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유진 Dec 16. 2018

독일어를 말한 최초의 날

2018년 4월 20일

내가 독일에서 6개월 만에 가장 먼저 진입한 곳은 김나스 틱* 수업이 있는 운동센터야. 한국에서도 3년 동안 꾸준히 했던 운동이 아파트 단지 스포츠 홀에서 있던 스트레칭 발레였거든. 내가 사는 시골 동네도 저렴한 가격으로 운동할 수 있는 곳이 가까운 데에 두 곳이나 있었어. 주인 할머니 마리타한테 물어보니 마침 다니시는 데 한 번 같이 가자시더라고. 그 이후 마리타가 차를 몇 번 태워줬는데 의사소통이 안 돼서 괴로웠어. 그래서 그냥 혼자 가겠노라고 사양했지.  


평일 오전 시간이었는데, 주로 나이 드신 분이 많이 오시는 시간대더라. 다행히 선생은 영어를 잘했고, 한국에도 두 번이나 방문한 적이 있다며 내게 호감을 갖고 잘해줬어. 나를 위해 따로 동작을 영어로 설명해줘서 황송했지. 근데 운동량이 너무 약해서 작년 여름 이후엔 다른 곳으로 옮겼어. 칠십 대 마리타도 더 센 선생을 찾았다며 나한테 소개해줬거든. 확실히 머리부터 발끝까지 온몸 구석구석 운동한 것 같을 만큼 세더라고. 옮긴 곳에서 지금까지 열심히 다녀.  


*김 나스 틱(gymnastic)은 아령이나 볼 같은 기구를 이용하는 체조야. 그나마 나한테 맞는 스트레칭과 가장 근접한 운동인 것 같아. 지금까지 해본 결과, 등에 특히나 좋고 어깨를 쫙 펴는 동작이 많아서  자세 교정도 돼. 


운동하면서는 말이 필요 없어. 선생이 하는 동작을 보고 눈치껏 따라 하면 되거든. 작년 여름 8월부터 시작했는데 말을 한마디 못 하다가(안 하는 게 아니라) 올봄에서야 기적적으로 말을 뱉었어. 날 좋은 날은 야외로 나가서 뛰기도 하는데, 그날은 사람도 별로 없더라고. 나포함 일곱 명 정도. 그중 선두에서 뛰는 여학생을 보며 선생은 나보고 빨리 뛰고 싶으면 앞으로 가라고 그러더라고. 뭐 대충 알아듣는 건 해. 난 튀기 싫어서 괜찮다고 뒤꽁무니에서 천천히 따라가려고 했는데 내 앞 아줌마가 너무 느린 거야. 걷는 수준이랄까. 앞으로 가서 그 학생 옆에 나란히 섰지. 눈웃음으로 인사만 하고. 한 십분 이상 말은 안 했어. 안 했다기보다는 못한 게 더 정확하지만.  




내가 약한(?) 외향형이지만 누가 먼저 말 시키지 않으면 또 막 말하고 그런 사람은 아니야. 근데 그 학생도 외국인한테 말하기가 뻘쭘했나 봐. 내가 독일어도 잘 못 하는 거 알 테고. 그래도 그 친구가 먼저 말을 걸어주길 바랐는데 걔도 그럴 생각은 나처럼 없는 거 같더라고. 말을 못 해서 안 한 것도 있지만, 훈훈한 봄바람을 마음껏 맛보면서 뛰는 것도 괜찮았어. 사실은 머릿속엔 뭐라고 한마디를 할까. 계속 궁리 중이라 마음껏 맛본 건 아니지만. 


둘이 말없이 뛰기만 하는데 뒤에서 선생이 무슨 단어를 말하는 거야. 베비 궁? 어디서 많이 들어본 단어인데 뭐지. 이때다 싶어서 Was ist 베비 궁? 묻는 척하며 말을 걸었어. 근데 더 웃긴 건 내가 발음한 베비 궁을 전혀 못 알아 들어서 한 다섯 번은 더 말했을 거야. (이렇게 베베궁 저렇게 베비 궁) 결국 알아듣고 뭔지 알려주더라. 영어로 하면 워킹이나 무빙 정도 되나 봐. Bewegung은 절대 잊어버리지 못할 거야. 말 걸은 김에 내가 아는 몇 가지 질문을 던졌어.  


"여기에 산 지 얼마 됐어?"

"18년" (독일어 숫자를 조금 알아들어)

"아, 그럼 고향이구나" (하이마트, 고향이라는 단어를 알고 있었거든)

"맞아"

"아하"

"몇 학년이야?" 이 질문은 몰라서 영어로 했어.

 

12학년이래. 김나지움에 다닌다고 해서 내 아이도 올여름에 간다고 했어. 

4월과 5월 두 달에 거쳐 아비투어(대입시험)를 본대. 

무슨 공부하고 싶어? 물었더니만 의대에 갈 거래. 공부 잘하나 봐. (이 말은 도저히  모르겠더라)

한국으로 치면 고 3이라 바쁠 텐데 운동하러 온 일은 참 잘한  일이다, 도 속으로만 생각했지.

어디 대학 가고 싶냐니까. 하노버나 또 어디라고 했어.

좋은 점수받기를 바라, 가 독일어로 뭔지 몰라서 굿 럭 투유! 를 해줬어.


다음 날 독일어 선생인 쇼핑한테 막 자랑했어. 내가 드디어 독일어를 말했다. 근데 몇 학년이냐? 고는 뭐라고 해? 아이투어 보는 학생이었는데 좋은 점수받기를 바란다는 말을 물어서 각각 두 개씩의 표현을 배웠어. 다음번엔 꼭 써먹어야겠어. 어찌 되었든 독일어로 말을 뱉은 최초의 날인 셈이야. 그것도 길게, 대화를 시도했다는 게 중요해. 조금씩 독일어가 들리는 것도 기쁘고.     


"Welche Klasse besuchst du?"

"In welcher Klasse bist du?"


"Ich wünsche ihr alles Gute zu ihrer  Prüfung"

"Ich wünsche alles Gute zu deiner Prüfung  viel Glück!"




작가의 이전글 이런 허튼짓은 처음이라서요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