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루하고 때로는 눈물 삼켰던 적응기
우리 가족만 넓디넓은 유럽 한복판, 독일의 작은 마을에 덩그러니 놓였어요. 처음 6개월 동안 오누이와 같이 보내는 시간이 많았어요. 마치 절대 양육기를 보내듯이. 다른 점은 어리면 함께 있는 일이 그러려니 할 텐데 격리 개별화 끝낸 남매가 다시 절대 양육기처럼 밀착해서 보내려니 힘들고 억울했어요. 첫 번째에 참고 인내한 시간이 떠올라서요. ‘혹시 첫 공생기에 부족한 부분을 만회하라는 하늘이 준 기회일까’라고 긍정적으로 생각해봤지만 두 번째는 역시나 가혹하더라고요.
유치원이든 초등학교든 1시면 집에 오는 남매에게 점심까지 해 먹이고 오후 내내 같이 있다가 저녁을 먹고 잠들 때까지 같은 공간에 있으니 작은 우리에 갇힌 야생 동물처럼 으르렁거렸어요. 한국에선 여덟 살부터 큰아이는 혼자 나가 놀다가 밥 때면 들어왔거든요. 어린 딸은 놀이터에 가더라도 늘 보초병처럼 따라붙어야 하니 솔직히 성가셨고요. 머지않아 작은아이도 엄마 없이 알아서 잘 놀 때가 오겠거니 생각하며 버텼지요. 처음은 즐겁지만 두 번째 반복은 지루했어요.
한국에선 저녁때까지 같이 있을 시간이 별로 없었어요. 각자 친구 만나서 노느라. 각자 생활하다가 잠깐 만나야 반가우련만, 독일에 와서야 남매는 오후의 덩어리 시간을 함께하며 매일 싸웠어요. 부부가 주말이나 휴일에 더 많이 싸울 확률이 높고 은퇴 후 부부가 함께 보내는 시간이 많아지면 갈등이 생기는 것처럼요. 친구와 실컷 놀아야 스트레스도 풀릴 텐데 그러질 못하니 사소한 것에도 예민하게 부딪혔어요. 그 모습을 옆에서 고스란히 지켜봐야 하는 엄마는 미칠 노릇이고요.
딸은 독일 유치원에 가기 전엔 멋도 모르고 신나 했지만, 하루 만에 말이 통하지 않는 이상한 나라라는 것을 알아차리고 두려움에 질려 울었어요. 순차적으로 아이의 적응을 도왔지만, 우는 아이를 억지로 떼어놓고 말았어요. 엄마와 떨어지기 싫어서 우는 아이를 억지로 떼어놓는 일이 어려운 나로서는 여간 괴로운 일이 아니었죠. 겪지 않아도 될 일을 독일에 와서 겪는다고 생각하니 모든 상황이 원망스러웠어요. 아이의 울음은 이틀 만에 그쳤지만 울음을 꾹꾹 눌러 참는 게 눈에 보여서 더 안쓰러웠죠.
아이를 믿었어요. 다섯 살이라는 나이와 한국에서 처음 유치원 갈 적에 엄마와 충분한 공생기를 보낸 후라 어려움 없이 떨어진 경험과 애착의 힘을. 다만 독일이라는 새로운 환경에서 겪는 진통이니 어서 지나길 바랬죠. 아침마다 아이나 엄마나 떨어지지 않는 발길을 서로 다른 방향으로 옮기면서요. 매일 아침, 유치원 창가에 매달린 아이가 하염없이 손을 흔드는 모습을 보노라면 뒤돌아 눈물을 삼켰어요. 적응하고 난 후 어느 날, 아이는 엄마가 보고 싶어서 자기 목에 둘러준 스카프에서 엄마 냄새를 킁킁 맡으며 참았다고 했을 때는 코끝이 찡했어요. 그 시간을 잘 견뎌준 아이가 기특하고 고마워서요.
아이는 환경만 낯선 게 아니라 언어까지 생경한 곳에서 친구를 사귀고 새로운 문화를 익히느라 힘들었지만, 덕분에 부쩍 자랐어요. 나와 다른 말을 하는 친구와 노는 방법뿐 아니라 두려움을 견디고 짧은 시간 안에 그 어려운 독일어를 익혔고요. 낯선 환경을 이겨내는 것을 몸소 체험한 셈이에요. 어디에 있든 엄마는 늘 마음속에 있다는 것까지도요. 남매도 엄마도 최소 6개월은 지독하게 지루한 시간을 보냈어요. 대신 오누이의 우애는 두터워졌고 부대끼며 사는 방법도 시행착오를 거쳐 자동으로 터득했어요. 두 번째 밀착 공생기가 준 선물이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