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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아 Apr 14. 2021

『어른이 되어 그만둔 것』(이치다 노리코)

젊었을 때는 끝없이 펼쳐지는 세계 속에서 조그마한 내 존재의 의미를 찾는 것만으로도 벅찼습니다. 막연한 세계에 나를 맞추려고 애썼지요. 하지만 나이가 들수록 세계는 생각보다 훨씬 더 불확실하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어요. 그러다 보니 잣대를 나 자신에게 둘 수밖에 없겠다 싶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렇게 서랍 속 물건들을 재정의하면서 저의 50대는 시작되었습니다.
그런 작업을 하는 동안, 젊은 시절부터 ‘이건 꼭 필요해’라며 고수하던 원칙이나 습관이 사실은 꼭 필요치 않을 수도 있겠다 싶었어요. 일에 대해 무리하게 애쓰던 강박을 버리기, 음식이나 패션에 대한 집착을 버리기, 일상에 자리 잡은 여러 불필요한 습관을 그만두기…. 그렇게 제 삶 속에서 하나둘씩 ‘그만둔 것’을 이 책에 담았습니다. (들어가며 中)     


저자는 50대에 들어선 라이프스타일 에세이스트이다. 그가 스스로의 삶에서 ‘그만두기’를 선택한 나이는 오십이 되어서였다. 그렇게 보면 이 책 제목에 등장하는 ‘어른’의 기준을 40대 후반쯤으로 둔 것 같다. 저자는 그 나이를 지나며 더 이상 자신이 ‘젊지 않다’고 생각했고, 그때부터는 세계에 나를 ‘맞추기’보다 ‘나’의 기준을 분명히 세우는 게 필요하다고 여겼다.      


이 책은 ‘일, 관계, 일상, 스타일’ 네 가지 큰 카테고리에 따라 저자가 ‘그만둔 것’들을 다루고 있다. 저자가 그만둔 것들은 ‘쓸데없이 열심히’, ‘결점 고치기’, ‘그래도 남들만큼’, ‘칭찬을 기대하는 마음’ 등 삶의 자세부터 ‘손편지 쓰기’, ‘스크랩과 북마크’, ‘유기농 집착’, ‘헬스장 등록’, ‘비싼 속옷 구입’, ‘피부 화장’ 등의 습관까지 무척이나 다양했다.      


처음 책의 목차를 보고서 무척 놀랐다. 그만둘 것이 34가지나 된다니! 하지 않아도 괜찮은 일들, 어쩌면 하지 않아서 삶이 더욱 행복해지는 일들 34가지나 ‘더’ 하고 살았다니! 그 일들을 그만두기 전까지 저자의 삶은 어땠을까. 떠올리는 순간, 숨이 턱 막혀오는 듯했다. 그러면서 불과 얼마 전까지의 내 모습이 겹쳐졌다. 저자와 꼭 닮았던 내 모습이.     




나도 저자처럼 완벽주의자적인 면이 있었다. 무슨 일을 하든 ‘완벽한 준비’가 되어 있지 않으면 마음이 편안하지 않았다. 열심히 하는 태도에 ‘쓸데없이’라는 수식어는 가당치 않다고 생각했다. (쓸데없이 매사에 열심이었다는 말이다.) 나 자신을 느슨하게 풀어주지 못했고, 여유를 부릴 시간이 있다면 하나라도 더 해내고 싶었다. 무엇이든 내 손으로 처음부터 끝까지 해내는 것이 제일 편해서 스스로를 혹사시켰다.      


뿐만이 아니었다. 꼭 필요하지 않은 것들에 집착하고 남들에게 보이는 것들에 예민했다. 모임만 있으면 새 옷을 사 입었고(옷장에 옷이 가득해도 마땅히 입을 옷이 없어 보였다), 작은 키를 만회해보고자 하이힐을 고수했다. 잘하지 않는 액세서리나, 자주 사용하지 않을 게 뻔한 문구류를 ‘기분 전환’ 삼아 구입했다. 어제와 같은 외투를 입은 날이면 괜히 위축되었고, 아이라인을 그리지 않고 출근을 한 날이면 낭패감 비슷한 감정까지 느꼈다.      


그때의 나는 ‘나’를 몰랐다. ‘나’를 알아간다는 게 어떤 것인지조차 몰랐으면서, ‘나’를 잘 안다고 착각하며 살았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때는 누군가의 시선 속에서 어떤 식으로든 ‘괜찮은 사람’으로 보이고 싶었다. ‘괜찮은 사람’이라는 틀을 만들어놓고 어떻게든 그 안에서 벗어나지 않으려 애쓰며 살았다. 적당한 몸매를 유지하며, 예뻐 보이는 옷을 입고, 남 보기에 그럴싸한 취미 생활을 하려 했다. 일도 잘하고, 사람도 좋고, 관계도 두루 잘 맺는 사람이 되려 했다.      


글로 쓰면서도 숨이 막힌다. 어떻게 그렇게 많은 것을 손아귀에 쥐고 살았을까.      


작년부터 책을 읽고 꾸준히 글을 썼다. 그러면서 삶의 많은 부분이 바뀌었다. 저자처럼 ‘그만두기’를 시작한 것이다. 가장 큰 변화는 ‘기웃거림을 그만둔 것’이다. 주변 사람들, 함께 직장생활을 했던 동료들, 아이 친구의 엄마들 등 ‘나’ 아닌 ‘그들’의 삶을 더 이상 기웃거리지 않기로 했다.

      

‘저 사람은 옷을 참 잘 입네. 어떻게 저렇게 멋스럽게 입지?’

‘나는 휴직 5년 차인데, 저 친구는 벌써 저런 성과를 내는 자리에 가 있네. 나만 너무 뒤처지는 건 아닐까.’

‘저 엄마들은 어떻게 저렇게 아이들을 잘해 먹이면서도 놀아주기도 잘 놀아주는 걸까.’     


기웃기웃, 내 삶을 살필 에너지를 쪼개어 남의 삶을 기웃거리는 일은 참 못할 짓이었다. 그걸 알면서도 쉽게 끊을 수가 없었다. 남을 의식하고, 알게 모르게 스스로를 남과 비교하며 없던 불안을 만들어 내는 것은 오랜 습관이기도 했다. 그러나 정말로 좋아하는 일(독서와 글쓰기)을 찾아 온전히 몰입하게 된 후부터, 오랜 습관은 서서히 자취를 감추기 시작했다. 남의 형편을 기웃거릴 시간에 내 마음을 기웃거리기로 한 것이다.

     

사소한 생활 습관 중에도 그만둔 것들이 많다. 건조기에서 꺼낸 빨래를 그때그때 개어야 한다 생각, 모든 음식을 직접 해 먹어야 한다는 생각, 반찬 그릇 가짓수를 채우려 이것저것 밑반찬을 꺼내는 일, 모든 물건을 자기 전에 반드시 제자리에 정리해두고 자는 습관, 하이힐 신기, 예쁘지만 편하지 않은 옷들을 사는 일까지……. 나를 이루었던 많은 생각과 습관들을 그만두고, 그 자리에 내가 좋아하는 것들을 채우기 시작했다. 그 과정에서 배운 것은 ‘절대’, ‘결코’, ‘반드시’라는 단어가 적용될 일이 인생에서는 그리 많지 않다는 것이었다.      


가능하면 언제나 ‘유연한 머리’를 유지하고 싶어요. 이게 아니면 안 돼, 하고 한 가지에 집착해서 다른 것을 잘라버리기보다 이쪽도 괜찮네, 하고 내 안의 선택지를 늘리는 것이 풍요로운 삶을 사는 비결인 것 같습니다.(유기농 집착을 그만두다 中)     


꼭 내 마음 같은 말이다. 앞으로 내 삶에서 키워드로 삼고 싶은 단어를 하나만 고르자면 ‘유연함’이다. 생활도 관계도, 일도, 마음가짐도 유연하고 싶다. 늘 가던 길로만 가다 보면, 길을 잃을 확률은 낮겠지만 다른 길 위에서 할 수 있는 경험은 송두리째 놓치게 될 테니까. 새로운 길도 걸어보고, 새로운 음식도 먹어보고, 새로운 사람들도 만나다 보면, 조금 더 풍요로워진 ‘나’를 만나게 될 테니까.      




덤으로. 공교롭게도 『멘탈의 연금술』(보도 섀퍼)와 이 책을 함께 읽었다. 『멘탈의 연금술』의 내용을 딱 한 줄로 정리하면 성공(이 책에서의 성공은 ‘돈’, ‘부’와 관련된 것이다.)을 위해 자신의 멘탈을 관리해야 한다는 것이다. 성공을 위해서는 포기하지 말고, 잘하지 못하는 것을 잘하려고 애쓰고, 두려움을 극복하고, 버티고 인내해야 한다고 했다.


하나둘씩 ‘그만두라’는 책과, 그만두면 ‘평균의 함정’에 빠져 평생을 그저 그런 삶으로밖에 살 수 없다는 책을 동시에 읽으며 머릿속이 복잡했다. 두 가치관 중 반드시 무엇이 옳다고는 할 수 없다. 누구에게나 ‘성공’의 정의는 다르고, 성공에 다다르는 ‘조건’도 다른 법이니까. 단지 자기 자신이 추구하는 삶이 어떤 삶인가에 따라 어떤 가치관에 더 끌리는지 판단하면 될 일이다.


돈에 관심이 없어서 그런가, 나는 『어른이 되어 그만둔 것』에 한 표를 던지기로 했다. 가끔은 포기도 하고, 잘하지 못하는 것은 잘하지 못하는 대로 내버려 두며, 두려우면 숨기도 하고, 버티기 힘들면 그만두기도 하는 삶을 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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