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의 오후가 시작되는 시간이었다. 봄처럼 투명한 하늘이 마을의 지붕들과 그 주위를 둘러싼 목초지와 낙엽송 숲에 은빛 햇살을 퍼부었다. 산들바람 한 줄기가 언덕 등성이에 걸린 하얀 뭉게구름 사이로 불어와 들판을 가로질러 풀이 우거진 노스도머 거리 아래쪽으로 그림자를 몰고 갔다. 이 마을은 지대가 높고 탁 트인 곳에 자리 잡아 좀 더 아늑한 뉴잉글랜드 마을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그늘은 눈에 띄지 않았다. 오리 연못 주변의 수양버들 덤불과 해처드 부인네 문 앞에 있는 노르웨이 전나무들이 그나마 유일하게 길가에 그늘을 드리우고 있었다. (7-8쪽)
채리티는 아직 모르는 게 많은 데다 감각이 무뎠는데, 그런 사실도 어렴풋하게만 알고 있었다. 그러나 빛이며 공기, 향기, 색깔 같은 것들에 대해서는 몸속에 흐르는 피 한 방울 한 방울이 민감하게 반응했다. 그녀는 손바닥에 투박스럽게 느껴지는 산자락의 마른 풀이며 얼굴을 짓누르는 백리향 냄새, 머리카락과 면 블라우스 속을 스쳐 가는 바람, 솔송나무가 바람결에 흔들리면서 내는 삐걱거리는 소리를 좋아했다. (21쪽)
이런 오후에 채리티 로열은 햇빛이 비치는 계곡 위 언덕바지에서 얼굴을 땅에 대고 드러누웠다. 그러면 풀밭의 따뜻한 기류가 몸속을 타고 흘렀다. 하늘을 향해 가냘픈 하얀 꽃과 청록색 잎사귀를 뻗은 블랙베리 가지 하나가 바로 눈앞에 있었다. 그 너머에 소귀나무 덤불이 구슬 같은 잔디의 새싹 사이로 꼬불꼬불한 줄기를 펴고 있었으며, 조그마한 노랑나비 한 마리가 한 점 햇살처럼 그 위에 파르르 몸을 떨었다. 눈에 보이는 것이라고는 이게 다였다. 그러나 머리 위에서 도 그 주변에서 너도밤나무가 무성하게 자라 산등성이에 옷을 입히고,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전나무 가지에서 옅은 초록색 솔방울이 통통하게 살이 오르고, 숲 아래쪽 돌 비탈에 소귀나무 잎사귀가 돋아나며, 저쪽 들판에서 단풍터리풀과 노랑꽃창포 싹이 솟아나는 것을 느꼈다. 이렇게 수액이 부글부글 끓고 잎집이 훌훌 옷을 벗고 꽃받침이 터질 듯 차오르는 모습이 온갖 향기에 실려 왔다. 나뭇잎이면 나뭇잎, 꽃봉오리면 꽃봉오리, 잎사귀면 잎사귀가 숨을 불어넣어 향기가 퍼 나가게 도왔다. 그중에서도 코를 찌르는 듯한 소나무 수액이 백리향의 짜릿한 향과 고사리의 희미한 향을 압도했으며, 이 모든 것이 햇볕을 받아 거대한 짐승의 숨결 같은 촉촉한 흙냄새와 하나로 어우러졌다. (53쪽)
지난밤에 그녀에게 했던 부드러운 말을 후회하나 생각하니 갑자기 마음이 저려왔다. 그의 말은 연인이라기보다 오히려 오빠로서 건넨 말에 가까웠다. 그러나 채리티는 애무하는 듯한 따뜻한 목소리에 그 정확한 의미를 놓쳐 버렸다. 오직 자신이 ‘산’에서 내려온 고아라는 사실 때문에 그가 자신을 꼭 안고 달콤하게 속삭이며 위로해 준 느낌이었다. 마을에 도착해 피곤하고 춥고 격해진 감정으로 아파하며 마차에서 내릴 때 채리티는 마치 땅이 햇살이 비치는 파도요, 자신은 물마루 위에 이는 물보라인 것처럼 느꼈더랬다.(90쪽)
그녀의 새로운 자아가 신비롭게 펼쳐지는 것, 그녀의 오그라든 덩굴손이 빛을 향해 손을 뻗는 것만이 유일한 현실이었다. 채리티는 지금껏 감수성이 시들어 버린 듯한 사람들 속에서 살아왔다. 처음에 하니의 애정보다 더 신비로운 것은 그 애정의 일부라고 할 언어였다. 늘 사랑이란 혼란스럽고 비밀스러운 무엇이라고 생각해 온 채리티에게 하니는 사랑을 여름 공기처럼 밝고 싱그러운 것으로 만들어주었다.(165쪽)
지금 채리티는 하니가 자신에게서 분리되어 미지의 세계에서 다른 아가씨와 속삭이고 있는 모습을 보았다. 그 속삭임은 채리티의 입술에 그토록 자주 떠오르게 했던 것과 똑같은 짓궂은 공모의 미소를 자아냈다. 지금 채리티가 사로잡힌 감정은 질투가 아니었다. 채리티는 그의 사랑을 확신했다. 오히려 그것은 미지에 대한 공포였고, 이 순간에도 그를 그녀로부터 멀어지게 해고 있음에 틀림없는 불가사의한 마력에 대한 공포였으며, 자신이 그에 맞서 싸울 힘이 없다는 무력감에 대한 공포였다.(181쪽)
이제 한 줄기 빛이 이 얼어붙은 세상을 가로질러 퍼져 나가고, 그 빛과 함께 그녀가 살고, 선택하고, 행동하고, 이 사람들 사이에서 그녀의 자리를 마련하거나 그게 아니라면 두고 온 생활로 다시 돌아가야 하는 새로운 날이 시작되고 있었다. 치명적인 무기력이 채리티를 짓눌렀다. 남의 눈에 띄지 않게 그곳에 계속 누워 있고 싶기도 했다. 그러나 그녀는 자신이 태어난 이 비참한 무리 중 하나가 된다는 생각에 오싹함을 느꼈다. 그런 운명으로부터 아이를 구하기 위해서라면 어떤 길이라고 걷고, 삶이 부여할지 모르는 어떤 짐이라고 기꺼이 걸머질 힘을 되찾을 수 있을 것 같았다.(238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