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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아 Jul 19. 2021

『아무튼, 요가』(박상아)

“이효리 요가 잘해요?”

책을 펼쳐 처음 만나는 문장이자, 첫 에피소드의 제목이다.      


방송에서 이효리의 요가 장면이 자주 등장했고, 그녀의 자세는 요가를 전혀 모르는 이가 보기에도 엄청난 내공이 있어야지만 할 수 있는 고난도의 자세로 보였다. 자세의 완성도뿐만 아니라, 그녀는 방송에서 요가를 통해 삶의 변화를 겪었다는 말도 자주 했다. 이효리라는 인물 자체가 하나의 브랜드일 정도로 영향력 있는 연예인이다 보니, 어느 순간부터 ‘요가’ 하면 자연스럽게 ‘이효리’가 함께 떠오를 정도가 되었다.      


그렇다 해도, 저자가 요가 강사인 것을 알면 사람들이 맨 처음 물어보는 질문이 “이효리 요가 잘해요?”라니. 좀 우스웠다. 이효리가 요가를 잘하고 못하는 게 요가 강사에게 물어보는 첫 질문이라니. 그때마다 저자는 어떤 대답을 해야 할지 몰라 뜸을 들인다고.      


‘요가라는 게 잘하고 못하고가 없는 건데……. 뭐라고 대답해야 하지?’(중략)
많은 이들이 요가 이야기만 나오면 누구누구가 잘하느냐는 질문을 한다. 요가를 전혀 모르는 일반인들뿐만 아니라 가끔 강사들도 그런 질문을 할 때가 있다. 일단 잘못된 질문이다. 요가에는 잘하고 못하고가 없다. 내가 나의 몸과 마음의 평화를 얻기 위해 또는 육체적, 정신적 건강을 도모하기 위해 하는데 왜 잘하고 못하고를 남이 평가하려 드는가? 이것은 마치 내가 건강을 위해 또는 정신수양을 위해 매일 새벽 약수터에 가는데 사람들이 내가 약수터에 잘 가고 못가고를 참견하는 것과 같다. (전자책 기준 7쪽~11쪽)     


과정을 통해 무언가는 얻는 일보다 가시적 성과로 타인의 인정을 받는 일에 익숙한 우리에게 저자의 말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은 쉽지 않다. 하지만 요가를 조금이라도 진지하게 배워본다면, 저자의 말에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을 것이다.      




내가 요가를 처음 접한 건 정확히 14년 전, 2007년도였다. 대학원에 진학하여 수업을 들으며 과외와 공부방 아르바이트, 학과 사무실 행정보조 등을 병행했다. 그렇게 정신없는 날들을 보내다 여름방학을 맞은 시점이었다. 그 해 들어 유난히 생리통이 심했다. 원래도 생리통이라면 징글징글할 정도로 심한 편이었지만, 그해에는 울다 지쳐 잠이 들 만큼 고통이 심각했다. 주변에 요가원들이 조금씩 생기기 시작할 때였고, 헬스장에서도 요가 프로그램이 조금씩 운영될 때였다.      


당시에도 꽤 비싼 수강료를 내고 덜컥 요가 수업에 등록했다. 요가를 하면 생리통이 훨씬 덜하다는 지인의 말에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한 일이었다. 집에서 걸어가기에 애매한 위치에 있는 곳이라 잘 다닐 수 있을지 고민스러웠지만, 방법이 없었다. 그렇게 시작한 요가를 석 달 동안 꾸준히 했다. 처음 한 달은 몸의 변화는커녕 지독한 근육통에 시달렸다. 희한한 건 두 달째 접어들자 각종 근육통이 사라지고, 생리통도 조금 덜했다. 요가 강사님에게 따로 말씀을 드려 생리통 완화에 도움이 되는 동작들을 배우기도 했다.      


2학기 개강과 동시에 학업과 운동, 일을 병행하지 못해서 결국 운동을 그만두었다. 이듬해부터는 임용 준비를 시작하면서 다시 요가를 하지 못했다. 기다렸다는 듯이 생리통은 원래대로 돌아갔다. 그럼에도 사는 게 바쁘니, 한 달에 이틀 정도만 진통제에 매달리고 나머지 날은 잊고 지내는 것으로 내 몸과 적당히 타협해버렸다.     


임용에 합격하고 혼자 자취를 시작하면서 남는 게 시간이 되었다. 임용 준비를 하면서 몸 여기저기가 망가졌다는 게 실감 나던 때이기도 했다. 근처에 요가원이 있길래 고민도 하지 않고 등록을 했다.


두 번째 요가원에서는 빈야사 요가를 기본으로 각종 소도구를 사용한 필라테스 동작이 가미된 요가를 배웠다. 그 요가원에서 처음으로 남자 요가 강사분을 만났다. 40대쯤으로 보이던 그분은 요가보다 헬스에 어울릴 듯한 체구를 지니고 계셨다. 그런 분이 자유자재로, 몸의 근육을 부드럽게 움직이는 모습이 묘하게 낯설면서도 매력적이어서 6개월쯤 꾸준히 다녔었다.


그 뒤로도 핫요가, 필라테스, 임산부 요가까지 띄엄띄엄 이긴 하지만 요가와 인연을 끊지 않았다. 문제는 지속적으로 하지 못하고, 3개월씩 혹은 6개월쯤 ‘띄엄띄엄’했다는 거지만. 그래도 매번 요가가 남긴 기억이 너무 좋았기에, 내 마음속에 가장 사랑하고 아끼는 운동은 ‘요가’가 되었다.     




누군가의 시선에서 봤을 때 나는 요가를 ‘잘 못 하는’ 사람이다. 멋진 동작이라고는 할 줄 아는 게 전혀 없다. (변명하자면 어릴 때부터 유연성이라고는 없는, 뻣뻣한 몸이었다.) 하지만 스스로는 요가를 ‘잘 못 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아무튼, 요가』에서 저자의 말처럼, 요가에는 잘하고 못하고가 없다는 생각에 전적으로 동의하기 때문이다.     


요가를 하는 동안만큼은 오직 내 호흡에만 집중한다. 내 몸에 이런 근육이 있었다는 사실에 놀라고, 그 근육을 움직이면 이런 생소한 동작이 가능하다는 사실에 또 놀란다. 근육의 움직임으로 여러 자세를 취하는 것만으로 온몸에서 땀이 비 오듯 흐르는 경이로운 경험도 한다. 그 과정 자체가 너무 좋다. 어려운 자세나 동작은 수련이 계속되면 할 수 있게 되겠지 생각할 뿐(끝내 못해도 상관없고), 강사의 동작을 그대로 흉내 내지 못했다고 해서 부끄러울 일도 아니고 속상할 일도 아니다. 오직 내 몸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며 내 속도대로 조금씩 움직이면 그만이다.     


3주 전부터 홈트레이닝으로 요가와 필라테스를 다시 시작했다. 집 근처에 요가 수업을 하는 학원이 다섯 군데나 있지만 비용도 부담이고 코로나 상황도 두려워서 아예 홈트로 시작했다. 온라인 클래스에 등록하려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유튜브를 찾아보니 굳이 비용을 지불하지 않더라도 따라 할 만한 수업이 많았다. 그렇게 3주간 매일, 길게는 50분 짧아도 30분은 꼭 요가를 하고 있다.


그 시간 동안은 잡념을 털어내고, 오로지 나에게만 집중한다. 내면의 평화까지는 아직 도달하지 못했지만, 내 몸 구석구석에 집중하게 된 것만으로도 큰 성과를 얻었다고 생각한다. 난해한 자세를 따라 하며 한 번도 겪어보지 못했던 곳에 통증을 느낀다. 그럴 때마다 나는 내 몸에 얼마나 많은 빚을 지고 살아왔나 반성한다. 이렇게 많은 근육을 사는 동안 한 번도 써보지 못했다니, 그래서 이토록 단단하게 굳어버렸다니.      


모르던 근육들을 발견하며 통증을 느끼고, 며칠 지속되던 통증이 사라지는 경험을 반복하며 조금씩 ‘나’와 마주하는 중이다. 비단 몸의 근육만이 아닐 것이다. 때마다 내 안에 나도 모르는 ‘나’가 얼마나 많을까 생각한다. 새로운 ‘나’를 마주하려면 통증을 감수해야 하고, 통증을 이겨냈을 때는 분명히 전과는 다른 ‘나’가 되어 있으리라 기대도 하며.                         




*『아무튼, 요가』 간단 정리

이 책은 잘 다니던 패션계 직장을 그만두고 더 넓은 세상으로 나아가 보겠다며 뉴욕으로 둥지를 옮긴 저자의 이야기이다. 저자는 영어도 취업도 공부도 계획처럼 되지 않던 때에 우연히 요가와 만났다. 무엇이라도 해보고 싶다는 열망으로 요가 강사 자격증을 취득하게 되었고, 아르바이트로 요가 강사 일을 하게 된다. 그러다 요가의 매력에 흠뻑 빠져 처음 계획했던 일을 모두 저버리고 요가 강사로서의 삶을 살게 된 이야기이다.

중간중간 요가 종류와 요가 자세의 이름이 많이 등장해서 요가 자체가 낯선 분들이 읽기에는 큰 즐거움을 느낄 수 없을지도 모르겠다. (저자는 때마다 요가 자세를 무척 상세하게 설명해준다. 다만 그 자세를 한 번도 보지 못했다면 상상하기 어려운 자세도 있다.) 그러나 요가에 관심이 있는 분들, 이미 요가를 즐기고 계시는 분들, 요가를 통해 삶의 변화를 경험한 분들에게는 엄청난 공감을 얻을 만한 책이다.           



그때 세상에 그런 열정이 있다는 것을 처음 알게 되었다. 누군가에게 과시하거나 보여주기 위한 것이 아닌 있는 그대로의 나에게 집중하고, 그런 나를 받아들이려는 열정. 요가복은커녕 목이 다 늘어난 티셔츠에 무릎이 튀어나올 대로 나온 추리닝 바지를 입고 있지만, 괜찮다, 누구도 신경 쓰지 않는다. 매트를 다닥다닥 붙여서 앞뒤, 양옆 사람과 계속 부딪히면서도 누구 하나 싫은 기색 보이지 않고, 서로의 움직임을 타협해가며 그 안에서 오로지 자신에게만 집중하는 것을 보며 나는 깨달았다. 그것이 가능하고, 그것이 우리가 살고 있는 진짜 세상이라는 것을. 반면 스스로에게 집중하지 못하고 남만 두리번거리는, 그러다 옆사람과 부딪히면 서로 헐뜯으며 살아온 것이 내 인생이었던 것이다.
이것이 내게 다가온 빈야사 요가였다

생각만 해도 마음이 조급해지던 2분 샤워는 오히려 내게 느긋함을 선물해줬다. 그리고 그동안 당연하다고 생각한 청결함의 기준에 대해서도 다시 생각하게 했다. 땀 좀 흘려도 괜찮고, 가방 좀 바닥에 내려놔도 괜찮고, 맨바닥에 앉아도 괜찮다. 멋 좀 부리지 않아도 괜찮다. 괜찮아지는 것이 많아지면서 왜 그동안 그것들이 괜찮지 않다고 생각했는지, 아니 생각조차 해보지 않고 당연히 괜찮지 않다 생각한 것들이 얼마나 많았는지 생각해보기 시작했다.

우리가 의식하지 않고 있지만 매일 매 순간 하는 것, 하지 않으면 생명 그 자체를 유지할 수 없는 것, 무의식적이기도 하면서 의식적이기도 한 것, 놀라면 가빠지고 편안하면 차분해지는 것, 모든 감정에 언제나 제일 먼저 반응하는 것, 집중과 명상 그리고 무아로의 여행으로 우리를 안내하는 것, 그리고 삶이 다했을 때 멈추는 것, 그것이 프라나야마, 즉 호흡이다.

지금껏 내가 요가뿐만 아니라 무엇에든 그렇게 안 보이는 선, 한계를 미리 정해놓고 살아온 것은 아닌가, 회의가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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