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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로마 김작가 Mar 20. 2020

이탈리아, 아무리 엿같아도 우리는 노래할 거야

멀리서 보면 비극 가까이에서 보면 희극

#andràtuttobene (모두 다 잘 될거야)


댕댕댕


종이 울린다. 12시다.


하던 일을(잠깐, 하던 일이 있었나? 여하튼 뭔가를 하고는 있었으니) 멈추고 테라스로 나간다. 멀리 들려오는 종소리에 맞춰 박수를 친다.  창문 테라스 여기저기 박수소리가 울려 퍼진다. 누군가 크게 노래를 틀었다. Ma il cielo è sempre più blu (그러나 하늘은 언제나 더 푸른걸)


아, 정말이지 하늘은 진짜 푸르다.


12시면 이탈리아 전역에서 (너무나 열악한 환경에서) 애쓰고 있는 의료진들을 위해 박수를 친다.

마스크도 제대로 수급이 안되어서 먼지 청소용 필터를 귀에 걸고 환자를 돌본다. 양성 반응이 나와도 중증환자를 대하고 있다면 증상이 악화되기 전까지 환자를 돌본다는 이야기도 들린다. 사망자 중 8% 가 의료진이다.


“이것은 마스크가 아니다. 먼지 청소용 필터로 보인다.”


이젠 세상만사 예측이라는 것이 무의미해 보인다. 무엇을 상상하든 그 이상이다. 설상가상으로 중국에서 이탈리아로 보낸 마스크가 독일 세관에 묶어 있다는 이야기도 들린다. 이탈리아도 애를 쓰고 있지만 바이러스가 퍼지는 속도에 나라의 역량이 따라가질 못한다.

모든 국민들이 집안에 머문다. ‘어째서 이 지경까지’라고 생각했지만 이 지경에 나라에서 국민을 지킬 수 있는 방법이 강제적으로 집에 머물게 하는 것뿐일지도 모르겠다 어느덧 이동제 한령이 시작되고 3주째다.


이탈리아 이동제한조치 안내문, 이 와중에 외출 사유로 반려견 산책이 포함된다.

4월 3일 개학은 진작에 불투명해졌고, 이왕 이렇게 됐으니  바로 6월 여름방학을 맞이하고 9월 개학을 논의 중이라는 소식도 들린다. 솔직하게는 9월에라도 정상 복귀가 된다면 정말 좋겠다는 마음이다.


한국의 대응이 세계 모범임에도 현재의 상황이 되기까지 5개월이 걸렸고 4월 개학도 불투명하다는데 하물며 이탈리아는 당연히 그 이상은 생각해야 하지 않을까... 심지어 가까운 유럽들이 본격적으로 난리통이니 말이다.


인터넷 기사만 보면 이탈리아 상황은 뜨악 스럽다. 인종차별이 난무하고 여전히 정신 못 차리고 마스크도 안 쓰고(안 쓰는 게 아니라!! 마스크가 없다고!! 없다고!!!) 슈퍼는  동이 나고 30분에 한 명씩 죽어나가고 가장 심한 롬바르디아 주는 평균 연령이 70대 이하로 내려갔다고 할 정도다. 마치 킹덤 2의 대환장 파티 상황이다.


그래서 이 상황에 어떻게 지내고 있냐고?

도대체 어떻게 견디고 있냐고?




우리는 춤추며 노래하고 있다.


22일까지 18시에 함께 노래 할 곡 리스트

오후 6시는 햇살이 가장 아름다운 시간이면 모두 밖으로 나와 노래를 부른다. 누가 정한 지는 모르지만 순식간에 공유된 레퍼토리로 노래를 부른다. 남편은 어제부터 스피커에 연결을 해 노래를 튼다. 둘째는 박수를 치고 첫째는 춤을 춘다. 노래가 끝나면 건너편 집에서 노래를 튼다.

아이가 물었다.

_햇살이 좋은데 우리 산책 나갈까?
_지금은 안돼. 우리 노래를 불러야 하거든.


이유를 알 수 없는 눈물이 흘렀다.
하늘을 올려보다 건너편 할머니와 눈이 마주쳤다.
그녀가 이탈리아 국기를 흔들다 나를 보고 울지 말라며 브이를 한 손을 흔들었다.
막막하고 두려워서 운 것이 아니었다.

정말 엿같고 거지 같은데 심지어 언제 끝날지도 모르는데 이 사람들이 노래를 부른다. 마치 아무리 슬프고 두려워도 삶은 아름답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는 듯. 어떠한 역경 속에서도 삶은 아름다워야 한다고.


로마에선 시네마천국의 한 장면이 현실로 펼쳐지고 있다.

이탈리아 유명 블로거 Chiara Ferragni와 그의 남편 래퍼 Fedez는 이동제한령과 함께 병원 기금을 모으기 시작했고 12일 만에 국민들이 모은 기금으로 병동이 완성됐다. 이 이탈리아에서 말이다!!!


매일 6시엔 인스타 라이브로 말 그대로 라이브 콘서트를 한다. 오늘은 병원 기금 마련을 위해 Andrea Bocelli와 콜라보를 했다. 아들이 가장 사랑하는 에드 시런의 perfect를 라이브로 불렀다. 우린 그 라이브를 스피커를 통해 골목에 생중계했다.


안드레아 보첼리의 라이브 와 기금 마련 인스타 스토리 화면
패라리는 인공호흡기 생산을 준비 중이다.


누군가는 이런 이탈리아 사람들의 긍정의 마인드가 이 지경을 만들어 냈다고 하겠지만 이 상황이 지나고 나면 어쨌든 이 어마한 상황을 버텨낸 것은 이들의 정신력일 거다. 그 누구도 원망하지 않고 바라지 않으며 분노하지 않는다. 얼마다 더 아름답게 웃으며 춤을 줄 것인지 생각한다.


요즘은 그런 생각도 한다.


젠장!
이탈리아에도 미세먼지가 있었어야 했어!!


의료 시스템이 저질이어도 토마토 올리브유 좋은 공기와 지중해 바람이면 폐질환 환자도 자연에 의해 건강을 유지한다고 믿으며  세계 2위의 장수국가가 되었는데 좋은 식습관과 공기만 믿다가 이탈리아는 마스크도 안 만들고 뭐했나!


그래도 다행히 이탈리아는 가정마다 구식 비데가 완비되어 있어 화장지 사태는 일어나지 않았다. 매일 신선한 재료로 장을 봐 식사를 준비하는 마인드 덕인지 식재료 사재기도 심하지 않다.

대구에서 혼자 계신 아버지가 마스크도 없이 어찌 버티실까 싶어 전화를 드렸더니 겨울이 오기 전에 몇 박스를 사놓으셨단다. 집이 주택 2층인데 겨울이면 욕이 나올 만큼 웃풍이 세다. 이불을 머리 끝까지 올려 덮어도 코 끝이 시리다. 아버지는 겨울 대비용으로 잠자리에 쓰기 위해 마스크를 넉넉히 구입해 놓으셨단다. ‘외출도 안 하는데 집으로 마스크도 가져다 주니 심지어 남는다.’ 하고 웃었다.


웃풍이 이렇게 쓸모 있는 것이 었나? 아파트가 아닌 추운 주택이라 마음이 쓰였는데 덕분에 사회적 거리두기가 그렇게 자연스러웠다고.


“아버지요. 자영업자들 다 힘들어 죽어요. 자식 있으면 휴교해서 애 보느라 고생이고요. 아버지 백수고 자식이랑 안 살아서 다행인 줄 아소.”

“맞다. 맞다. 내가 젤 속 편하다. 야야 내 이제 미스트롯 봐야 된다. 백수가 짱이네. “


웃으며 전화를 끊는다.  


현재의 평화에 안심하기도 힘들고
과거의 불행이 다행이 되기도 하는 아이러니의 시대다.


코로나 바이러스 인해 베네치아의 수상 버스 운행이 멈추자 운하가 맑아지고 돌고래가 나타났다는 기사다.

이탈리아 학부모 단톡 방은 유머 일번지가 된 지 오래다. 수도 없이 올라오는 메시지가 다 짤인데. 다들 격리 중에 그런 짤만 궁리하다보다. 바이러스보다 먼저 웃다가 숨이 넘어갈 판이다.  한국인도 해학의 민족인데 짤 생성은 이태리 절대 못 따라간다. 내가 조금만 우울해 지려하면 어김없이 웃긴 짤이 올라와 남편에게 달려가 돼지코 소리를 내며 웃으며 보여주게 된다.


하루에 157번 20초 씩 손을 씻은 결과
미용실도 에스테틱도 없이 지낸 결과
괜찮아. 올라와, 다 잘 될거야...
모든 곳이 문을 닫은 결과, 부모가 머리를 잘라주는 시대가 다시 도래했다. 어제 엄마가 말했다. “이리와. 엄마가 멋지게 만들어 줄게.”


영화 [인생을 아름다워]를 떠올린다. 지구 상에 그런 영화를 만들어낼 수 있는 사람은 이탈리아 사람뿐일 거다.

어릴 적 이 영화를 보고 아름다운 인생은 행복한 인생을 뜻하는 줄 았었다. 아니었다. 어떠한 순간에도 인생의 본질은 아름다움이었다.


가장 참혹한 순간에도 유머를 잃지 않은 귀도는 이탈리아 그 자체다.


6시다.
노래하러 나가자


집에 머문 지 15일,

하지만 유쾌한 이탈리아 사람들도 지친다. 단톡 방에는 여전히 웃긴 짤이 올라오지만 간간이 언제까지 이런 상태가 지속될까의 우려도 올라온다. 첫 주만 해도 골목길의 모두가 밖으로 나와 노래를 불렀지만 이제는 몇 집만 테라스에 얼굴을 비춘다.
 
남편은 잊고 있던 먼지 쌓인 스피커를 꺼냈다. 15년 전 연애시절 이탈리아 라디오 듣기를 좋아하는 나에게 선물한 거다. 12시 박수도 18시 노래도 우리 가족이 가장 먼저 시작한다. 조용하던 골목에 우리 넷의 박수가 울리면 하나 둘 사람들이 나와 함께한다. 저 멀리 종소리가 울려 퍼진다.

이게 다 무슨 소용이냐고 생존 신고도 아니고 어떤 의미가 있냐고 물을지라도 우린 계속한다.


12시 박수를 치고 1시간 정도 각자의 시간을 가진다. 책을 읽기도 하고 넷플릭스에서 추억의 영화를 선택해 2인용 소파에 엉켜 앉아 감상을 하기도 한다. 6시에 노래를 부르고 나면 첫째는 매일 학교에서 보내주는 숙제를 하고 난 곁에 앉아 책을 읽고 남편은 둘째와 저녁을 준비한다. 어느새 이 리듬은 우리의 하루 루틴이 되었다.

이 시기가 지나면 세상 모든 사람들의 마음엔 작고 크게 상처가 남을 것 같다. 국가에 실망하고 정치는 불안하고 국민은 이기적이고 인간은 차별적이며 의료는 붕괴되고 아무리 잘해도 사람은 더를 원하고 약자는 방치되며 시스템은 저질이며 미래는 알 수 없고 바이러스는 이게 끝이 아니고 정지된 일상의 끝을 알 수도 없고, 우리는.... 우리는... 분노하고 두렵고 슬프다.

여기는 내 나라가 아니고 상황은 매일 더 최악으로 치닫지만 내 나라에선 검은 머리 외국인은 오지 말고 거기 있으라 한다. 한국행 전세기에서 마음을 접고 우린 남기로 했다. 수많은 사항을 고려한 결정이지만 궁극적인 이유는 언제 끝날 지 모르는 이 상황을 버텨야만 하는 생활비에서 가족 넷 비행기 비용을 지출하는 것이 너무나 큰 위험부담이었기 때문이다.
 
울 이유를, 분노할 이유를, 불안할 이유를, 잠들지 못할 이유를  굳이 찾을 필요도 없다.


그런데
웃을 일도 더 많아졌다.


우리가 노래하고 춤을 춰야 하는 처음의 이유는 잊은 지 오래다. 이제 우리가 노래하는 이유는 웃으며 춤추던 시간으로 이 계절을 기록하기 위함이다.


비록 멀리서 보면 감당하기 힘든 비극이더라도
우리 가까이에선 희극으로 쓰이길 바라기 때문이다.



written by iando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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