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르지 못한 비행기, 잃어버린 리듬
※ 이 콘텐츠는 창작된 픽션이며 법률·부동산 정보는 참고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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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정 인물, 단체, 기관과는 무관하며, 법적 효력은 없는 창작 서사임을 명확히 밝힙니다.
삶은 조용히, 그러나 무심히 흘러갔다.
계약 기간은 끝나지 않았고,
집은 여전히 그의 점유 아래에 있었다.
임차권, 채권자들이
배당을 요구할 수 있는 기간
배당요구종기일공고를 시작으로
입찰은 시작되었다.
단톡방이 터졌다.
“배당요구요? 저도 대상이에요??”
“언제까지 해야 해요?”
마철은 침착하게 타이핑했다.
“배당요구는 기한 안에 안 하면 돈 못 받습니다.”
마철이는 단호하게 말했다.
“본인 사정 상관없습니다. 지금 안 하면 보증금 한 푼도 못 받아요.”
마철이는 기한을 놓치지 않고 배당요구 신청을 했다.
마철은 비교적 짧아 보이는 배당요구종기일 공고를 보며
'이 기간 집에 없거나 해외출장이라도
나가있는 사람은 배당요구종기일을 놓쳐
최우선변제금을 날리는 일도 생기겠구나.'
라는 생각을 했다.
한 세입자는 배당요구기간 해외유학을 간 상태로 이 날을 위해 귀국했다.
법원에서 정해준 경매 일정은
유찰이 반복될수록 점점 더 뒤로 밀려갔다.
1차, 2차—
끝도 없이 늘어지는 터널처럼,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날들이 계속됐다.
그 사이, 마철이가 할 수 있는 건
그저 ‘살아가는 것’뿐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상해에서 주재원으로 일하던 오랜 친구에게 연락이 왔다.
“야 요즘 많이 힘들다며?
상해 한 번 와. 우리 집에서 푹 쉬고 가.”
그 말은 한 줄기 빛처럼 느껴졌다.
한동안 느껴보지 못했던 설렘이
마철이의 가슴을 두근거리게 했다.
비자를 신청하고 항공권을 결제했다.
이곳을 벗어날 수 있다는 기대—
모처럼 진심으로 떠나고 싶었다.
출국 2주 전
사스 같은 병이 중국에서 생겼다고 한다.
뉴스에서 처음 들은 단어.
‘우한 폐렴’
처음엔 그렇게 불렸다.
곧이어 전 세계를 뒤덮은 공포
코로나 팬데믹.
마철은 문득 어린 시절을 떠올렸다.
사스가 돌았던 시절 뉴스에서 흘러나오던 낯선 단어.
뉴스에는 사람들이 하얀 방호복을 입고 있는 사람들이 나왔다....
그러던 시기
중국에서 전학 온 주재원 친구,
아이들은 그 친구를 '사스 걸려서 한국에 온 거다.' 라며 병균처럼 피했다
그 친구는 한동안 혼자 다녔다.
늘 교실 끝에 혼자 앉아 있었다.
마철은 그 장면을 떠올리며 헛웃음을 지었다.
'무슨 사람이 병균도 아니고 사람을 피해 다니냐. 애들이 어리긴 어렸지.'
사스라는 단어가 뉴스에서 사라지자 그 애는 점점 학교에 섞여 들어갔다.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모두가 잠깐의 공포를 잊었다.
이번에도 그럴 줄 알았다.
'금방 지나가겠지. 일상에 문제 있겠어? 그때처럼 사라질 거야.'
하지만 이번에도 마철의 예상과 다르게 흘러갔다.
계속되는 봉쇄.
닫히는 문
늘어나는 확진자
마철은 그전 해 10월 이미 중국행 항공권을 예매해 둔 상태였다.
위약금이 커서 취소도 망설여졌다.
고민 끝에 마철은 친구에게 연락을 했다.
"거기 분위기는 어때?"
잠시 뒤 친구에게서 답장이 왔다.
"생각보단 괜찮아. 근데 도시 봉쇄가 점점 심해지고 있어. 상하이 밖은 못 나가. 안 오는 게 좋을 것 같아. 분위기가 좀 안 좋아."
며칠 뒤
항공권은 전액 환불됐다.
돈을 마철에게 되돌아왔다.
하지만 되돌릴 수 없는 것이 더 많았다.
그때까지 마철은 알지 못했다.
오르지 못한 건 비행기만이 아니었다는 것을.
"연락드릴게요."
강의 하나, 둘.
마철이의 수입이 조용히 끊겨나갔다.
“선생님, 죄송하지만 지금 집합금지라 수업이 어렵습니다.
다시 시작되면 꼭 연락드릴게요.”
그 말을 마철 수도 없이 들었다.
처음엔 한 주면 끝날 줄 알았다.
2주, 3주, 4달—
다시 수업을 재개하면 또 확진자 발생으로 일주일, 한 달 수업 중단.
2달, 4달, 6달…
그 사이 간간이 들어오는 대체 강의 제안도 있었다.
하지만 마철은
원래 있던 곳이 다시 불러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다른 제안을 계속 걷어찼다.
그리고 돌아오는 건 늘 비슷한 말이었다
“저희 선생님 꼭 필요한 거 아시죠? 그런데 아직 수업 얘기가 없어요. 일 이 주만 더 기다려봐요”
라는 말뿐이었다.
담당자에겐 일 년 넘는 시간 격주로 연락이 왔다.
그때마다 마철은 언제 수업이 시작할지 모른다는 희망을 가졌다.
하지만 그땐 마철은 몰랐다.
아니 이미 알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담당자는 알고 있었을 것이다.
강의시작은 먼 얘기라는 것을.
그 모든 말은 마철을 붙잡아 두기 위한 하나의 수단이었던 걸 마철은 미처 몰랐다.
필요했던 건 일자리였는데
기다리게 만든 건 말 한마디였다.
"연락드릴게요."
그렇게
마철이는 6평짜리 원룸에 갇혔다.
창문 밖 세상은 여전히 존재했지만
그 방 안에서 마철이의 시간은 멈춰버렸다.
작디작은 공간이
점점 더 조여왔다.
세상은 닫혔고
미래는 희미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