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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유진 Aug 11. 2018

동치미 국물 간절한 베이킹

누스 에커와 딸기 요거트

언젠가 한 번은 베이킹을 배워봐야지,라고 생각은 하고 있었어요. 그런 마음을 먹을 땐 딱 이런 때에요. 지인이 만들어준 케이크나 빵을 먹으면서 감탄할 때요. 와! 오븐에서 막 구워 나온 빵 먹을 때 낭만이 있잖아요. 빵이 부풀어 오르는 순간의 신기함을 지켜보면서 맡게 되는 따스함이요. 밥이 다 되어 갈 때 맡아지는 밥 내음처럼 오븐에서 빵이 구워질 때도 행복한 느낌이 들어요. 때가 되면 한 번은 경험을 해봐야지. 했는데 마침 그날이 왔어요. 


남편 졸업 선물로 케이크를 만들어도 좋겠다고 결심(?)하고 두 종류의 케이크를 만들었어요. 친구가 흔쾌히 가르쳐주겠다고 했고요. 이 친구로 말할 것 같으면 베이킹이 취미인 남편과 살아요. 남편이 2~3일에 한 번은 주식으로 먹는 일반 빵을 만들고 주말엔 케이크를 만들어 먹는대요. 남편 가족 중에 베이킹을 업으로 하신 분이 있는데 어릴 적부터 곁에서 지켜보면서 저절로 배우게 된 거죠. 독일 남자 대부분이 빵을 굽는 건 아니고요. 아주 특별한 경우예요. 친구는 빵은 만들지 않지만 최소 케이크 정도는 쉽게 만들 수 있다고 했어요. 자기 생일에 두 종류의 케이크를 짠! 하고 내놓을 정도고 직접 먹어보니 너무 맛있어서 도전해보고 싶기도 했죠. 무엇보다 엄청 쉽다는 말에 혹했어요.



친구 생일 때 먹어 본 Nussecke랑 딸기가 제철인 6월에 맞춤인 Erdbeer-Joghurt-Törtchen를 만들기로 했어요. Nussecke는 이름에서 느껴지는 것처럼 반이 견과류예요. 삼각 모양으로 자르고 세 모서리(Ecke)에 초콜릿을 붓질로 발라주었어요. 파이와 비슷한 딱딱한 도우에 잼을 얇게 발라주고 그 위에 버터와 간 하젤 누스(Hasselnüsse) 570g 섞은 것을 얹어 오븐에 구우면 돼요. 한 조각 이상 먹긴 좀 느끼할 정도로 견과류가 많이 들어가더라고요. 사이에 바른 잼은 단맛을 좌우하니 얇게 바르는 게 좋고요. 


딸기 요거트 케이크는 얇은 도우에 반 이상이 딸기와 요거트를 갈아서 섞은 퓌레를 얹고 그 위에 생딸기를 듬뿍 올려 냉장고에서 굳히면 부드러움을 맛볼 수 있어요. 레시피는 일주일 전에 받아서 대충 보고 재료를 준비했어요. 직접 케이크를 만들어 먹을 생각을 하니 은근히 기대도 되더라고요. 친구가 남편에겐 비밀로 했냐길래. 제가 케이크를 만드는 것 자체가 엄청난 일이라 굳이 비밀로 하지 않아도 된다고 말했어요.  


독일 사람이 은근히 달달한 것을 좋아하는 것 같아요. 디저트로 케이크뿐 아니라 초콜릿 아이스크림 푸딩 같은 것을 즐겨 먹더라고요. 주말엔  빵집에 케이크 비중이 확 늘어난 이유가 있었어요. 일요일 오후에 노천카페에서 커피 한 잔과 케이크를 먹으며 여유로운 시간을 보내는 게 큰 행복으로 보여요. 



근데 케이크를 하루 만들어보니 너무 힘들어서 다신 만들지 않겠다고 마음먹었어요. 세 시간 반 동안 두 종류의 케이크를 혼자도 아니고 친구가 가르쳐주는 대로 만들었는데도 죽는 줄 알았어요. 명절날, 전을 한 세 시간 부치고 난 후의 느낌이랄까요. 오븐에서 나는 버터 냄새가 어찌나 느끼하던지요. 처음에 말한 낭만은 금세 사라졌어요. 시원한 동치미 국물이 간절할 만큼요. 동치미 국물 대신 사과 주스를 마시면서 엉덩이 한 번 못 부치고 쉬지 않고 만들었어요. 친구는 계속 엄청 쉽지?라고 묻는데 저한텐 절대 쉽지 않았어요. 무슨 과정이 그렇게 많은지 정신이 하나도 없더라고요. 혹시 언젠가 혼자 만들지 몰라 기록은 했지만 직접 만든 케이크 먹는 걸 포기하는 게 나을 것 같아요.


저한테 낭만은 반찬 쫘악 깔아놓은 곳에서 우아하게 밥 먹는 것이듯, 케이크도 그냥 풍광 좋은 카페에서 진한 커피와 먹는 거 같아요. 누군가 차려준 집밥에 열광하듯이 누가 만들어준 케이크를 먹는다면 모를까. 직접 만들면서 낭만까지 챙기는 건 무리예요. 식구들 반응은 아주 압권이었어요. 세상에서 제일 맛있는 케이크를 맛봤다는 듯이 한 숟가락 떠서 먹으면서 환호하는데 참, 다음에 절대 만들지 말아야지 하는 마음이 잠시 흔들렸어요. 냉동실에 얼렸다가 느끼함이 가실 무렵에 누스 에커를 꺼내 먹으니 맛있긴 하더라고요. 만드는 건 어려워도 먹는 건 역시나 순식간이지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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