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전세사기 피해자 장마철의 생존일기-18

돈을 지키기 위해 쓸 수 있는 건 글과 사진.

by 장마철

※ 이 콘텐츠는 창작된 픽션이며 법률·부동산 정보는 참고용입니다.

작품에 포함된 내용은 실제와 다를 수 있으며 정확한 판단은 반드시 전문가의 조언을 통해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특정 인물, 단체, 기관과는 무관하며, 법적 효력은 없는 창작 서사임을 명확히 밝힙니다.


돈을 지키기 위해 쓸 수 있는 건 글과 사진.


아이러니하게도

집을 계약하니 마철이 절대 못 줄일거라 생각했던

소비가 줄었다.
지금껏 마철은 ‘당장의 욕구’를 충족시키며 ‘미래’를 봉합해왔다.


먹고 싶은 걸 참지 않았고

사고 싶은 건 대체로 샀다.

불안은 소비로 잠시 눌러둘 수 있었고

그게 삶의 전부였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치킨을 고르기 전 계약 옵션이 생각났다.
패딩 하나 사는 대신, 발코니 확장이 생각났다.


이제는 돈이 공중에서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내가 지을 집의 기둥이 된다는 감각이 생겼다.
그게 이렇게까지 마음을 단단하게 해줄 줄은 몰랐다.


그렇게 마철은 소비를 줄여나갔다.


주기별로 가던 호캉스를 끊었다.

한 때 여름마다 디자이너 티셔츠를 몇 개 씩 사고,

시즌마다 택이 다르다는 이유로

아크네 머플러를 바꿨지만

이젠 유행 지난 옷을 돌려입기 시작했다.


'비싼 옷은 유행을 덜 타긴 하네. 그래도 많이 지난 거긴 한데 괜찮아. 나니까.'


이제 마철은 '나를 위한 지출' 을 줄이는 법을 알았다.

가끔은 내가 이렇게까지 아껴야 할까 라는 자괴감에 빠졌다.



무심코 흘러가던 소비를 멈추고

택배도 줄였다.

좋아하던 카페,

배달음식

맛집투어를 끊었다.


집에서 밥을 해먹기 시작했다.


지출을 일단 줄이는 삶을 살기 시작한 것이다.


우산은 가끔 이렇게 말했다.




“너 SNS 감각 진짜 좋은데 뭔가 생산적인 걸 해보면 어때?”

“유튜브도 해보자. 너 웃긴 편이잖아. 내 기준 세상에서 제일 웃겨. 어떻게 그런 상황에서 그런 말이 나오냐 ”


마철이는 늘 웃으며 넘겼다.


“SNS는 얼굴 되는 사람들이 하는 거야.”
“유튜브는 너 앞에서만 내가 웃긴 거야.”


말은 그렇게 했지만
마철이는 사실 누군가 자신의 말이나 행동에 웃어주면
그게 좋았다.


그런 시절이 분명 있었다.


마철이는 늘 웃으며 넘겼다.

우산은 진심으로 마철을 지지하고 격려했지만 스스로를 깎아내리는 데는 익숙했고,

자신에게 무언가 잘하는 게 있다고 믿는 일엔 도무지 자신이 없었다.

아무리 들어도 믿기지 않았고 어떤 말도 마철의 귀에는 닿지 않았다.


전세사기, 코로나, 끊긴 수업, 줄어들었던 수입들...


전세사기 이후 마철은

새벽에 갑자기 벌떡 일어나 숨을 몰아쉴 때도 있었다.

좁은 공간에서 죽을 듯한 공포 때문에 패닉이 와 뛰쳐 나간 적도 있다.

건강염려증도 생겼다.


걱정, 불안을 생기게하는 또 하나의 요소.


괜히 집을 사서 이 고생을 하는게 아닌가.

이전에 하던

취미생활도

맛집도

옷도 다 끊겼다.

그럴 때 마다 마철은 되뇌었다.


'지금 난 살아있어. 누구나 인생에 변수는 있어. 그걸 난 이겨내는 중이야.'


생각을 하나하나 가지 치듯 쳐냈다.

걱정을 해도 해결되는 것과

해결되지 않는 것에 대한 구별을 했다.

숨을 고르고

다시 조용히 일상을 쌓았다.
삶이 생각대로 흘러가지 않는다는 걸 마철이는 이제야 깨달았다.

그 모든 것들이 그가 자신을 믿지 못하게 만들었다.

평생 뭔가를 제대로 해냈다는 기억이 없었다.

새로운 걸 시도할 용기도 에너지도 이미 그를 한참 전에 떠난 뒤였다.




그러던 어느 봄날,
거리 두기가 느슨해지고 햇살이 거리를 덮기 시작했을 무렵
오랜 대학 친구 동기를 만났다.

같은 지방 출신이지만,
스펙도, 외모도, 부모의 경제력도 마철이 보다 한참 앞선 친구 동기.


요즘 SNS을 한다고 했다.


'아… 그건 여유 있는 사람들이나 하는 거지.'


마철이는 속으로 그렇게 생각하며 동기의 노력을 깎아내렸다.
그래야 자신의 초라함이 덜 부끄러웠다.


SNS핫플

집 계약 이후 부담돼서 못 가던 맛집

오랜만에 간 감각적인 공간에

마철은 설렜다.


이제 데이트로는 못 가는 곳

오늘은 동기가 마철의 지역으로 왔기 때문에

마철이 밥을 사야하는 상황이었다.


'통장에 얼마있지...'


아득한 표정으로 마철은 남은 쓸 돈을 계산했다.


좋은 곳에 와도 마음이 불편했다.


하지만 오랜만의 맛집에서

약간의 설렘


사진으로 담기 좋은 음식 앞

마철은 사진을 찍었다.


그때, 동기가 말했다.


“야 마철아, 너 SNS 보면 사진 잘 찍던데? 감성 있게 잘하던데? 진지하게 해 봐.”


마철이는 겉으론 티를 안 냈지만 내심 기뻤다.

우산이 말고 자신의 감각을 누군가 인정해 주는 건 오랜만이었다.

하지만 더 잘하는 사람들에 비하면 나는 한참 부족하다. 속으로 피식 웃었다.


“내가 무슨 SNS야. 예술 전공 알잖아? 감각 있는 애들 많은 거 내 감각은 그냥 평균이야. 그냥 일상이나 찍는 거지.”


그러자 동기가 말했다.
“내 지인도 SNS 해보라고 했거든? 지금 그 사람, 협찬받아서 밥 무료로 먹는다?”


마철이는 피식 웃었다.

‘공짜밥? 궁하진 않아.’

난 그렇게 궁하지 않다. 무슨 무료로 먹어?


저 인플루언서인데요.라는 그 글이 생각이 났다.

식당 가서 주문하고 막무가내로 인플루언서라며 밥을 달라고 했던 그 글.


정당한 댓가라기보다 그냥 무료로 밥 먹는 사람들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전세사기를 당해 본 손해가 컸고

아파트 잔금을 치루기 위해

잠시 힘들 뿐.

나는 그렇게 궁하지 않다며 다시 한번 자신을 가다듬었다.

그냥 사진도 잘 찍고 글도 잘 쓰겠지.


자기 방어였다.

아무리 힘들어도 ‘그 정도는 아니’라는 자존심.


하지만 마철은

매번 잔금 걱정에 소비를 절약하며

큰 스트레스를 받고 있었다.

전세사기만 안 당했어도... 잔금도 안아껴도 그래도 가능한데...


데이트도 못하고.

맛집도 못가고

카페도 못간다.



“기다려봐. 계정 보여줄게.”


안 궁금한 척했지만

매번 데이트 비용으로 10만 원씩 들어갔던 마철

그 소비를 절제하려니 많이 힘들었다.


벌써 반년이 넘었다.


돈을 안쓴지.

조금 솔깃해졌다.

관심 없는 척하며 친구가 보여준 SNS계정을 무심한 척 봤다.


친구가 보여준 SNS 계정을 본 순간 마철은 충격을 받았다.

사진은 엉망. 글도 별로. 감성은 바닥.

그런데도 협찬을 받고 있었다.


‘이건 좀... 내가 발로 찍어도 이거보단 낫겠다.’


그리고 문득, 손에 들린 휴대폰을 내려다봤다.

마철이의 갤러리에는 누군가에게 보여주기 위해 찍은 적 없는

‘내 눈이 좋아한 순간들’이 담겨 있었다.


햇살에 부서지던 테이블 위 커피잔.
겨울 저녁노을 젖은 골목.
비 오는 날 창가 그림자.

그 사진들이 마치 속삭였다.


“새로운 시작을 해도 돼.”


마철이는
오랜만에 작은 자신감이 피어오르는 걸 느꼈다.

잊고 있었던 감각 사라진 줄 알았던 불씨.


장마의 중반,


마철이에게는 비를 피할 작은 우산들이 있었다.


그리고 그 우산 아래 작은 생존의 기록이 자라기 시작했다.





� 마철이의 생존 팁 – 감각을 기록하라

SNS는 외모나 완벽한 감성이 아니라, 꾸준함과 진정성이 핵심.

삶의 고난도 콘텐츠가 될 수 있다.

나만의 시선과 경험은 누군가에겐 위로가 된다.

생존은 기억이 되고, 기록은 무기가 된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