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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유진 Jan 29. 2022

독일은 왜 택배 기사님이 전화를 안 하실까

서비스 대신 불편함


“결국, 택배가 한국으로 어제 돌아갔대” 


“오 마이 갓! 택배 트라우마 생기겠어. 독일은 왜 택배 기사님이 전화를 안 하시니?”




“택배 아직이야?”를 한 백 번쯤 듣고 난 후에야 세관(쫄암트Zollamt)에서 편지가 와요. 한국에서 보낸 택배는 세관에 걸려서 한 번, 받는 이와 명패의 불일치로 또 한 번 독일을 찍고 되돌아갔어요. 반송도 황당한데 비용까지 물까 봐 겁먹었는데 다행히 추가 택배비는 없었대요. 얼마나 먼 길을 왔다 갔던지 상자가 아주 만신창이가 됐다고, 한숨 섞인 목소리가 보이스 톡을 타고 전해졌어요. 아들은 군 복무 중이고 형부와는 주말부부라, 언니가 20kg 책 박스를 지하 주차장까지 내려서 우체국까지 가져가서 부치려면 고시 공부하는 딸에게 사정사정 부탁해야 된대요. 택배 한 번 부치려면 보통 에너지가 드는 게 아닌데, 보내느라 들인 품이 아까워요.


2019년 3월 첫 코로나 발병 때, 독일에서는 마스크를 아무도 쓰지 않았고 사기도 어려웠어요. 눈을 맞추고 표정을 읽으며 토론하는 문화가 발달한 유럽에서 얼굴을 가리는 건 굉장히 부정적인 일이에요. 애들이 좋아하는 키티 인형이 이곳에선 인기가 없는 이유가 입이 없어서였어요. 마스크는 테러리스트나 중증 환자가 얼굴을 가리는 용도로 쓴다고 생각하니 그럴만해요. 초반엔 확진자로 오인하는 시선이 따가워서 마스크를 쓸 때 용기가 꽤 필요했어요. 


확진자 수의 급증으로 유럽이 록다운을 공표한 때엔 마스크가 과연 바이러스를 막아주는가를 두고 독일 정부에서 한창 토론했어요. 한국의 모범 사례를 적극적으로 따르며 마스크에 대한 인식이 조금씩 완화됐지만 물량이 확보될 때까지 시간이 필요했어요. 개인은 천으로 직접 만들거나 복면으로 대체했어요. 마스크 구하기 어렵다는 얘기에 기겁한 한국에서 급하게 택배를 여러 차례 보냈어요. 


세관에서는 한국에서 장당 800원에 산 마스크가 인터넷에선 4.95유로(약 5천 원)에 판매된다면서, 가격 차이가 큰 물건을 독일에서 재판매할 가능성도 있고 200개는 너무 많은 수량이래요. 검증되지 않은 마스크는 EU 반입 금지라면서요. 한국의 판매 가격도 보여주고 4인 가족이 쓰기에 절대 많은 양이 아니라고 사정사정했는데 안 통했어요. 정 안된다면 독일에 기부를 하겠다는데 규정상 어쩔 수 없다고요. 눈앞의 마스크를 만져보지도 못하고 도로 한국행에 오르는 걸 지켜보기만 했어요. 


택배의 주 품목은 대부분이 남매에게 필요한 한글책이지만, 가벼우면서 독일에서 귀한 만큼 요긴하게 먹을 수 있는 것들도 담기곤 해요. 미역이나 다시마, 곤드레 나물과 우거지, 무말랭이, 쥐포요. 세관에서 툭하면 편지가 와요. 유럽에서 생산되지 않는 물품이 확인되었다면서 일정 수수료를 내고 찾아가라는! 14일 안에 찾아가지 않으면 다시 돌려보내겠노라는 무시무시한 협박이에요. 우거지는 무의 줄기이고, 무말랭이는 무를 말린 것이라는 사실과 생선을 말린 게 바로 쥐포라는 걸 설명할 때의 신기해하는 눈빛에 처음엔 쫄았어요. 아무튼 집에서 직접 받은 택배가 손에 꼽아요.




또 한 번은 온전히 저의 실수지만 그래도 속상해요. 항공으로 20kg을 보내면 20만 원 상당인데 선박을 이용하면 8만 원 정도니, 무거운 책은 시간이 아무리 오래 걸리더라도 배편을 이용해요. 3개월이 되도록 깜깜무소식인 게 이상해서 운송장을 자세히 살펴보니, 웬걸, 주소가 남편이 혼자 1년간 묵었던 에어비앤비였어요. 그걸 너무 늦게 발견했어요. 이사 온 후의 주소가 같은 동네라 보낸 언니도 헷갈리고 저도 허투루 넘겼어요. 그곳에서도 무사히 받은 적이 있어서 에어비앤비 주인한테 말해두고 무엇보다 세관에 걸리지 않은 적이 없으니 이번에도 제발 걸려라, 하는 기도가 절로 나왔어요. 


택배 보낸 지 넉 달째쯤, 세관에선 확인이 안 돼서 DHL에 전화했는데 기막힌 타이밍으로 마침 전날 돌아갔대요. 코로나 전엔 근 두세 달이면 오던 선박 배송이 이젠 서너 달이 걸려요. 오래 걸리는 게 문제가 아니라, 설마 반송된 건 아니겠지... 그것만은 아니길 바랐는데 진짜 갔더라고요. 돌아간 이유는 주소와 사는 사람 이름이 달라서래요. 독일에선 이사 후 전입신고가 굉장히 중요한데 에어비앤비의 명패와 받는 사람이 맞지 않다고 가버렸어요. 그 먼 길 4개월이나 걸려 온걸, 진짜 너무한다 싶어서 언니에게 바로 비보를 전했죠.


언니는 대번에 "아니, 왜 기사님은 전화를 안 하신다니!" 황당해하며 물었어요. 전화 한 번만 했어도 이런 비효율적인 일은 막을 텐데, '기사님이 전화를?' 생각도 못했어요. 독일은 개인 정보 보호 차원에서 우편물이나 택배 상자에 전화번호를 적지 않아요. 부재중이면 문자도 보내고 경비실에 맡겼다는 등 안내해 주는 친절한 한국의 서비스와는 차원이 달라요. 저도 그제야 깨달아요. 독일은 택배 기사님이 전화를 하지 않는다는 사실을요. 오누이는 매번 택배는 도대체 언제 오냐면서 오매불망 기다리지만, 이젠 넉 달쯤 기다리는 건 일도 아니에요. 세관에 걸려서 비용을 지불하더라도 받기만 하면 좋겠어요. 기대에 부푼 마음이 일순간 깨지지 않게요.

 



요즘은 통관비를 지불해야 할 경우 무조건 우체국으로 찾으러 가야 해요. 코로나 시국에 기사님이 돈을 주고받는 업무는 할 수 없대요. '그래, 합당한 가격을 지불하지 않고 무작정 편리한 서비스를 바라는 건 좋지 않은 거야' 서비스 실종 상황을 맞닥뜨릴 때마다 “서비스 service의 어원은 ‘노예’를 의미하는 라틴어 ‘Servus’다”라는 문구가 형광등처럼 머릿속에서 깜박거려요. 서비스라는 걸 눈 씻고 찾아도 없는 건, 노동자의 인권을 존중하는 독일이라 그런 걸 거야. 집에서 편하게 택배를 받는 건 누군가의 노동이 필요한 일이니까. 무거운 상자를 우체국 앞에서 테이프 박박 뜯어서, 자전거 양쪽 주머니와 아들, 남편 그리고 내 배낭에까지 사이좋게 나눠 이고 지고 나르는 건 절대 억울한 일이 아니라고 주문을 막 외워요. 낑낑거리며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와, 대박이다. 택배를 집에서 편하게 받기가 어쩜 이렇게 어려울까' 어이가 없어요. 고향의 그리움을 듬뿍 싣고 온 한국의 우체국 마크만 봐도 반가운 마음에 불평은 눈 녹듯 사라지지만요.  


*북이오 프리즘에서 연재 중인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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