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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아 Jan 02. 2021

『시선으로부터』(정세랑)

여성, 가족, 제사에 대하여

흔하지 않은 여성 중심의 서사였다. 작가 스스로 “이 소설은 무엇보다 20세기를 살아낸 여자들에게 바치는 21세기의 사랑이다”라고 말했듯이 『시선으로부터』는 중심인물이 모두 여성들이었다. 제목의 의미 또한 이 소설의 핵심인물이지만 소설 속에서는 이미 사망한 ‘심시선’이라는 여성으로부터 뻗어 나온 가족들의 이야기라는 뜻이었다.           




심시선은 한국전쟁에서 민간인 학살로 가족을 모두 잃고 하와이로 위장 결혼의 방식을 통해 이민을 떠난다. 그곳에서 ‘마티아스 마우어’라는 유명한 화가를 만나게 되고, 배움의 기회를 주겠다는 그의 제안을 믿고 그를 따라 독일로 간다. 하지만 마티아스 마우어는 심시선을 자신의 소유물쯤으로 생각했고, 심시선은 온갖 잡일을 하며 마티아스 마우어의 눈 밖에 나지 않도록 애를 쓰면서 우여곡절 끝에 미술 관련 학위를 받는다. 그곳에서 첫 번째 남편인 요제프 리를 만나 파리를 거쳐 한국으로 도망치듯 돌아온다.      


한국에서 심시선은 그림 활동 대신에 생계를 위한 글쓰기에 몰두한다. 요제프 리가 향수병을 이기지 못하고 고향으로 돌아간 뒤, 심시선은 홍낙환을 만나 재혼을 하고 그의 딸 홍경아를 딸로 품어 키운다. 시간이 흘러 심시선에서 뻗어 나간 자녀들이 성장하여 결혼을 하고, 또 자녀를 낳는다. 심시선이 떠난 뒤 남은 이들 모두는 심시선에 대한 각자의 추억들을 품고 살아간다.      


심시선이 죽은 지 10년 되는 해, 심시선의 큰딸 ‘명혜’는 한 번도 지내지 않았던 심시선의 제사를 지내자고 한다. 다른 형제들은 이해할 수 없었지만, 집안에서 명혜의 위치는 독보적인 것이므로 따를 수밖에 없다. 명혜가 제안한 제사는 보통의 제사와 완전히 다른 제사였다. 심시선이 한국전쟁 당시 이민 갔던 하와이에 온 가족이 함께 가서 제사를 지내자는 것이었다. 제사의 방식마저 신선하기 그지없었다.      



“기일 저녁 여덟 시에 제사를 지낼 겁니다. 십 주기니까 딱 한 번만 지낼 건데, 고리타분하게 제사상을 차리거나 하진 않을 거고요. 각자 그때까지 하와이를 여행하며 기뻤던 순간, 이걸 보기 위해 살아 있었구나 싶게 인상 깊었던 순간을 수집해 오리고 하는 거예요. 그 순간을 상징하는 물건도 좋고, 물건이 아니라 경험 그 자체를 공유해도 좋고.”
(중략)

“엄마가 젊었던 시절 이 섬을 걸었으니까, 우리도 걸어 다니면서 엄마 생각을 합시다. 엄마가 좋아했을 것 같은 가장 멋진 기억을 가져오는 사람에게…….”
“상품이 있어요?”
“아니, 그래도 제사니까 상품은 좀 그렇고 박수를 쳐 줄 거야.”(83쪽~84쪽)          


엄마의 걸음을 따라, 추억을 따라 하와이를 누비며 엄마를 생각하자는 명혜의 제안에 가족 모두가 술렁이고, 조금은 설레 한다. 가족들은 저마다 어떤 물건을, 혹은 경험을 심시선의 제사상에 올릴지 고심하며 하와이를 누리고 즐긴다.            




궁금했다. 모두가 어떤 것을 심시선의 제사상에 가지고 올지, 마치 내가 심시선의 막내 손녀나 된 듯한 기분으로 그들의 발자국을 따라 걸으며 한 번도 가본 적 없는 하와이를 그렸다. 심시선이 삶을 위해 도망치듯 쫓겨온 곳을 둘러보며 끊임없이 과거의 엄마와 대화를 하는 가족들의 모습이 뭉클했다.


그 과정이 더욱 의미있게 다가왔던 것은 단순히 죽은 엄마 혹은 할머니를 그리워하는 것에 그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가족들은 심시선을 쫓으며 저마다의 방식으로 꾸려가던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았다. 어떤 이는 지난날의 상처를 어루만지기도 했고, 어떤 이는 앞날의 새로운 희망을 그리기도 했다.       


그럴 수 있었던 것은 심시선의 삶이 당대 어떤 여성과도 달랐기 때문이었다. 독일에서 학위 과정까지 마치고 온 심시선의 집에는 당대 내로라하는 예술가들이 모여들었다. 심시선은 여성에게 냉정하고, 예술가들에게 관대하지 않았던 시절을 살면서도 세상에 기죽지 않았다. 당당하게 자신의 삶을 살았고, 조금 더 배운 사람으로서 자신의 목소리를 내는 데 두려워하지 않았다. 심시선의 자녀들인 명혜, 명은, 명준, 경아는 그런 엄마의 모습을 보며 자랐고, 화수, 지수, 우윤, 규림, 해림은 그런 부모님과 할머니의 모습을 보며 자랐다.           


시선으로부터 뻗어 나온 가족들은, 오전부터 바삐 집을 나서거나 구석에서 마지막 마무리를 하며 도사렸다. 별것 아닌 일에 진심을 다해 도사리는 것이 이 집안사람들의 공통점이구나 서로 헛웃음을 웃으면서도 끝까지 그랬다. (308쪽)

우리는 추악한 시대를 살면서도 매일 아름다움을 발견해내던 그 사람을 닮았으니까. 엉망으로 실패하고 바닥까지 지쳐도 끝내는 계속해냈던 사람이 등을 밀어주었으니까. 세상을 뜬 지 십 년이 지나서도 세상을 놀라게 하는 사람의 조각이 우리 안에 있으니까. (331쪽)          


그들은 이미 고인이 되었지만, 자신의 뿌리였던 심시선과 끊임없이 교감하며 상처를 극복하고 희망을 그려간다. 시선의 삶은 끝났지만, 끝나지 않고 계속되고 있었다. 시선의 피를 이어받은 자손들이 그렇게 살아가고 있었다. 저마다의 방식이지만 심시선이 남긴 삶의 태도를 어떤 식으로든 내면화하여 세상에 맞서고 있었다.     


심시선의 10주기 제사는 그런 의미에서 시선을 기리는 자리라기보다는 시선으로부터 시작된 가족들을 한데 모으고 다시 저마다의 자리로 흩어지게 할 일종의 의식이었다. 시선이 떠난 지 10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자신의 몸 안에 시선의 피가 흐르고 있음을 확인하는 자리이자, 그로써 조금 더 ‘시선’다운 방식으로 세상을 살아가게 할 에너지를 충전하는 자리. 소설을 읽어가는 내내 심시선의 가족들이 보여주는 애도의 방식이 누군가의 죽음을 애도하는 가장 아름다운 방식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에게 제사는 무척이나 익숙한 문화이다. 할아버지, 할머니와 한집에서 살았고, 할아버지가 장남이셨던 탓에 얼굴도 이름도 알 수 없는, 이미 세상을 떠난 3대의 제사가 모두 우리 집에서 치러졌다. 돌아가신 분들은 약속이나 한 듯, 대부분이 찬바람이 불어오기 시작하는 계절에 돌아가셨고 덕분에 추석부터 이듬해 음력설까지 한 달에 최소 두세 번은 제사가 있었다. 심지어 추석 직후 한 달간은 일주일에 두세 번도 있었다.  


나는 외손녀였기에 그 제사와 아무런 관련이 없었다. 집 안방에 차려지는 제사상에 어떤 지분도 없었고, 그러니 절 한 번 하지 않았다. 다만 삼시 세끼 제삿밥만 먹어야 하는 날들이 너무 길어서 조금 힘들었다. 튀김이고 나물이고 산적이고 탕국이고…… 어쩌면 모든 메뉴들이 그렇게 손이 많이 가는 것들인지. 할머니가 종일 서서 만든 음식들임을 알았기에 질려도 질린다 말하지 못하고 맛있게 먹었다. 지난 제사 음식이 채 처리되기도 전에 다음 제사 음식이 만들어지던 주방의 모습을 잊을 수가 없다.


이제는 할아버지도 돌아가셨고, 제사는 큰외삼촌네로 모두 넘어갔다. 할아버지가 돌아가시기 몇 해 전부터 여러 조상들의 제사를 이리저리 합쳐서 지냈고, 삼촌네로 넘길 때는 할아버지의 부모님 제사만 넘겨졌다. 이제 외삼촌 내에서는 할아버지의 부모님과 2년 전 돌아가신 할아버지의 제사만을 지낼 것이다. 그렇게 묶고 엮어 줄이고 줄일 수 있는 것을, 그토록 오랜 세월 고생한 할머니가 이제 와 안쓰러울 따름이다.           


언젠가 엄마가 나와 동생에게 그런 얘기를 한 적이 있다.      


“이다음에 엄마 죽고 없으면, 제사 같은 거 지내지 말고 그날 하루는 너희들 다 모여서 맛있는 밥 한 끼 먹어라.”     


엄마라는 단어 뒤에 ‘죽음’이라는 단어가 놓이는 것 자체가 너무도 두려워서 그런 말 하지 말라고, 알아서 한다고 했지만, 엄마는 단호했다. 그냥 일 년에 한 번쯤 자매들끼리 모여서 못다 한 얘기 나누고 엄마 생각 한번 해주면 된다고, 담담한 목소리로 그 말을 하는 엄마에게 어쩔 수 없이 그렇게 하겠다는 약속을 했었다.      


역시나, 그 방법이 가장 아름다운 방법이었을까.          




사람이 죽은 날을 기일이라고 한다. 한자로는 ‘忌日’이다. 남은 사람들은 기일이 되면 기제(忌祭)를 지내며 죽은 사람을 추모한다. 지금까지 제사의 방식은 죽은 사람을 추모하기 위해 남은 사람들이 고통받는 것이었다.      


이 소설을 읽으며 생각해보았다.

기일이 ‘記日’이라면 어떨까.

기록할(기억할) 기(記)에 날 일(日) 자를 쓰는 기일, 그래서 죽은 사람을 기억하는 날쯤으로 대체된다면.

일 년 중 단 하루, 떠난 사람을 기억하며 남은 가족들이 밥 한 끼쯤 함께 먹는, 혹은 여행 한 번쯤 함께 떠나는 날이면.

그 과정에서 함께 한 이들끼리 서로의 삶을 돌아보며 위로하고 응원하는 자리가 된다면.

그렇다면 떠난 사람도 남은 사람도 조금은 더 행복해지지 않을까.                






덧붙임. 이 소설의 키워드를 몇 개 뽑아보자면, ‘여성’, ‘제사’, ‘한국전쟁’, ‘가족’, ‘뿌리’ 등이 될 것이다. 내 경우에는 ‘제사’라는 키워드에 집중해서 독서노트를 썼지만, 사실 이 소설의 핵심 키워드는 제사보다 ‘여성’에 가깝다. 심시선이라는 인물 자체가 시대를 앞서 나간 여성이었고, 그로부터 뻗어 나온 명혜나 명은, 경아도 굉장히 주체적이며 자기 주도적인 여성이기 때문이다. 그런 면에서는 심시선의 손녀에 해당하는 화수나 지수, 우윤, 해림도 마찬가지였다.


‘여성’이라는 키워드에 대해서는 독서노트에서 제대로 다루지 못해서, 밑줄 그었던 문장들을 옮겨 쓰는 것으로 대신해본다. 줄을 그을 때마다 정말로 심시선 같은 여성이 한국 근현대사에 존재했다면 세상이 조금은 달라졌을까 생각했다.          


심시선 : 형식만 남고 마음이 사라지면 고생일 뿐입니다. 그것도 순전 여자들만, 우리 큰딸에게 나 죽고 절대 제사 지낼 생각일랑 말라고 해놨습니다.
진행자 : 아, 따님에게요? 아드님 있으시잖아요.
심시선 : 셋째요……? 걔? 걔한테 무슨. 나 죽고 나서 모든 대소사는 큰딸이 알아서 잘할 겁니다. (10쪽, TV토론 <21세기를 예상하다>)   
 심시선 : 아이, 남편들이랑 무슨 대화를 해요? 그네들은 렌즈가 하나 빠졌어. 세상을 우리처럼 못 봐요. 나를 해칠까 불안하지 않은 상대와 하는 안전한 섹스, 점점 좋아지는 섹스 정도가 얻을 수 있는 것입니다.
질문자 : 렌즈요?
심시선 : 아무리 똑똑해서 날고 긴다 해도, 다정하고 사려 깊은 성품을 타고났다 해도 우리가 보는 것을 못 봐요. 대화는 친구들이랑 합니다. 이해도 친구들이랑 합니다.(20쪽 『여성XX』주최 다과회 녹취록)     
다 포기하고 싶은 날들이 내게도 있었습니다. 아무것에도 애착을 가질 수 없는 날들이. 그럴 때마다 생각합니다. 죽음으로, 죽음으로 향하는 내 안의 나선 경사로를 어떻게든 피해야겠다고. 구부러진 스프링을 어떻게든 펴야겠다고. 스스로의 비틀린 부분을 수정하는 것, 그것이 좋은 예술가가 되는 길인지는 몰라도 살아있는 예술가가 되는 일임은 분명합니다. 매혹적으로 보이는 비틀림일수록 그 곁에 어린 환상들을 걷어내십시오. 직선으로 느리게 걷는 것은 단조로워 보이지만 택해야 하는 어려운 길입니다.(30쪽, 예술대학 강연에서 심시선의 말)          
자기 자식이 어떤 성품인지 다 아실 테니 재능의 있고 없고를 떠나, 하지 않으면 스스로를 해칠 것 같습니까? 즐겁게 그리고 쓰고 노래하고 춤추는지, 하지 않으면 괴로워서 하는지 관찰하십시오. 특히 후자라면 더더욱 인생의 경로를 대신 그리려고 하지 마십시오. 그런 아이들을 움직이는 엔진은 다른 사람이 조작할 수 없습니다. 네, 다른 사람입니다. 부모도 결국 다른 사람입니다. 세상에 대한 지나친 환상을 걷어내주시기야 해야겠지만, 가능성이 조금 번쩍대다 마는지 오래 타는지 저가 알아서 확인하도록 두십시오.(220, 부모 연합 초청 강연에서 심시선의 말)     
일을 얼마나 사랑해야 하는지 여전히 감이 오지 않았다. 일을 사랑하는 마음이야말로 길들여지지 않는 괴물 늑대와 같아서, 여차하면 이빨을 드러내고 주인을 물 것이었다. 몸을 아프게 하고 인생을 망칠 것이었다. 그렇다고 일을 조금만 사랑하자니, 유순하게 길들여진 작은 것만 골라 키우라는 것 같아 자존심이 상했다. 소소한 행복에서 의미를 찾자, 바깥의 평가보다 내면이 충실한 삶을 택하자는 요즘의 경향에 남녀 중 어느 쪽이 더 동의하는지 궁금했다. 내면이 충실한 삶은 분명 중요한데, 그것이 여성에게서 세속의 성취를 빼앗아가려는 책략은 아닌지 의심스러웠다. 그런데 성취를 하려니 생활이 망가지고, 일만 하다가 죽을 것 같고…….(248쪽, 우윤의 생각)     
육아휴직이 제대로 지켜지는 여초 회사에서도 여자들은 회사를 그만두곤 했다. 주로 아이가 초등학교에 들어가서가 고비였다. 경아도 회사에서 학교로 몇 번이나 달려갔는지 모르고, 잠자리 쫓으러 다니는 남편은 그다지 도움이 되지 않았다. 가끔 명은이 부러웠다. 남매를 낳은 걸 후회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 가벼운 삶이, 무엇에든 집중할 수 있는 여유가. 경아는 집중력도 기억력도 다른 온갖 수행 능력도 사실 산산조각 난 채 십수 년을 살아왔다. (263쪽, 경아의 생각)     
“여자도 남의 눈치 보지 말고 큰 거 해야 해요. 좁으면 남들 보고 비키라지. 공간을 크게 크게 쓰고 누가 뭐라든 해결하는 건 남들한테 맡겨버려요. 문제 해결이 직업인 사람들이 따로 있잖습니까? 뻔뻔스럽게, 배려해주지 말고 일을 키우세요. 아주 좋다, 좋아. 좋을 줄 알았지요.”(269쪽, 화가 황민하가 기억하는 심시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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