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이탈리아에 남은 진짜 이유
지난 일주일간 남편과 나 그리고 이탈리아지인들의 가장 큰 이슈는 전세기였다. 수요조사를 하는 중에 한국에서 기사가 먼저 났다. 여전히 조사 중인 인원을 그 기자는 무슨 근거로 600여 명이라 명시했는지는 알길이 없지만 정확한 일정도 금액도 인원도 정작 이탈리아에 있는 우리들은 모르는데 무방비속에 댓글의 공격을 받았다.
이탈리아 친구들의 단톡방에선 댓글에서 눈을 감아버리자 했다. 우리 가족을 제외하고 모두 이탈리아 한국 커플이기때문에 실질적인 전세기에 대한 고민을 한 것은 우리 가족뿐이었다. 그러나 그 문제를 떠나 이탈리아에 사는 한국인 모두 그 말들이 너무 아팠다. 댓글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었다. 그 정도로 노골적으로 생각한 것은 아니지만 나도 반대의 입장을 겪었기 때문이다.
대구에서 신천지 사태가 터졌을 때다. 대구의 아버지에게 전화를 해 곧장 울진의 할머니 댁으로 가시라 힘을 담아 말했다. 6개월의 치과진료가 곧 마무리되니 치료를 마치고 가겠다는 아버지에게 하루가 멀다 하고 전화를 드렸다. (아버지는 무사히 치과진료를 마치고 대구가 진정이 되어서야 울진으로 향하셨다.)
이탈리아 북쪽의 확진이 걷잡을 수 없이 커지고 결국 봉쇄조치가 떨어졌다. 그날 밤, 어마한 인원이 남부행 기차에 몸을 실었고 한 기차역에는 군대가 사람들을 막아서는 일도 벌어졌다. 남쪽 사람들은 북쪽의 확진자(일지도 모르는) 이들의 남부행에 겁이 났다. (당시만 해도 남쪽은 확진자가 많지 않았다) 이탈리아 최남단의 풀리아의 작은 마을에서 북쪽에서 온 동생이 형에게도 전파했단 뉴스가 들려오자 분통이 터졌다. 밀라노 거점의 한 셀럽은 북쪽 사람들에게 제발 이기적인 행동을 자제하자 하소연헀다.
남쪽으로 향한 이들의 목적지는 고향의 가족들 품이었다. 분명 그들에게 더 안전한 남부로 내려오길 바란 것은 가족들이었을 거다. 내가 아버지에게 울진으로 빨리 몸을 옮기시라 한 것처럼.
그들을 이기적이었다 비난할 수 있을까?
또한
그들에게 네가 싫어 떠난 곳으로 돌아오지 말라고도 어찌 말할 수 있겠는가?
대구 출신의 오빠가 서울에서 직장을 선택한 것이 대구가 싫어 떠난 것이 아니듯 우리가 이탈리아에 사는 것도 한국이 싫어서가 아니다. 이탈리아에 온 이유는 이탈리아가 좋아서 일지라도 사는 이유는 이 곳에 직장이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탈리아는 속지주의가 아니라 속인주의 이기 때문에 여기서 태어난 아이들도 부모를 따라 한국인이다. 우린 이탈리아에 살지만 아이들이 한국말을 잃지 않도록, 언제나 한국에 자부심을 가질 수 있도록 다양한 방면으로 한국을 접할 수 있게 노력한다.
전세기 기사가 나오고 하루가 멀다 하고 지인들에게 연락이 왔다. 정부에서 비행기를 보내준다는데 왜 들어오지 않으려 하는지 그들은 답답하다. 대부분 전세기를 무료라고 생각했다. 사실 나 역시 “전세기에 대해 고민해야 하는 입장이 되기 전까지는” 돈 내고 타는 건 줄 몰랐다. 쥐라기 공원에서 주인공들이 타라노와 사투를 벌이다 죽음 직전에 올라탄 헬리콥터처럼 그냥 몸만 올라 미소를 지으며 안심하면 되는 건 줄 알았다.
“전세기 보내 준다는데 왜 안 와?”
하고 물으면,
전세집이 정부에서 주는 공짜집이 아닌데 왜 전세기는 공짜라고 생각하냐?
라고 역정을 냈다.
아이들을 재우고 한국행에 대한 하나부터 열까지 장단점을 열거해 보았다. 한국이 더 안전해 보인다 라는 것을 제외하고 모두가 부정적이다. 인정하기 싫지만 그중 제일 부정적인 것이 비용이다.
전세기는 편도이며 성인 한 명의 비용은 200만 원 (이 기간 한국행 왕복 비행기 가격의 두배다.) 만 2세 이상은 150만 원이다. 가족 넷의 비용은 700만 원이다. 우리는 돌아와야 하며 귀국행 비행기표까지 생각하면 왕복 1500만 원이다. 한국이 여기보다 외출이 자유로운들 왕복 1500만 원을 쓰고 아메리카노 한잔 마음 편히 마실 수 있겠는가.
지인들 전화에 우리들에게 1500만 원을 쓰라고 말할 수 있겠느냐 물으면 답이 없다. 비행시간 동안 아이들이 마스크를 쓸 수도 없고 공항에 도착해서도 10시간 가까이 검사가 진행된다는데 건 24시간 동안 아이들이 견디고 거기에 격리 기간까지 어찌 감당하겠는가. 우린 진작에 생각을 접었다.
가족들의 전화에는 매체에서 접하는 것보다 심각하지 않다.라고 답한다. 이것도 뭐 반은 맞다. 집에만 있으니 실감이 안 난다. 고요함 속에 종일 들리는 구급차 소리가 가슴을 쿵 내려앉게는 하지만, 고요한 거 빼면 원래 일상에서도 많이 들렸던 소리다. 다행히 지인 중 확진자가 없고 사재기도 없으니 우리가 동막골 주민이 된 것 같다. 전쟁이 지나도 고립되어 아무것도 모른 채 삶을 살아가는.
무엇보다 집 안은 평화롭다. 두 아이는 돈독하고 여유 있다 못해 어제도 오늘 같고 내일도 오늘 같은 일상에도 웃음이 끊이지 않는다. 아이의 학교 숙제를 봐주고 함께 책을 읽고 심지어 우리에겐 넷플릭스와 어제 서비스를 오픈한 디즈니 플러스 채널도 있다. 일요일 밤엔 화상 채팅 앱으로 애들 재우고 밤새 엄마들끼리 단체 영상 통화도 한다. 남편은 이 참에 원 없이 슈퍼히어로 시리즈를 섭렵 중이다.
전세기 댓글에 검은 머리 외국인이라는 말을 보고 누가 검은 머리만 맞다고 하는 말에 한참을 웃었다. 분명 웃긴했는데 이상하게 종일 우울했다. 그날 오후 테라스에서 골목길 사람들 다 함께 노래를 부르는데 가사가 프라텔리 (형제여) 로 시작했다. 모두가 눈을 마주치고 손을 흔든다.
우린 검은 머리 한국인인데 함께 노래해도 괜찮은 거지?
그런데 정작 깊게 상처를 받은 것은 다른 지점이었다. 한국의 확진자가 절정에 일 때 떠났던 미국인 용병 선수가 그곳의 상황이 심각해지자 다시 한국으로 돌아왔다. 그의 공항 사진 댓글에 누군가 “돌아와서 정말 다행이에요. 가족들도 모두 함께 왔으면 좋았을 텐데” 라고 적어 놓는 거다. 뭐지? 쟤는 심지어 “노란 머리 외국인인데?!!!” 아.... 세금을 내서 그런가....
마음을 정하고 나니 전세기에 대해선 전혀 미련이 없다. 그러나 고령의 부모님의 건강 걱정과 불안함의 한계치에 다다라 너무나 한국행을 염원했던 다른 가족들도 가격 앞에 마음을 접었다. 비용 때문에 무릎을 꿇다니 서럽다는 말에 꿇기에 돈만한 이유가 또 있겠냐며 우린 쓰게 웃었다.
그러나 차마 그 누구도 한국의 가족에게 비용의 문제에 대해 말할 수는 없었다. 하루에 700명 가까이 죽어나가는 이탈리아에서 돈 때문에 전세기를 포기했다는 자식의 말에 피 눈물 나지 않을 부모가 어디 있으랴? 반은 맞고 반은 아닐지도 모를 말로 가족들을 (효력이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안심시킨다.
“우린 잘 지내고 있어요.”
그리고 나는 지금 당장 바로 눈 앞의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전세기보다 더 급박한 문제는 뭐다?!
자식 숙제다.
매일 과목별로 숙제가 올라오고 다음날 16시 전에 담임에게 사진을 찍어보내야 한다. 놀다 지치면 숙제를 하겠지 하고 기다렸는데 실망이다. 안 지친다. 사실은 지쳤는데 숙제를 안 하려고 노는 게 재미있는 척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너 6시에는 숙제 시작하기로 엄마와 약속했지?”
격리 동안 짱구에 빙의한 아들은 하루 종일 짱구에 심취하여 엉덩이를 쉼 없이 흔들고 있다. 나의 숙제 독촉에 아들이 갑자기 종이에다 휘갈겨 무언가를 적더니 바닥에 놓아둔다. 그리고 그 앞에 뒤돌아 서더니 말했다. (짱구 목소리로 읽어 주세요)
난 과거는 안 돌아보는 사나이예요.
순간 봉미선 씨에게 (누구냐면, 짱구 엄마 이름이다. 짱구 엄마 아빠 이름까지 알고 싶지 않다고!!!) 빙의하여 ‘숙제나 해!!!’ 빽 ~ 소리를 질렀다. 그 와중에 너무 기가 차서 웃음이 나오려는 것을 겨우 참았다.
숙제하는 아이 옆에 앉으있으면 사람이 단순해진다. 생각은 단 하나 빨리 끝내고 싶다. 고작 두 페이지 하는데 한 시간이 넘게 걸렸다.
“뭔 두 페이지에 한 시간이 걸리니...”
“저만 그런 거 아니에요”
“그런 누가 또 그러는데!!”
엄마가 아기 때도 그랬어요
구구절절 전세기 댓글에 마음이 상했다고 적었지만, 나도 과거를 돌아보지 않는 사나이의 마음으로 되새기지 않으련다.
사실 비용이고 댓글이고 애당초 상관이 없었다.
이탈리아에 남은 진짜 이유는 우리가 여기에 살.고.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 삶이 있으니 떠나지 않음을 선택한 거다. 한국은 행복할 때, 여유가 있을 때, 가서 즐거운 추억만을 만들고 돌아오고 싶다. 인정하기 힘들지만 어느새 ‘검은 머리 이탈리안’의 마음이 되어버렸는지도 모르겠다. 한국의 뉴스를 보아도 우리가 왜 여기 있지? 한국에 있었어야 하는데 라는 심정이라기보다 ‘한국은 이렇게 이겨나가고 있구나 대단하다.’ 라고 느낀다.
다행히 이번 주에 접어들면서 이탈리아는 미세하지만 확진자도 사망자도 조금씩 줄었다. 우린 우스개 소리로 모지리 이탈리아라고 부르는데, 이 모지리들이 정말 애를 쓰고 있다. 그리고 이탈리아가 세상 모지리인 줄은 진작에 알았는데 까고 보니 한국 빼고 다 모지리인 거다.
생각한다.
( 우쭈쭈 이탈리아를 감싸며 ) 그래 너희는 적어도 적과 속이 같아. 다른 애들(다른 나라들) 은 되게 대단한 척했지만 결국 비슷한 수준이었어. 그냥 한국이 정말 기가 차게 대응한 거야. 지금 당장은 한국처럼 그 어떤 나라도 흉내도 내기 힘들어. 하지만 한국이 표본을 만들어 주었으니 다음을 대응함에 있어서는 일상의 희생도 안타까운 죽음도 맞이하지 않을 거야. 그리고 다 모지리인 거 들통났으니 서로 의지하고 연대해야만 이겨낼 수있다는 것도 배웠겠지. 이 위기를 기회로 성장해야만 해. 지금의 우울감, 불안감에 잠식되지 말자. 지나고 나면 과거의 상처를 돌아보지는 말자. 하지만 과거의 실수를 부족함을 잊지는 말아야지. 지금을 겪은 우리가 바꿔나가야 해. 미래의 아이들에게 우리의 모습을 반복한다고 나무라지 않도록.
하루에 꼭 한 번은 마음이 쿵하고 내려앉는다. 어제의 일상이 그립고 오늘의 현실이 믿기지 않아서 내일도 오늘과 다르지 않을 거라는 사실에. 하지만 매일 행복하지는 않아도 하루에 행복한 순간은 꼭 있어 마음을 다시 제자리에 놓을 힘을 얻는다.
가장 무거운 마음도 움직일 수 있는데
일상을 제자리로 옮기지 못할 이유가 무엇이랴?
written by iando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