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의식 벗는 시간
사육제는 기독교 국가에서 부활절이 오기 40일 전에 며칠 동안 벌이는 축제를 일컬어요. 카니발(Carnival)이라고도 하는데 독일어는 Fasching이에요. 사순절(예수의 고난과 죽음을 기억하는 교회 절기)이 시작되기 전 화려한 의상을 입고 마음껏 먹고 노는 행사로 유치원과 초등학교에서는 매년 이맘때쯤 열려요. 아이들은 무슨 복장을 할까 들뜨는 시간이고요.
보통 때는 굉장히 무뚝뚝하고 모범적인 듯 보이는 사람들이 무슨 축제 때만 되면 마음 놓고 변신하고 흥에 취하는 모습이 놀라워요. 작년까진 딸아이는 한 번은 백설공주 한 번은 엘사 공주 스타일로 원피스를 입었어요. 올해는 한국에서 이모가 보내주신 한복과 보라색 드레스 중 무엇을 입을지 고민에 빠졌고요. 작년 이맘때 4학년이던 큰 아이는 마침 사촌 형에게 물려받은 한복을 입었는데 인기가 좋았대요.
반 아이들이 놀면서 먹을 음식은 행사 전에 뭘 가져갈지 정하고 각자 한 가지씩 핑거푸드로 자발적으로 준비해요. 십시일반으로 준비하니 큰 비용 없이 부담도 없으면서 얘들이 놀다 간식으로 먹기에 충분해요. 학교에서 돌아온 아이는 엄마들이 준비해 온 머핀이며 쿠키 과일 꼬치 등 모두 맛있었대요. 수업 없이 계속 춤추고 놀았다면서 신나 해요.
선생님도 빠삐용, 수녀, 마녀 등 다양한 의상을 입고 덩달아 축제를 즐겨요. 복장이 바뀌면 아니 복장에 따라 용감해지기도 하니까요. 자의식을 내려놓아서 훨씬 유쾌했던 경험이 제게도 있어요. 3년 전에 공부하던 모임 신년회 때 강남스타일 춤을 선보였거든요. 초등학교 교사인 친구가 뽀글 가발을 준비했고 부끄러운 우린 모두 눈을 가리자며 선글라스를 썼어요. 가발 하나 쓰고 눈만 가렸을 뿐인데 훨씬 과감해졌어요. 폼 잡고 무게 잡던 모습을 하루쯤 쉽게 내려놓게 했어요. 소품 하나 썼을 뿐인데 오히려 기존의 가면이 벗겨지는 기분이랄까요.
매일 긴장하며 사는 건 아니지만 온 몸에 힘이 들어가 뻣뻣하게 살다가 하루쯤은 나를 잠시 내려놓고 자유롭게 되는 날, 독일의 파싱도 그중 하나인 것 같아요. 아이뿐 아니라 어른인 선생님도 적극적으로 동참해서 음악에 몸을 흔드는 모습이 낯설지만 그만큼 자유로워 보여요.
자의식 벗는 시간, 다른 사람이 된 듯 즐기는 분위기가 즐거워요. 맨 정신으로 살기 힘들 때 알코올의 힘을 빌리면 잠시 기분이 좋아지는 것처럼요. 어른보다 자의식을 쉽게 내려놓는 아이는 음악만 틀어주면 언제 수줍음이 있었냐는 듯이 몸을 흔들고요. 아마도 스트레스가 확 풀렸을 것 같아요. 보는 저도 유쾌했으니까요. 가끔은 몸을 훌훌 털어주는 시간도 괜찮겠어요. 자유로운 분위기에서 충전된 에너지로 사순절의 고난쯤은 거뜬히 견디게 될 테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