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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로마 김작가 Mar 01. 2020

내 고향은 모든 곳, 나는 어디에서든 이방인

이탈리아는 내게 어떤 의미니?

런던행 비행기표는 진작에 구입했다. 연 초 유일하게 남편이 일주일 정도 시간을 낼 수 있는 시즌이다. 아이들이 딱 좋아할 다락방이 있는 에어비엔비도 예약했다. 이번 런던 여행에서 가장 큰 이벤트인 라이온 킹도 1층 복도로 비싼 가격을 주고 가족 넷의 티켓도 구입했다.

코로나 바이러스가 터졌다. 순식간에 이탈리아에서는 아시아 혐오가 시작되었다. 기분 좋게 떠난 여행지에서 불쾌한 일을 겪을까 런던의 친구에게 분위기를 물었다. 런던은 아무도 상관치 않는단다. 로마보다 런던이 다니기엔 더 마음 편하지 않겠느냐고 답이 왔다.

런던으로 떠나기 하루 반 전, 이미 해가져 어둑해질 무렵 항공사에서 메일이 왔다. 런던에 태풍이 오니 비행 스케줄을 변경하란다. 이게 무슨.... 겨우 하루 남겨두고 연락을 주면 어쩌라고.. 종일 항공사 숙소 라이온 킹 티켓 사이트로 전화를 하느라 10만원은 넘게 썼나 보다. 종일 이태리어 영어로 일처리를 했더니 머리가 웅웅거린다.

다행히 비행기 숙소 티켓까지 무사히 변경했다. 출발은 정확하게 일주일 미뤄졌다. 그 일주일 동안 런던은 태풍으로 난리도 그런 난리가 없었단다. 전화위복. 여행을 하루 앞두고 모든 것이 뒤틀리면서 혼을 쏙 빼놓았지만 태풍이 바꿔놓은 여행은 더없이 좋았다.


다락방이 있던 숙소도 유쾌했던 호스트 아저씨도 오락가락했지만 청명했던 하늘도 한참을 주저앉아 아이가 그림을 그리던 미술관도. 참 오랜만에 집으로 돌아가는 것이 아쉬운 여행을 했다.



그런데 태풍이 가장 예상치 못한 변수였다 싶었는데 올해가 초불확실의 시대라더니 하루 만에 세상이 달라졌다.


정말 단 하루 만에.


런던으로 출발하던 날만 해도 이탈리아의 코로나 확진자가 10 남짓이었는데 자고 일어나니 백 명이 되고 저녁이 되니 200명이 되었다.

몸은 런던에 있으면서 마음은 한국과 이탈리아로 향했다. 내 가족이 있는 한국 우리 가족이 사는 이탈리아. 어디 하나 예측을 할 수 있는 상황의 연속이었다. 너무나 평온한 런던에서의 하루하루가 되려 비현실로 느껴졌다. 한국 이탈리아가 이 정도라면 영국도 결코 안전한 것이 아닐 텐데, 모르는 게 약이다. 라는 말이 이런데 쓰는 걸까? 모르니 평화롭구나.


아무도 신경 쓰지 않는 여기가 막연하게 불안하다.

런던에 머무는 일주일 동안 이탈리아는 위험국이 되어버렸다. 여행을 마치고 다시 로마로 돌아가야 하는 아이들이 걱정이다. 이젠 아이의 반 친구들도 코로나 바이러스에 대해 모르지 않을 텐데..... 아시아 혐오가 더 심해지면 어쩌나. 아니라 다를까 여행 중에 학교 카니발 행사에 참여를 못했는데 우리가 여행 온 줄 몰랐던 친한 고학년 애들이 이안이가 없어 찾았나 보다.


누가 이안이는 어디 갔냐 했더니  아이가 격리된  아니냐고 했단다.

그 이야기를 들은 한 엄마가 걱정이 되어 전화가 왔다. 여행 중이라니 안심을 하고는 엄마들 사이에 우리에 대한 이야기가 있었노라 귀띔해 주었다. 한국인. 게다가 아빠는 한국 여행객을 대상으로 하는 가이드. 이탈리아의 상황이 심각한 와중에 여행으로 왔다 갔다 공항을 거쳐야 하는 상황. 우리가 다시 학교에 돌아가는 것이 불편한 부모들도 있는 거다.

백퍼 이해는 하지만 서운하다. 내가 너무 이 사람들을 이 나라를 좋아해서 우리는 예외일 거라고 생각했나 보다. 차라리 나도 다른 사람들처럼 이태리 것들 무식한 것들 하고 살았다면 덜 상처 받았을까?


이해는 하니 그 상처가 깊지는 않았지만 얕고 깊고를 떠나 어떤 상처든 다 아린 법이다. 차라리 바이러스가 가라앉을 때까지 아이를 학교에 보내지 말까? 아이보다도 내가 등하교를 시키며 다른 부모들은 대면하기가 싫었다. 아무것도 모르는 척 웃으며 인사하고 싶지만 속마음 다 드러나게 얼굴을 붉히며 서운한 티를 팍팍 낼 것 만 같은 거다.

그래도 아이는 학교를 가야지 싶다가도 서운을 넘어 화가 극에 달하자 갑자기 애가 되게 공부를 잘했으면 좋겠다 생각을 하고 있는 것 아니가?! 누군가를 짓밟아 주는 것에 최고는 자식으로 이기는 것 아니겠는가?!


아.. 이래서 해외에서 아이를 키우면 교육에 목숨을 거는구나.


안다. 우리가 이탈리아 사람이었다 해도 이런 일을 겪을 수 있다. 이젠 인종혐오가 아닌 바이러스 자체에 대한 공포가 사람들을 압도했다. 그럼에도 우리가 이방인이니다 보니 불쾌한 경험의 이유는 다 이것인 것만 같다.


My hometown is everywhere
I’m a foreigner everywhere

내 고향은 모든 곳,
나는 어디에서든 이방인


어디에선가 본 이 문구가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는다.


이탈리아는 우리의 새로운 고향인가?
아니면 어떻게 해도 우린 이방인 수밖에 없는가?



여행에서 돌아와 첫 등교 전 날 잠들기 전 아이에게 말했다.

_이안, 혹시 내일 학교에 돌아가서 누가 코로나 바이러스로 나쁘게 해도 신경 쓰지 마. 알았지?
_어떻게 신경을 안 써? 코로나 걸리면 아프잖아. 아픈 친구를 어떻게 신경을 안 쓸 수 있어? 신경 써 줘야지.

엄마의 우려 섞인 말속의 ‘나쁘게’를 아이는 ‘아프게’라고 들었다. 어른은 나를 아프게 할까 날을 세우지만 아이는 친구가 아플까 마음을 졸인다.

어쩌면 난 지금까지 이탈리아와 이탈리아 사람들과 철없는 사랑에 빠져있었는지도 모르겠다. 내가 보고 싶은 모습만 보고 깊게 의지하면서. 이런 사랑의 결말은 비극이다. 크게 실망하고 상처를 받고 끝이 난다.


보고 싶지 않은 모습도 볼 줄 알아야 한다. 인정할 수 있어야 한다. 도움없이 삶을 유지할 만큼, 그들도 나에게 의지 할 수 있을 만큼 능력을 쌓고 관계에 의연할 수 있다면 쉽게 실망하지 않고 상처도 금세 극복하게 되지 않을까? 어쩌면  상황으로 인해   성숙한 자세로 이탈리아를 마주하게 될지도 모르겠다.

아이가 학교에서 돌아왔다. 친구들을 그의 컴백에 환호했고 더없이 즐거웠노라 했다. 학교에서 마주친 학부모들은 (속마음은 어떨지 몰라도) 반겨주었다. 축구 학교도 갔다. 한결같이 친절하고 우호적이었다.


늦은 시간임에도 아이의 친구는 집으로 초대했고 아쉬울 만큼만 놀고 돌아가야만 하는 우리에게 지난 성탄에 주지 못했다며 큰 선물 박스 두 개를 안겨주었다. 주말에 시간이 되면 꼭 다시 놀러 오라는 인사와 함께. 작은 버튼을 누르자 박스에 불이 들어왔다. 홀린 듯 바라보는 둘째의 눈이 반짝반짝 빛났다.


다행이다. 이탈리아는 여전히 우리에게 따뜻하다. 상상 속의 원망은 현실에서 대면하면 그렇게까지 무겁지 않다. 불안은 부딪혀보면 별 것 아닌 경우가 더 많다. 한 치 앞을 알 수 없는 형국이니 바이러스 상황에 따라 이들의 자세가 또 어떻게 반전될지는 모를 일이지만 아직까지는 이탈리아를 미워하기는 힘들 것 같다.


My hometown is everywhere
I’m a foreigner everywhere

내 고향은 모든 곳,
나는 어디에서든 이방인


우린 여전히 이방인인가?
아니면  곳은 우리의 고향이 되어  것인가?


written by iando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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