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가라는 게 잘하고 못하고가 없는 건데……. 뭐라고 대답해야 하지?’(중략)
많은 이들이 요가 이야기만 나오면 누구누구가 잘하느냐는 질문을 한다. 요가를 전혀 모르는 일반인들뿐만 아니라 가끔 강사들도 그런 질문을 할 때가 있다. 일단 잘못된 질문이다. 요가에는 잘하고 못하고가 없다. 내가 나의 몸과 마음의 평화를 얻기 위해 또는 육체적, 정신적 건강을 도모하기 위해 하는데 왜 잘하고 못하고를 남이 평가하려 드는가? 이것은 마치 내가 건강을 위해 또는 정신수양을 위해 매일 새벽 약수터에 가는데 사람들이 내가 약수터에 잘 가고 못가고를 참견하는 것과 같다. (전자책 기준 7쪽~11쪽)
그때 세상에 그런 열정이 있다는 것을 처음 알게 되었다. 누군가에게 과시하거나 보여주기 위한 것이 아닌 있는 그대로의 나에게 집중하고, 그런 나를 받아들이려는 열정. 요가복은커녕 목이 다 늘어난 티셔츠에 무릎이 튀어나올 대로 나온 추리닝 바지를 입고 있지만, 괜찮다, 누구도 신경 쓰지 않는다. 매트를 다닥다닥 붙여서 앞뒤, 양옆 사람과 계속 부딪히면서도 누구 하나 싫은 기색 보이지 않고, 서로의 움직임을 타협해가며 그 안에서 오로지 자신에게만 집중하는 것을 보며 나는 깨달았다. 그것이 가능하고, 그것이 우리가 살고 있는 진짜 세상이라는 것을. 반면 스스로에게 집중하지 못하고 남만 두리번거리는, 그러다 옆사람과 부딪히면 서로 헐뜯으며 살아온 것이 내 인생이었던 것이다.
이것이 내게 다가온 빈야사 요가였다
생각만 해도 마음이 조급해지던 2분 샤워는 오히려 내게 느긋함을 선물해줬다. 그리고 그동안 당연하다고 생각한 청결함의 기준에 대해서도 다시 생각하게 했다. 땀 좀 흘려도 괜찮고, 가방 좀 바닥에 내려놔도 괜찮고, 맨바닥에 앉아도 괜찮다. 멋 좀 부리지 않아도 괜찮다. 괜찮아지는 것이 많아지면서 왜 그동안 그것들이 괜찮지 않다고 생각했는지, 아니 생각조차 해보지 않고 당연히 괜찮지 않다 생각한 것들이 얼마나 많았는지 생각해보기 시작했다.
우리가 의식하지 않고 있지만 매일 매 순간 하는 것, 하지 않으면 생명 그 자체를 유지할 수 없는 것, 무의식적이기도 하면서 의식적이기도 한 것, 놀라면 가빠지고 편안하면 차분해지는 것, 모든 감정에 언제나 제일 먼저 반응하는 것, 집중과 명상 그리고 무아로의 여행으로 우리를 안내하는 것, 그리고 삶이 다했을 때 멈추는 것, 그것이 프라나야마, 즉 호흡이다.
지금껏 내가 요가뿐만 아니라 무엇에든 그렇게 안 보이는 선, 한계를 미리 정해놓고 살아온 것은 아닌가, 회의가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