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드벤츠 켈린더와 크리스마스 과자
“유진, 크리스마스 과자를 구울 계획인데 나랑 우리 집에서 같이 만들래?”
“크리스마스 과자 만들기? 좋아. 난 뭘 준비해 가면 좋을까?”
11월 말쯤 한국에 있는 언니 두 명이 모여서 40킬로그램의 김장을 한다는 소식을 들었어요. 요리가 제일 쉽다는 둘째 언니는 보낼 수만 있다면 김장 김치를 택배로 보내주고 싶은 심정이라고 했어요. 겨울에 나는 제철 재료로 대충 만들어도 김장 김치는 맛이 없을 수가 없다면서요. 막 담근 김치 맛이 끝내준다는 말이겠죠. 김장이 끝나면 늘 그랬듯이 돼지고기를 삶아 남은 속 재료로 보쌈을 해 먹을 테고요. 얘기만 들어도 입안에 침이 고여요. 김장 김치는 먹어본 사람만 아는, 말이 필요 없는 맛일 게 뻔하니까요. 한 통 얻어오면 한동안은 부자가 된 것마냥 반찬 걱정 없을 텐데, 아쉬워요.
제 아쉬운 마음을 아는 듯이 같은 동네에 살던 클라우디아가 크리스마스 과자를 같이 만들자고 연락이 왔어요. 클라우디아는 남편이 브레멘의 국제 대학원을 다닐 때 우리 가족의 호스트 패밀리로 만났어요. 미국에서 시작된 호스트 패밀리 제도는 유학생은 현지 적응에 도움을 받고, 호스트 입장에서는 외국 문화를 접할 수 있는 문화 교류 시스템 같아요. 지금은 장성한 남매를 둔 클라우디아는 신혼 시절 일본에서 2년이나 살았고 취미로 일본 전통 꽃꽂이인 이케바나를 배울 만큼 아시아 문화에 관심이 많아요. 우린 종종 서로를 집에 초대해서 식사를 함께하면서 저희는 독일을, 클라우디아 부부는 한국 문화를 조금씩 알아가며 꽤 친해졌어요. 남편이 학교를 졸업한 후에도 개인적으로 친분을 이어가는 사이에요.
그날 클라우디아는 세 종류의 과자를 만들자면서 레시피를 보여줬어요. 밀가루를 반죽해서 발효시켜야 해서 시간이 걸리는 도우는 친구가 오전에 미리 준비해서 훨씬 수월했어요. 첫 번째는 Schwarz-Weiß-Gebäck, 카카오를 넣어 만든 검은 타이와 하얀 도우를 각각 밀대로 밀어서 두 개를 겹쳐 돌돌 말아 0.5cm 두께로 잘라서 구워요. 두 번째는 단추 모양에서 유래한, 이름도 어려운 Husarenkrapferl이란 과자인데 맛있는 만큼 품이 많이 들어요. 도우를 가래떡처럼 길게 밀어서 손가락 한 마디 정도로 잘라 동글게 빚어요. 원통형 나무 숟가락 끝으로 살짝 눌러 가운데에 구멍을 낸 후, 그곳에 달걀노른자 물을 붓으로 바르고 설탕을 쿡! 찍은 뒤에 잼을 주입하면 돼요. 세 번째는 ‘크리스마스 과자’ 하면 제일 많이 만드는, 모양 틀로 찍고 오색찬란한 스프링클을 뿌려 굽기만 하면 되는 가장 쉬운 과자예요.
12월이 되기 전에 독일 초등학교에서도 반마다 돌아가며 요리실에서 과자를 만들어요. 오누이 반에서도 각각 시간 되는 엄마들이 참여해서 아이들과 반 친구들이 크리스마스 때까지 매일 하나씩 먹을 수 있는 충분한 양의 과자를 구웠어요.
크리스마스 달력Adventskalender이라는 것도 있는데 12월 1일부터 24일까지 하루하루 날짜를 열면 선물이 들어 있는 달력이에요. 정확히 말하면 대림절Advent 달력으로 대림절은 성탄절 되기 전, 4주 동안 예수의 탄생을 기다리는 기간을 가리켜요. 아이들에겐 성탄절을 손꼽아 기다리는 동안 지루하지 않게, 설레는 마음을 배가시키는 의식이죠. 집에선 아침마다 달력 안에 든 선물을 확인하고 학교에선 쿠키를 먹으며 기다리는 일은 오히려 커다란 즐거움이 될 테니까요.
어느 해엔 각자 집에서 양말 한 짝씩을 가져와서 그 안에 선물을 넣고 번호표를 붙여 교실 창가에 매달아뒀어요. 선물을 넣으니 주욱 늘어난 양말이 모여 개성 넘치는 선물 꾸러미를 형성했고요. 하나도 같은 양말이 없어서 특별히 순서를 뽑을 필요도 없었죠. 양말에 붙은 날짜가 바로 양말 주인이 선물을 받는 날이고요. 양말을 활용한 크리스마스 달력, 빛나는 아이디어였어요.
친구와 오후 두 시에 만나 둘이서 도란도란 밀린 얘기를 나누며 손발을 척척 맞춰 과자 몇 판을 만들어 오븐에 넣고 빼기를 여러 번, 밖은 벌써 캄캄해졌어요. 서머타임으로 늦춰진 시간을 다시 되돌린 게 무색하리만치 겨울이 하루하루 급속하게 어두워질 무렵이거든요. 그래도 상냥하고 친절한 친구와 함께라 외롭지 않아요. 게다가 이렇게 예쁘고 맛있는 과자도 듬뿍 구웠으니까요. 김장 날 먹는 보쌈만은 못하겠지만 오븐에서 갓 구워진 과자와 차 한 잔도 은근 매력이 있어요. 강철 빛 회색 하늘에 마음이 무너지지 않으려면 예쁘고 환한 것들이 많이 필요한데 그중 하나가 크리스마스 과자 같아요. 직접 만들면 몸은 힘들지만 오븐 열기에 달아오른 부엌 공기는 따뜻하고, 바삭하게 구워져 나온 과자는 보기에도 먹음직스러우니까요. 한 통 가득 담아두면 뿌듯하고요.
독일은 열여섯 개의 주마다 정책이 달라서 열리는 곳도 있지만 제가 사는 동네의 크리스마스 마켓Weihnachtsmarkt은 취소가 되었어요. 화려한 불빛으로 낭만이 가득한, 왁자지껄한 분위기 속에서 굵은소금이 붙은 갈색 빵 브뤼첼Brezel과 따뜻한 와인Glühwein(글뤼와인)을 마시는 즐거움은 사라졌네요. 칠흑 같은 어둠을 밝히는 인공조명의 아름다움도 나름 괜찮았는데 말이죠.
창문마다 걸리는 별 모양 전구와 진짜 나무로 만든 크리스마스 트리 그리고 원형 모양에 네 개의 초를 얹어 만든 대림절 초Adventskranz를 준비해요. 올해는 성탄절 시작 전 첫 주일인 11월 28일에 한 개의 초에 불을 밝히고, 매주 하나의 초를 더해 마지막 주엔 네 개의 초 모두에 불을 붙이며 경건한 의식으로 성탄절을 기다릴 거예요. 크리스마스 달력과 버터 향기 가득한 직접 만든 과자는 어둡고 긴 유럽의 겨울을 견디는 달달한 방법이에요.
*프리즘에서 연재 중인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