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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로마 김작가 Feb 14. 2018

남겨둠에 대하여

로마에서 남매 키우기 #20

지금 살고 있는 로마의 동네에 자리 잡은 지 어느덧 10년이 넘는다. 아파트 뒤 쪽엔 꽤 큰 공터가 있는데, (아니 공터라기보다는 폐허가 있는데 ) 그 한가운데 굴뚝이 남아있다. 아마도 우리 아파트 자리에는 예전에 공장이 있었나 보다. 무너진 건물 사이 그 굴뚝을 왜 굳이 남겨두었는지는 알지 못한다.


이안이가 태어나고 나서니까 한 4년 정도 되었나 보다. 페허에 건물이 올라가기 시작했다. 지하 주차장이 없는 우리 동네에 주차장이 생긴다는 이야기도 있고, 슈퍼가 들어서는 주상복합 건물이 생긴다는 이야기도 있다.


그렇게 올해까지 공사를 하고 있는데 굴뚝이 아직도 서있다. 언제 부수려나 싶었는데 어느 날 보니 공사 중인 건물 밑에 사진이 붙여있었다. 완공 후 모습이었는데, 디귿자 건물 한가운데 여전히 굴뚝이 세워져 있다.

보기 드물게 외관에 페인트 칠이 없이 벽돌인 우리 아파트와 페허를 함께 끼고 서있는 뒷 동, 그렇게 이 세 아파트가 공장 프로젝트라는 이름으로 묶어져 있었다. 새로 지어지는 건물 중앙엔 굴뚝을 둘러싸고 작은 광장이 만들어질 거다.   


그러고 보니 동네 슈퍼 한가운데도 굴뚝이 남이 있다. 그간 무심코 지나쳤는데 며칠 전에 깨달았다. 슈퍼 에스컬레이터 벽면에는 예전의 모습들이 사진으로 남겨져있다. 

슈퍼에서 장을 보고 나오는데 남편이 말했다.


_예전엔 서울에서 다니면 목욕탕 굴뚝이 많이 보였는데..
_너무 70년대생 티 나는 거 아니야? 난 본 적 없는데? ㅎㅎ(난 80년대 생 그는 70년대 생이다) 그런데 여기는 이렇게 남겨두는데 우린 왜 다 그렇게 없애버려야만 했을까? 왜 모두 새것으로 덮어 버렸을까? 뭔가 더 나은 것, 새 것에 대한 강박이라도 있는 것처럼, 다 없애고서는 시간이 지나서 사라진 과거와 전통을 그리워하고 안타까워하고.....
 _우린 6.25를 겪었잖아. 너무 가난했고...
 _여기도 2차 대전 패전국이었잖아. 영화 자전거 도둑만 보면 여기 가난도 심각했을 텐데....
 _생각해봐, 이탈리아도 우리와 다르지 않았어 6,70년대 개발을 했잖아. 그런데 그들은 먼저 깨닫은 거야.
 _뭘?
 _지키는 것이 더 가치 있다는 것을, 물론 돈이 될 거란 것도.
 

알베로벨로
로마의 흔한 도로

이탈리아를 여행하다 보면 대다수의 도시에는 centro storico 가 존재한다. 역사지구다. 보통 이 구역에는 지정된 차량을 제외하고 차량 진입이 되지 않는다.


이 역사지구를 중심으로 그 주변에 현재 이탈리아를 살아가는 사람들이 거주하는 현대적인 구역이 존재한다. 실제 이탈리아의 삶은 이곳이라고 해야 하겠다. 뭐랄까. 이탈리아도 개발을 하고 새로운 공간을 형성한다. 하지만 지나간 시간의 공간들 역시 곁에 남겨둔다.

내가 이탈리아에 오던 10년 전 한국에선 낡음, 오래됨이 그렇게 빛을 보지 못했다. 그런데 몇 년 전부터인가 한국에 휴가를 들어가 친구들을 만날 때면 어김없이 핫플이라는 곳은 오래된 공장 한옥 좁은 골목길에 위치했다. 그러고 다들 말하는 거다.


왜 다 없앴을까? 이렇게 좋은데, 더 남겨두었으면 좋았을걸.


오래된 주공아파트의 사라짐, 숲의 파괴 등의 한국의 기사를 접할 때면 가슴이 아려온다. 이탈리아에 살면서 남겨놓음 남겨짐 그리고 이어짐이라는 것을 많이 생각하게 된다. 문화, 정서 등이 이어지기 위해선 눈으로 보이는 것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오래됨이 가치 있다 해도 말로 전하는 것은 한계가 있지 않은가?


아파트 뒤의 건물이 완공되어도 굴뚝이 남겨지고 이 장소의 역사가 이어진다. 어른들은 굴뚝 아래 앉아서 쉬고 아이들은 뛰어노는 모습을 상상한다.

2017년 모노폴리, 이탈리아
2017년 알베로벨로, 이탈리아

어제 한 기사를 접했다.


링크 :  http://www.nocutnews.co.kr/news/4919911


재건축 아파트도 우리의 문화유산이 될 수 있을까? 최근에 서울시 도시계획위원회가 잠실 주공 5단지 재건축을 승인하는 과정에서 '재건축 사업할 때 아파트 한 동은 문화유산으로 보존해야 된다'라는 내용을 조건으로 내걸었다. 이 소식이 알려지면서 논란이 있었다.


좋은 아이디어다, 지지하는 분들이 있는가 하면 흉물스러운 아파트를 남겨서 뭐하냐, 사유재산 침해다 이런 의견도 나오고 있다. 지금 이런 식으로 보존 대상 아파트로 지정된 곳들은 6,70대의 아파트 들이다.

이에 찬성하는 조명래 교수의 발언을 옮겨본다.

◆ 조명래> 우리나라 도시 개발을 보면 특히 최근에 와서 정비사업을 할 때 보면 단지 전체를 철거해서 완전 새로운 건축을 짓는 방식으로 하다 보니까 도시 역사라든가 장소성이라든가 이런 것들이 보존되는 경우가 별로 없습니다. 그래서 서울 경우에 역사가 최소한 600년에서 1300년 역사를 갖고 있는데 외국인이 와서 보게 되면 도시가 그런 역사를 갖고 있는지 전혀 확인이 안 되고 있죠. 그렇게 해서 대규모 철거 정비 사업을 할 때 최소한도의 장소가 기억이 될 수 있도록 하는 흔적을 좀 남겨야 되지 않느냐 해서 서울시가 도시계획적인 방식으로 이 사업을 지금 추진하고 있는 것입니다.


잠실 주공 5단지 재건축에는 굴뚝하나 와 아파트 한 동의 일부를 남겨놓을 계획이다. 새것도 중요하지만 옛것이 없애지 않고 흔적을 남겨두어 시간이 자연스럽게 이어지면 좋겠다.


서울의 프로젝트의 시작이 빛나는 결과를 낳기를 응원한다. 물론 이는 아주 오랜 시간이 지났을 때 가치를 발휘하겠지만, 모든 가치가 빛을 내기 위해선 반드시 시간이 필요한 법이니까.



지난달 스키장에 다녀오고 한 주만에 우린 다시 캄포 펠리체로 향했다. 눈사람을 만들지 못해 아쉬워하는 이안이를 위해서였다. 이도 이유식을 만들면서 당근 하나를 남겨두었다가 가지고 갔다.


늦은 오전에 출발해 바로 점심을 먹으려 했는데 출발과 함께 잠든 이안이가 깨어나 눈밭을 보자 만지고 가면 안 되겠느냐 물었다. 잠깐 만지고 간다는 것이 눈사람 하나 만들고서야 겨우 식당으로 출발할 수 있었다.


지난번 양꼬치에 버섯 파스타가 생각나 다시 들린 식당은 자리가 없었다. 스키장을 벗어나면 있는 작은 마을의 식당에 가보아도 마찬가지였다. 차를 세우고 검색되는 곳은 다 전화를 해보았지만 결과는 같았다.


결국 우린 어쩔 수 없이 처음 눈사람을 만들었던 자리에 서 있는 파니니 트럭으로 돌아갔다. 목이 턱턱 막히는 딱딱한 빵에 포르케타를 넣어 먹을 생각에 괜히 눈을 만지고 가자고 한 아들이 원망스러웠다. 그런데 웬걸? 즉석에서 쌀시체를 구워 절인 야채를 넣어 케첩을 뿌려주는데 추운 눈밭에서 이보다 더 맛있는 식사는 없다 싶다. 

갓 튀긴 감자튀김에 뜨끈한 와인을 마셨다. 와인의 달짝지근한 시나몬 향이 코를 찔렀다. 술을 못 마시는 남편이 이 맛을 함께 즐길 수 없어 그렇게 아쉬울 수가 없다. 디저트로 누텔라가 잔뜩 들어간 크레페를 먹었다. 춥다며 차 안에서 열심히 케첩을 찍어 감자튀김을 먹는 아이를 보다 남편과 눈이 마주쳤다. 웃었다. 충분했다.

허허벌판에 덩그러니 하나 있는 작은 바에  차를 세웠다. 작은 오두막엔 치즈와 살라메를 팔고 있었다. 그뿐이었다. 작은 바. 그리고 눈 밭.  난 눈 위에 누웠다. 아이는 아빠와 눈싸움을 했다.

저 멀리 언덕에는 아이들이 썰매를 탄다. 아빠들은 썰매를 끈다. 어떤 가족은 아주 오래전 할아버지 집에서 본 듯한 까만 투브를 가져왔다. 애들이 둘러앉았다. 바나나 보트도 아니고 아빠가 끌다 떨어지자 까르르 웃고 난리가 났다. 점심때가 되자 둥글게 썰매 위에 모여 앉아 집에서 싸온 파스타와 파니니를 먹는다.


저 너머에 스키장이 보이지만 스키장 주변에선 식당도 스키용품점도 찾을 수 없다. 스키장 내에 작은 대여점 몇 군데와 카페 그리고 스키장 가는 길에 파니니 트럭이 다다. 스키장으로 향하는 길엔 작은 바 하나가 있을 뿐이다.

썰매를 타는 가족들을 본다. 어쩐지 저 썰매를 끌고 있는 아버지 역시 오래전 그의 아버지가 끄는 썰매를 타며 저 언덕을 내려왔을 것 같다. 그리고 저 아이도 미래에 이 곳에서 아이와 썰매를 탈 것만 같다.


나의 아이를 본다. 저 아이도 훗 날 자신의 아이와 이곳에 올 지도 모른다. 그날도 오늘처럼 이곳은 이렇게 허허벌판일 테다. 더 나은 무언가를 해주고 싶은 게 아니다. 오늘의 추억이 변함없길 바라는 마음이다. 이 풍경 이대로 남겨진다면 좋겠다는 바람이다.


written by iandos    


*해당 글에 들어간 모든 사진의 저작권은 글쓴이에게 있습니다.  

*매주 수요일 혹은 목요일 원고 발행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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