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의 마음

어느 저녁 때(황규관)

by 진아

[시 쓰는 여름] 열다섯 번째 시


어느 저녁 때(황규관)


땅거미가 져서야 들어온 아이들과 함께 밥을 먹는다

뛰노느라 하루를 다 보내고

종일 일한 애비보다 더 밥을 맛나게 먹는다

오늘 하루가, 저 반그릇의 밥이

다 아이들의 몸이 되어가는 순간이다

바람이 불면 나무는 제 잎을 어찌할 줄 모르고

따스한 햇볕에 꽃봉오리가 불려나오듯

그렇지, 아이들도 제 몸을 제가 키운다

아내와 나는 서로를 조금씩 떼어내

불꽃 하나 밝힌 일밖에 없다

그 후 내 生은 아이들에게 이전되었다

그러다 보면 열어놓은 창문으로 시원한 바람이 들어오리라

오랜만에 둥그렇게 앉아

아이들의 밥위에 구운 갈치 한토막씩 올려놓는다

잘 크거라, 나의 몸 나의 生

죽는 일이 하나도 억울할 것 같지 않은

시간이 맴돌이를 하는 어느 저녁 때다


출처: <물은 제 길을 간다>


"엄마, 엄마는 세상에서 누가 제일 좋아?"

"엄마는 사랑이랑 봄이!"

"선생님이 자기 자신을 제일 좋아해야 한대!"

"엄마도 너희를 만나기 전에는 그랬어. 하지만 이제는 아니야.이제는 엄마 자신보다 너희가 훨씬 소중해."

"에이. 안되는데?"

"그리고 괜찮아, 외할머니가 또 그만큼 엄마를 사랑하니까. 봄이랑 사랑이한테 준 사랑만큼 외할머니한테 돌려받아서 엄마는 부족하지 않아."

"그럼 외할머니는? 증조할머니가 사랑해줘?"

"응, 맞아."


아이와 저녁을 먹으며 나눈 대화입니다. '죽는 일이 하나도 억울할 것 같지 않은/시간이 맴돌이를 하는' 저녁시간이었습니다. 친정엄마의 시간과 생을 양분 삼아 자란 저는, 이제 두 아이에게 생을 내어놓는 중입니다.


"잘 크거라, 나의 몸 나의 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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