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에게 정말 중요한 것은
아이가 집 근처 축구학교를 다닌 지 반년이 다 되어 간다. 축구를 시작하고 중국애 인도애 놀림도 받고 키가 작아서 난쟁이 소리도 들었다. 그래도 반년이 지나니 다 친구다. 하지만 아직도 아이가 공을 잡으면 펜스 너머로 “쟤가 공 잡으면 쉽게 뺏을 수 있어.”라는 말이 들린다.
처음 축구학교를 보내고 속상한 마음에 친한 엄마들에게 하소연을 하니 한 엄마가 말했다. 로마에서 제일 크고 유명한 축구 클럽에 보내 놓고 어째 그럴 수 있을 거라 생각을 못했던 거야? 로마 전역에서 애들 오니 당연히 별별일이 다 생기겠지. 몰랐어? 토티가 여기 클럽 출신이거든.
에헤이! 난 그냥 집에서 가까워 보냈는데. 어쩐지 이 축구 학교 이름을 이야기를 하면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모르는 사람이 없더라니. 그나저나 유명하다면서 외국 아이가 다닌 건 처음인지 컴퓨터 등록 프로그램에서 국적을 표시해야 하는데 이탈리아 외의 나라를 찾느라 직원이 진땀을 뺐다. 어쩜 이 도시는 2020년에도 여전히 다양한 인종의 사람들이 일상 속에서 부대끼며 사는 것이 어설프고 더디다.
동양 아이가 심지어 축구도 잘 못해서 이런저런 듣지 않아도 될 말을 듣나 싶어 속이 상했다. 그런데 축구를 빼어나게 잘하는 한국 이탈리아 혼혈 아들을 둔 엄마 이야기를 들으니 잘하면 더 심하단다. 이런, 잘하는 게 답도 아니구나. 잘하나 못하나 감수해야 하는 건가?
요즘 들어 유독 이탈리아 리그에서 뛰는 외국 선수들의 인종차별 기사가 많이 보이더니 급기야 코로나 바이러스까지 터지니 축구 밖에서도 동양인 차별을 실감을 하게 되는 사건들이 터지기 시작했다.
이탈리아 유명 음악 학교에서 아시아 학생들의 등교를 거부하고 아시아 사람이 지나가자 얼굴을 가렸다는 이탈리아 사람들 이야기까지 그런데 이탈리아뿐만이 아닌 유럽 각지에서 이런 사례들이 들려왔다. 인터뷰 도중 마른기침을 한 손흥민 선수에게 일제히 코로나 바이러스에 대한 댓글이 달리고 그를 제외한 다른 선수들의 얼굴에 마스크를 씌운 합성 사진까지 돌아다닌다.
이탈리아는 뭔가 그럴 것 같았다. 아시아에 무지한 나라. 다양한 인종의 일상이 현지들에게 이제야 자리잡기 시작한 나라. 대놓고 아시아인에 대한 무지함을 드러냈던 이탈리아 사람들이기에 이들에게 엄습할 수 있는 공포에 대해 어느 정도 짐작을 했달까? 중국 일본 한국 사람들이 얼굴이 다 똑같아 보이는 이탈리아 사람에게 우리 동양인 모두가 두려움이 될 수 있겠다. 인간이 모르면 더 상상하게 되고 그건 과장이 되어 더욱 큰 공포를 불러올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이민사회가 발달했고 인종차별에 예민하게 쉬쉬하는 나라들에서 조차 여러 사례들이 들여오니 이런 생각이 들었다.
아닌 척했지만 결국은 차별하고 싶었던 걸까?
단지 그래도 될만한 이유가 필요했던 걸까? 왜? 우리가 두려웠나? 자신들이 더욱 우월하다고 생각했고 우월해야만 하는데 아시아 사람들의 영역이 확장되고 심지어 두각을 나타내자 불안했던 걸까? 코로나 바이러스를 계기로 이것 봐 이것이 너희들의 현주소야 라고 확인시켜 주고 싶었던 걸까?
이렇게 생각하니 지금의 아시아 혐오는 바이러스에 대한 공포가 아니라 커가는 아시아의 파워 자체에 대한 이들의 위기의식이 진짜 이유가 아닐까 하는 생각까지 들었다. 나약한 마음이 불러낸 방어적 폭력.
뉴스에선 매일 세계에서 일어난 아시아 혐오에 대한 기사가 올라왔지만 다행이라고 해야할지 아직까진 우리의 일상에선 실감하지 못했다. 그럼에도 눈치가 보였다. 말 그대로 쫄렸다. 이들도 미디어를 통해 접하는 이야기들로 아시아 인들에 대한 공포가 극대화 되었겠지만 우리 역시 들려오는 아시아 혐오의 사례들을 통해 유럽 사람들에 대한 두려움이 커졌다. 다행히 이런 분위기가 꽤 오래갈 거라는 예상과는 달리 두 주가 지나고 확진자가 더 이상 늘어나지 않자 공격적인 분위기는 가라앉는 듯 하다.
하지만 이 일로 유럽 사람들의 아시아 사람들에 대한 민낯을 확인한 것 같아 씁쓸했다. 바이러스를 통해 혐오가 시작된 것이 아니라 드러내지만 않았을 뿐 이미 가지고 있었던 마음이 봉인 해제되어 외부로 분출된 것 같아서. 아무도 눈치 주지 않았지만 아이들 학교를 등하교시키며 자꾸만 움추러 들었다. 내 이웃의 누가 그 마음을 가지고 있을까라는 의심이 일상을 옥죄어 왔다. 아이가 코를 훌쩍이고 기침을 하면 나도 모르게 주변의 시선을 신경 쓰는 거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아이 반 엄마에게 몇 주를 졸이던 마음을 털어놓았다. 그녀는 이탈리아 사람들이 오바라며 오히려 위로해주었다. 코로나 바이러스에 대해선 전혀 알지도 못하는 아이가 친구랑 장난을 치다 우리의 대화 속 바이러스라는 단어를 듣더니 말했다.
학교에서 바이러스에 대해서는 배우지 않았는데 선생님이 그러는데 우리에게 중요한 건 비타민 C와 D래.
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해 동양인 차별과 혐오가 잠재되어 있던 이와 그렇지 않은 이들이 극명하게 드러났다. 그래도 선명해진 것은 그런 생각을 가진 사람보다 그렇지 않은 사람이 더 많다는 확신이다. 바이러스에 위축되어 누군가 우리를 공격해오지 않았을까 경계하고 의심했다. 우리에게 사람들이 나쁜 마음을 가지고 있을 거라는 생각으로 나 역시도 모든 이탈리아 사람들을 부정적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하지만 카페에서 유모차를 끌고 나가는 날 위해 문을 잡아주던 할아버지는 여전히 문을 잡고 계셨고 아이들의 볼에 뽀뽀를 해주던 할머니는 여느 때와 같이 미소를 보내고 있었다. 마음 졸였다는 나의 말에 먼저 두 손 잡아준 것은 아이들의 소아과 선생님이었다. 문제는 공포라고 너무나 많은 정보에 휘둘리지 말자고 수많은 전염병에도 우린 잘 이겨내 왔다고 장문의 글을 학부모 단톡 방에 올린 것은 이탈리아 엄마였다. 매일 등하교에 아이들을 만날 때마다 힘껏 안아주기 위해 먼저 다가온 것은 이들이었다.
생각을 멈추었다.
지금의 이 상황에 더 이상 의미를 담지 않기로 했다. 내가 정말 집중해야 하는 것으로 눈을 돌렸다. 보란 듯이 아침에 본 기사에는 영국의 모든 신문 1면을 차지한 손흥민의 사진이 있었다. 잘해도 못해도 겪게 될 일이라면 답은 자신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며 휘둘리지 않는 거다.
하루는 축구학교에서 경기를 하는데 내가 봐도 강력해 보이는 공을 아이가 겁도 없이 잘도 막아냈다. 나중에 알았지만 그날 공에 손가락이 꺾여 인대가 늘어나 있는 상황이었다. 그럼에도 마지막까지 골을 막아내고 의기양양하게 축구장을 나오는 아이에게 엄지를 추켜올리며 물었다.
“어떻게 이렇게 잘해?! 너무 잘 막던걸?! 엄마가 봐도 정말 센 공이었어!!”
내가 4살 때는 축구를 잘 못하니까 애들이 골키퍼만 하라고 했거든, 그런데 4살부터 골키퍼를 한 거잖아. 오래 했으니까 지금은 잘하게 된 거지. 그때 많이 했으니까 잘하게 된 거야.
아이는 축구를 못해서 친구들과 축구를 할 때면 자연스럽게 포지션이 골키퍼로 정해졌다. 어느 날은 골키퍼만 하는 상황을 속상해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축구를 해야 하는 상황을 피한다거나 우울한 감정에만 머물러 있지 않았다.
아이는 그 자리에서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했고, 부정적인 감정에 매여 자신을 무너뜨리지 않았다. 열정을 다해 공을 잡느라 꺾인 손가락으로 인해 3주를 붕대를 감고 있어야 했지만 다친 손가락은 오히려 아이를 축구영웅으로 둔갑시켰다.
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한 아시아 혐오의 사건들이 가슴을 죄어 온 것은 내가 직면한 문제로만 치부할 수 없어서였다. 여기서 자랄 아이들이 매 순간 감당해야 할 시선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마냥 긍정적으로 이 유럽의 삶을 바라볼 수 없었기 때문이다. 우리 아이들이 이 나라에서 아시아 사람이라는 이유로 상처 받지 않기를 원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모든 상처의 결과가 곪아버리는 것은 아닌 것 같다. 흉터가 우리를 온통 뒤덮지는 않는 것 같다. 나쁜 일이 나쁜 일로만 끝나지 않는 거다. 모든 일에서든 어떤 일에서든 우린 배우고 성장한다. 어제의 상처를 막지는 못하지만 오늘은 회복의 자리에서 우리를 기다리며 내일의 마음에 탄력을 만든다. 우린 얼마나 나약하고 또한 강한가. 상처 받지 않기를 바라며 마음을 졸일 것이 아니라 상처가 우리를 얼마나 단단하게 만들어 줄지 기대해 보기로 했다.
창문을 열어 환기를 시킨다. 날은 차지만 하늘이 맑아 집을 나선다. 가슴을 펴고 크게 심호흡한다. 그리고 되뇐다.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비타민 C와 D. 바이러스에게 지지 않아.
written by Iando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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