 안살아? 계속 월세로만 살 거야?”

마철은 날카롭게 물었다.


마철은 나는 전세로 살았다.

월세로 사는 복돌보다는 내가 경제적 더 우위에 있다는 이상한 우월감을 은연중에 가지고 복돌에게 말했다.


“나야 뭐… 지금은 돈 없지.

그냥 이렇게 살다가 돈 모으다가 전세살아야지.

아니면 집 산다고 하면 새아버지가 보태주실걸?.”



복돌은 신혼집을 경기 외곽의 공장 인근 신축아파트에 월세로 들어갔다.


경기도 외곽의 위치한 브랜드아파트.

근처에 대기업이 공장을 크게 지어 공급이 많지만

공장이 공사중이라 수요가 없는 지역.

시세보다 터무니 없이 싸게 신축 아파트를 들어갔다.

그 보증금이 마철의 전세금보다 저렴했다.

월세는 마철인근 원룸오피스텔의 가격도 안되는 월세.


복돌의 계약도 만료될 시기가 다가온다고 한다.



마철은 문득 에전부터 살고 싶던,

지금은 올라버린 중계동의 아파트가 떠올랐다.

서울을 기점으로 집 가격이 움직이는걸 보니 경기도도 심상치 않아 보였다.

복돌의 집도 공장이 들어오면 가격이 움직일 것 같았다.

마철은 조심스레 물어봤다.


“아님 매수는?"


복돌은 귀찮다는 듯 말했다.


“야 나 돈 없어 무슨 그냥 이렇게 살다가 돈 모아서 전세 살아야지.

아님 집 산다고 하면 새아버지가 몇 억 정도는 좀 보태주지 않을까?"


"그치 새 아버지가 도와주시겠지 아파트 전세는 위험부담이 적지. 근데 종잣돈이 크게 들어가는데 괜찮겠어? 좋은 기회가 올 때 매수 타이밍을 잡아야하니까"


복돌은 듣기 싫다는 듯 얘기했다.


"아 알겠어 알겠어 잔소리는. 나도 다 알아보고 계약 할거니 걱정 말아. 지금 니가 전세때문에 예민해져서 더걱정이 많은데 내가 알아서 할게."


"그치.. 뭐 너가 돈 못 돌려받은 나보단 잘 알겠지."


마철은 비뚤어진 마음을 애써 누르며 날카롭게 표현했다. 그냥 대화를 마무리 하고 싶었다.


하지만 복돌은

"여튼 너 착하게 살지 말라고했지 너 그렇게 남을 쉽게 믿어서 사기 당한거야”



아파트 전세가 비교적 안전한 건 알고 있다.

하지만 마철이 착하게 살고 어리석어서 전세사기를 당한 것은 아니였다.


복돌은 다가구, 근저당, 확정일자 이런 개념을 모르는 것 같았다.


얘기를 하면 할수록 느꼈다. 부동산에 대해 모른다는걸.



복돌은 씀씀이가 컸다.

돈이 많은 집은 아니었다.

그냥 본인의 상황에 비해 씀씀이가 컸다는 것이다.


복돌은 최근 재혼한 새아버지의 사업을 돕고 있었다.

그 사업을 자신이 물려받을 거라고 했다.

이젠 비빌언덕이 생겼다고 얘기하는 복돌


새아버지의 자녀들은 다른 나라에 살고있어

자신이 그 사업을 물려받아 자신이 부자가 될 것이라고 얘기한다.


복돌은 새아버지가 자신의 큰손주에게 서울 종로에 큰 카페를 차려줬다며

자신의 자녀들도 이제 손주인데

나중에 카페나 큰 돈을 주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하고 있다.


지금은 돈이 없지만 자신이 집을 산다고 하면 새아버지께서 억대 돈을 주지 않을까라는 얘기를 듣는 마철.

복돌과의 대화는 계속 이어나가고 있지만 마철의 생각은 다른 곳에 가있었다.


마철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인정하기 싫었지만 그가 부러웠다.

복돌과 자신은 같은 전공

비슷한 출발점이었는데 언제 이렇게 벌어졌을까.


잘된 친구의 상황에 기뻐해야 하지만

알게모르게 이유 모를 속상함이 밀려온다.

초라해진 자신이 더 초라하게 느껴진다.


분명 마철의 부모님도 최선을 다해 사랑해주셨고 많은걸 주셨으나

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아프다는 속담처럼

친한 친구의 좋은 소식에 마음이 쓰린건 어쩔 수 없게 느껴진다.



마철이 일 얘기를 듣고 복돌은 “나는 그 일 못하겠다”며 손사래를 쳤다.

마철은 자신의 일을 좋아했지만 복돌은 대놓고 그 일을 존중을 가장한 폄하를했다.



화가 났지만 코로나 이후 줄어든 수입

그리고 초라한 현재 때문에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내가 선택한 길이 잘못된 것이라고 느껴졌다.


복돌은 모든 면에서 ‘옳은 사람’처럼 굴었다.

그리고 마철은 모든 면에서 ‘실패한 사람’처럼 느껴졌다.


사업자 리스 차량으로 가져온 큰 suv를 타고온 복돌.

마철은 복돌의 옷차림을 바라봤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명품’로 꾸민 모습.


마철은 물었다.

“야 이거 언제샀어? 이거 구하기 힘든걸텐데.”


복돌은 웃으며 얼버무렸다.


“아 이거.. 그냥 매장가니까 있었어...”


저건 매장에 가도 없는제품이다.


어마어마한 실적을 쌓아야 겨우 겨우 내주는 제품.

저 제품을 구하려면 그 제품 이상의 돈을

명품매장에 써야 한다.


마철은 그제서야 약간 조잡해보이는

복돌의 명품이 눈에 들어왔다.


마철은 한숨이 나왔다.

나는 위로받으려 온 게 아니었지만

지금 이 자리에 앉아 있는 이유를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친구를 보며 비뚤어진 생각을 하는 자신이 너무 초라해진 기분이었다.


위로받으려 온건아니지만 자신의 열등감만 더 드러난 느낌이었다.


이 모임에 내가 왜 나왔을까.


복돌은 다시 옛날처럼 굴었다.


“너 그렇게 살면 안 돼. 목표를 가져야지.”


마철이 본인보다 성과를 이룬 뒤로 그는 잠시 말을 아꼈지만,

본인의 상황이 더 나아졌다고 생각하는 지금 마철의 모든 걸 지적하고 있었다.


만나면 재미는 있었지만 항상 마철은 복돌 옆에서

자신이 ‘잘못 살고 있는 사람’처럼 느껴졌다.

그리고 오늘 그 감정은 더 확실해졌다.


마철의 집 터진 물탱크처럼

마음 속 응어리도 조용히 그러나 확실히 터지고 있었다.


마철의 마음 속 물탱크는

당분간 고쳐질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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