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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마데이나 Mar 21. 2024

I형 엄마의 '아이 외국인친구 만들기' 프로젝트

애증의 플레이데이트


그녀의 이름은 에이바.


늘 큰아이뿐만 아니라, 둘째 아이에게도 친절한 영국 친구로, 디즈니 만화 속에서 튀어나온 것처럼 파란 눈에 예쁜 아이다. 그리고 우리 집에 놀러 온 첫 번째 외국인 손님이기도 하다.  


영국인 친구가 우리 집에 오다니!


I형답게 나는 그 아이 엄마에게 우리 집에 놀러 오라는 말을 할 기회를 엿보며 약속을 잡는 데까지 2주일이 넘게 걸렸지만, 어쨌든 해냈다.


8개월 전 첫 번째 플레이데이트를 생각하면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이다.



두바이는 한국처럼 집주소에 따라 학교를 배정받는 게 아니니, 친구들 사는 곳도 다 제각각이다. 그래서 플레이데이트 playdate, 즉 부모들이 약속을 잡지 않으면 우연히 놀이터에서 만나는 일은 쉽게 일어나지 않는다.

키즈카페, 놀이터, 수영장에서 플레이 데이트

그날은 두바이에 온 지 한 달째 되는 날로, 반 전체가 모이는 플레이 데이트이자, 두바이에서 우리의 첫 번째 플레이 데이트였다.


정말 가기 싫었지만, 아이의 친구를 만들어 줘야 한다는 사명감에 용기를 냈다. 너무 떨려서 몇 시간부터 준비를 끝내고, 모임장소에 도착했다. 어색한 껴안기 인사와 악수를 거쳐 아이들은 놀이터로 뛰어 나갔고, 벤치에 앉아 엄마들은 일상적인 대화를 시작했다.


영어 못하는 사람에게 제일 어려운 게 바로 이런 일상대화인데, 무슨 말을 하겠는가? 요리조리 피하고 싶었지만, 결국엔 걸리고 말았다.


"두바이는 살기 어때?"


아싸. 미리 답변을 준비한 질문이다.


"일단 날씨가 정말 좋아. 하지만 새벽에 도시락 싸는 건 너무 힘들어. 한국은 유치원부터 모든 학교에서 영양 좋고 맛있는 급식을 제공해 주거든."


나름 공감을 바라며 준비한 꽤 마음에 드는 답변이었다. 하지만 한 엄마가 눈썹을 찡그리며 물었다.


"그러면 모든 아이들이 똑같은 밥을 먹어? 왜?" 


미처 준비하지 못한 질문이다. '왜?'라니. 급식 주니까 급식 먹는 건데, 이유를 한 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뭔가 한국어였다면 이런저런 이유를 생각해냈겠지만, 영어로 얘기하자니 눈앞이 캄캄해졌다.


"학교 급식이 정말 맛있어."


동문서답도 이런 동문서답이 없다.

정답이 있는 대화도 아니었는데, 얼굴이 화끈거렸다. 몇 번의 어색한 대화가 끝나고 아이를 돌아보니, 저 녀석도 엄마만큼 친구들이 낯선 건지 잘 어울리지 못하고 계속 밖으로만 돌았다.


마음이 잘 맞는 가족을 만나고 모두가 웃고 있던 영화 속 플레이데이트 장면은 어디 가고, 빙빙 도는 아들과 영어 잘 못하는 엄마뿐이라니. 그것이 첫 번째 플레이데이트의 슬픈 결말이었다.



두바이는 다름이 공존하는 곳이다. 180개가 넘는 나라에서 모였으니, 그들의 문화와 생활방식이 모두 다를 수밖에 없다.  같은 한국 사람들이 모인 한국 초등학교 한 반에서도 맞는 사람이 있고, 다른 사람이 있는데, 살던 나라가, 문화가 다른 사람들이 어찌 모든 생각이 같을 수가 있으랴.


누구를 따라 할 이유도, 꼭 내 생각을 관철시킬 필요도 없다. 대세라는 것도 없고, 타인의 문화를 존중하되, 스스로의 기준에 따라 행동하면 된다.


첫 번째 플레이데이트, 그것도 단체 플레이데이트에서 나와 생각이 달랐다고, 말이 잘 안 통했다는 이유로 슬퍼할 일도, 부끄러워할 일도 아니었다. 여기는 다름이 일상인 두바이가 아닌가. 그걸 아는 데까지 나 역시 꽤 시간이 걸렸다.


명이면 충분하다!


엄마든 아이든, 국적을 떠나 서로의 다름이 매력이 될  있는 딱 한 명. I형에게는 그걸로 족하다. 우리는 이미 알고있다. 회식, 워크숍 갔다고 모두가 친해지는 건 아니라는 것을. 진짜 친하고 싶으면 1시간의 점심시간, 아니 30분의 커피타임이 더 효과적인 것처럼, 아이들, 특히 말도 잘 안 통하는 외국아이들과의 플레이데이트라면 1:1이 훨씬 모든 면에서 효과적이다.



그렇게 우리는 그다음부터는 단체가 아닌 1:1 플레이 데이트, 서로 다른 문화를 신기해하며 카말, 루카, 에이바, 벤지, 시마 엄마와 아이 모두에게 좋은 친구를 만들었다. 여전히 만나자는 약속을 잡는 일련의 과정은 떨리지만 8개월 전 단체 플레이데이트를 생각하면 이건 일도 아니다.


그리고 시간이 흐른 후,

우리 집에는 사랑스러운 영국인 에이바와 그녀의 마 나딘이 와있다. 영국인답게 잉글리시 블랙퍼스트 티와 샌드위치, 그리고 인절미를 즐기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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