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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로마 김작가 May 25. 2018

그래서 내가 왔지

로마에서 남매 키우기 #20

아이는 유독 기저귀 발진이 잦았다. 유제품에도 예민해 우유를 마시고 수유를 하면 혈변을 누기 일수였다. 이유식을 시작하고 하루 걸러 두드러기가 올라왔다. 서서히 아이에게 주는 음식의 폭이 줄어들었다. 몸에 좋은 음식이 아니라 문제를 일으키지 않는 재료들로 채워졌다.


어린이집을 보내며 걱정이 많았는데 (이탈리아는 당연히 파스타가 주를 이루니) 별 일은 없었다. 이유식 때 주지 않아서인지 아이는 우유와 달걀은 선호하지 않아 굳이 제한할 필요도 없었다. 먹어도 별 문제없었고, 예민했던 건 돌 전이라 그랬구나 했다. 하지만 겨울이 오면 어김없이 피부는 예민해지고 발진이 올라왔다. 그러다 여름이 오면 언제 그랬냐는 듯 사라져 버렸다.

 

심각하게 생각되기 시작한 것이 아마도 재작년 겨울이었나 보다. 이전보다 좀 더 강하게 발진이 올라왔다. 아기 때부터 발진이 올라오면 멋모르고 로션에 스테로이드 연고를 섞어 발랐다. 내성이 생긴 건지 전혀 효과가 없었다. 아토피 아이들 부모들 다 그러하듯 안 써본 로션이 없다. 여기서 구하기 힘들면 이 나라 저 나라 회사 동료들에게 부탁해 공수했다. 소용없었다. 연고는 그때뿐이었다. 다시 재발했을 땐 전 보다 더 심해졌다. 노 로션을 시작했다. 로션도 연고도 답이 아니라면, 궁극적으로 재발을 막지 못한다면 아이 스스로 이겨내도록 지켜봐 줘야겠다고 생각했다. 우선 로션과 연고를 끊고 알로에 젤만 발라주기 시작했다.


겨울이 지나고 여름이 오자 아이의 피부는 더없이 깨끗해졌다. 이전에 없던 부들부들한 느낌까지 있었다. 완벽한 해결책을 찾았다고 생각했다. 내친김에 물 두려움을 극복한 아이의 수영 수업도 다시 시작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아무리 노 로션이라지만 수영장에 다녀와서는 보습을 충분히 해야 했나? 일반적인 피부는 아니지 않은가, 그래도 그게 정말 문제의 시작이었는지 솔직히 확신은 못하겠다. 당시 겨울이 시작됐고, 때마침 수영을 시작했고, 아이는 종종 감기에 걸렸다. 그냥 모든 것이 좋지 않은 환경이었는지.


그냥 지금 돌이켜 생각하는 거다. 아마도 그 시점이 아니었을까 하고, 무너지기 시작한 것이. 그냥 매일매일 언제부터였을까? 뭐가 문제였을까? 생각하고 또 생각한다. 아토피는 뭐랄까 몸의 균형에 균열이 생기길 기다리고 있는 거 같다. 그 순간이 오면 이때다! 하고 걷잡을 수없이 온몸에 퍼져버린다. 그때부터 일상은 전혀 달라진다. 매일 아침은 아이의 피부가 더 나빠졌느냐 좋아졌느냐로 판가름된다.


좋아져도 남들에겐 그냥 아토피가 심한 아이일 뿐이지만, 엄마는 희망을 가지고 행복해하고 다음 날 어김없이 무너진다. 이런 감정의 널 뛰기는 아이에 대한 걱정에서 시작되었음에도 결국 화를 아이에게 쏟아내게 했다. 자신보다 약한 존재에게 쏟아내다니 최악이다.


아침에 일어나 이불이며 손톱 끝이며 피가 덕지덕지 붙어있고 피가 나고 진물이 흐르는데도 무아지경에 자신의 몸을 긁고 있는 아이를 보면 이성을 잃고 소리를 질렀다. 결국은 100일부터 수면교육을 시작해 혼자 자던 아이 곁에 누워 자기 시작했다. 밤새 긁는 아이의 두 팔을 부여잡고 대신 긁어도 주고 밤새 온몸을 주무른다. 수시로 핸드폰 전등의 켜서 아이 몸을 확인하고 울고, 울고, 또 운다. 아이가 제일 괴롭겠지. 그런데 몇 달을 아이 긁는 소리를 들으며, 자는 것도 깨어있는 것도 아닌 밤이 계속되면 어느 날은 긁는 아이를 외면하고 귀를 틀어막고 잠을 청하기도 했다. 하루는 극도로 예민해져 아이 등짝을 후려치고 소리를 지르고 만다. 평생 그렇게 긁고 싶어? 계속 그렇게 빨간 몸으로 살 거야? 네가 긁어서 그런 거잖아! 참 모질게도 말했다. 하루는 아이가 울면서 소릴질렀다.


왜 난 계속 간지러워야 해?

집에서도 밖에서도 누가 뭐라 하지 않아도 아이는 자꾸만 자신의 살을 감췄다.

그냥 다 엉망진창.


최악은 지난 3월이었다. 한국에 휴가를 갔고 미세먼지는 최악 중 최악이었다. 살짝만 있던 둘째의 아토피가 온몸에 퍼졌다. 첫째는 더 이상 긁지 말라고 소리 칠수도 없을 만큼 악화됐다. 그런 아이들을 처음 본 어른들은 안쓰러워 어쩔 줄을 모르고 난 죄인이 되어버렸다. 옷을 갈아입히다 혹여나 아이가 옷을 벗은 채 거실에 나가면 황급히 아이를 안고 방으로 들였다. 벗은 몸을 보면 더 힘들어하실 걸 알기에.


만나는 사람마다 왜 그러냐 물었다. 세상 아토피에 좋다는 전국의 물 약 병원등을 조언을 해줬다. 한 달 내 온천을 몇 군델 다녔는지 모르겠다. 한의원에 갔더니 음식 조절을 하래서 한국 휴가 동안 나물 나오는 식당만 다녔다. 한국은 주식이 밥인데 밀가루 고기 안 나오는 식당은 찾기가 하늘의 별따기다. 

미세먼지 심한 어느 날, 한국 할아버지 집에서 하루 종일 사과 박스에서 놀던 이안도 남매, 이 때 둘의 피부는 정말 절정이었는데 사진 속에선 너무 즐겁다.

그리고 로마로 돌아왔다 유치원에선 아이가  너무 긁는 다고 전화가 오고 한글학교에선 음식 조절한답시고 군것질을 끊었더니 (엄마 없을 때 먹어둬야 싶었는지) 애들 간식을 다 뺏어 먹는다고 전화가 왔다. 난 아이의 사소한 잘못에도 예민하게 반응했다. 감정을 걷잡을 수 없었다. 이안이의 아토피가 심한 것도 있었지만 한국에서 뒤집어진 이도의 아토피가 계속 더 심해졌다. 어쩌지 아이 둘의 아토피는 견딜 자신이 없었다. 누군가는 첫째가 아토피가 있는데 둘째를 낳다니 용기 있다 했다.


아.... 이도도 이안이 처럼 진행되는 거야? 이도는 돌 전까지 전혀 피부에 트러블도 없던 아이였다. 이도는 아토피가 없는 아이라고 생각했다. 첫째의 피부가 최악이 되고  둘째도 시작되니 이성을  잃고 말았다. 이도에 대한 스트레스는 이안이에게 풀었다. 아이는 아이 나름대로 한국에서 돌아와 다시 이탈리아 유치원에 적응하며 스트레스를 받고 있던 터라 집에 오면 동생을 괴롭혔다.
내가 소리 지르면 아이는 울며 소리쳤다.


엄마 미워!
왜 그렇게 나쁘게 말하는 거야!
이제 뽀뽀 안 해줄 거야!
친구도 안 해줄 거야!

아이가 나에게서 제일 무서운 것은 내가 더 이상 아름다운 말을 하지 않고 뽀뽀도 해주지 않고 친구도 되어 주지 않는 거였을까? 아이가 나에게 벌을 주는 것이 아이가 가장 두려워하는 것을 나에게 행하는 것이 었을 텐데, 난 그 아름다운 말을 해주기에 사랑을 담아 뽀뽀를 해주기엔 아이의 피부가 너무 원망스러웠고, 지쳤다.


출구가 없는 미로를 혼자서 돌아다니는 기분이었다. 드디어 출구야, 하고 문을 열면 깜깜한 미로가 새롭게 시작되는....


밤에 잠을 깼는데 계속 눈물이 났다. 아이가 긁는 말 든 거실에 홀로 누웠는데 해가 뜰 때까지 울었다. 며칠을 새벽까지 울었다. 멍하니 있다가 울고 아이에겐 화내고 그러다 무서워졌다.


엄마라는 것이 너무 무거워졌다.


아이를 위해 했던 지난 모든 것들이 다 아이의 피부를 망치기 위해 했던 것만 같았다. 임신 때부터의 모든 것들이 아토피의 원인 같았다. 내가 뭐라고 나의 결정 나의 행동이 죄다 아이에게 드러난 다는 것이 너무 두렵고, 무거웠다. 엄마의 칭찬이 아이의 미래를 결정한다, 따위의 글만 봐도 욕지거리가 나왔다. 젠장! 성격 타고나는 거지! 피부고, 미래고, 성격이고, 지능이고, 뭐가 죄다 엄마 탓 이래!! 어쩌라고! 우리가 뭐 그렇게 대단하다고!!


하루는 아이가 너무나 심하게 반항하고 떼를 썼다. 또 소리를 지르려다 아이가 짠해져 마음을 추슬렀다.
저녁 아이를 씻기다 나의 엄마 이야기를 했다. 엄마의 엄마는 이젠 자고 있어서 예전 내가 짜증 내고 나쁜 말을 했던 것들에 미안하다고 말할 수 없어 너무 슬프다는 이야기, (지금 생각하니 내가 생각해도 어이없다. 짜증 내고 나쁜 말 한건 나였는데.) 아이가 스스로 뭔가 느끼겠지 했는데, 가만히 듣고 있던 아이가 이야기에 이어 말했다.

그래서 내가 왔지. 도와주려고.


_응?
_엄마가 슬퍼해서 내가 슬퍼하지 말라고 엄마의 엄마를 대신해서 도와주러 왔다고. 그리고 나중에 엄마도 엄마의 엄마를 만나서 미안하다고 말할 수 있을 거야.

예상치 못한 대답에 멍하니 아이를 바라보았다. 정말 이안이가 나의 엄마를 대신해 왔다면 아이의 모든 것을 사랑으로 받아주는 것이 내가 엄마에게 하지 못한 사과를 하는 방법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끓어오르던 마음이 잔잔해졌다.

다음 날 아침 유치원으로 향하는 길, 쓰레기 통 앞이 온통 꽃가루다. 며칠 전만 해도 쓰레기통만 보이더니 꽃가루만 보였다. 어제와 같은 오늘이었다. 그러고 보니 4월이 되고 아이 등원 길에 언성을 높이지 않은 날이 처음이구나, 깨달았다. 결국 아이의 행동에 대한 화가 아니었던 거다. 그냥 나의 화를 아이를 통해 푼 거다.


감정이 바닥을 치고서야 마음의 안정을 되찾았다. 아이의 모든 것을 다 떠안을 필요도 없고 내가 그만큼의 그릇도 아니다. 너무 애쓰지 말자. 내가 할 수 있는 만큼의 최선을 다하고 후회도 자책도 말고 도움을 청하고 손을 내밀어주면 잡으면 된다. 세상의 모든 것이 쓰레기와 꽃가루가 함께하는 법인데 내가 꽃을 보면 거긴 꽃밭인 거다.


내 안의 화가 사라지니 아이의 짜증도 사라졌다. 과연 정말 사라진 걸까? 아니면 변한 것 없이 여전한 일상인데 그냥 나에게 보이지 않게 된 걸까?

아이의 유치원에 들어서면 예수상이 있다. 아이와 인사를 하기 전 함께 기도를 하는데, 내 기도는 항상 같다.


_더 이상 아이들이 간지럽지 않게 해 주세요. 남편 즐겁게 일할 수 있게 지켜주세요. 우리에게 이런 소중한 일상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아이가 기도한다.


_엄마 웃게 해 주세요. 방구 뿡! 뿡!


우리가 서로에게 바라는 것은 하나다, 웃음.


4월이 지나고 5월이 왔다. 해 질 녘이면 어김없이 소나기가 쏟아진다. 집 앞 주차장엔 큰 나무가 서 있는데 유독 한 나무만 새잎이 나지 않았다. 괜히 마음이 쓰였다. 어느 날 보니 그 녀석도 무성하게 잎이 났다. 기다리던 여름이 왔고, 아이들의 피부도 느리지만 좋아지고 있다. 요즘 우린 많이 웃고, 깊게 잠든다.





p.s. 지난 5월 13일은 festa della mamma(엄마의 날)이었다. (이탈리아는 매년 5월 둘째 주 일요일이 엄마의 날이다.) 아이는 유치원에서 작은 선물을 만들어왔고, 올해도 어김없이 시가 적혀있다. 제목은 <엄마를 위한 웃음>. 아이들은 엄마의 웃음을 위한 매일을 사는 것 같다. 웃어야 하는데 난 시를 다 읽고 나니 눈물이 났다.

Un sorriso per la mamma


Per la tua festa, cara mammina,
Ti avevo scritto una canzoncina
Ma un uccellino ha beccato le note e mi ha lasciato le pagina vuote.
Quindi ho pensato, con gran coraggio, di preparati una torta al formaggio

ma due topini furbetti e veloci l'hanno nascosta tra i gusti di noci.
Presto ho cucito un vestito di seta Ma così stretto.... da mettersi a diata!

E la sciarpetta da me disegnata?
Una fatina me l'ha trasformata!
Scusami tanto, mammina mia,
ti ho raccontato qualche bugia...
per regalarti un dolce sorriso e farlo splendere sul tuo bel viso.

엄마를 위한 웃음


사랑하는 엄마, 엄마를 위한 축제의 날이에요.
엄마를 위한 노래를 만들었었어요.

그런데 작은 새가 악보를 물어가 버리고 빈 페이지만 남겨놓았어요.

그래서 전 큰 용기를 내어 엄마를 위해 치즈 케이크를 만들어 보기로 했어요.

그런데 못된 생쥐 두 마리가 도토리 사이에 재빨리 숨겨버렸어요.
전 빨리 실크 드레스를 만들었죠. 그런데 왜 이렇게 작아진 거죠? 마치 다이어트를 한 거처럼!

제가 디자인한 스카프는 또 어떻게요? 작은 요정이 다 망쳐버렸어요.
사랑하는 나의 엄마, 정말 미안해요.
이런 거짓말들을 늘어놓아서....
엄마에게 달콤한 웃음을 선물하고 싶었어요. 그 웃음이 아름다운 엄마의 얼굴을 빛나게 해주길 바라요.


written by iandos   

  

*해당 글에 들어간 모든 사진의 저작권은 글쓴이에게 있습니다.  

*매주 수요일 혹은 목요일 원고 발행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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