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의 때가 올 거야.

너의 때가 온다(박노해)

by 진아

[시 쓰는 여름] 열여섯 번째 시


너의 때가 온다(박노해)


너는 작은 솔씨 하나지만

네 안에는 아름드리 금강송이 들어있다


너는 작은 도토리알이지만

네 안에는 우람한 참나무가 들어있다


너는 작은 보리 한 줌이지만

네 안에는 푸른 보리밭이 숨 쉬고 있다


너는 지금 작지만

너는 이미 크다


너는 지금 모르지만

너의 때가 오고 있다


출처:<너의 하늘을 보아>, 느린 걸음 2022




학기말 고사가 끝나고 첫 수업 시간이었습니다. 수행평가 성적을 안내하고 방학 전 수업 방향을 설명하고 나니 수업 시간이 조금 남았어요. 기다렸다는 듯 앞줄에 앉은 몇몇이 삼삼오오 교탁 근처로 모여들더니, 기말고사 이야기를 늘어놓았습니다. 열심히 노력한 만큼 보상받은 아이도 있었고, 그렇지 못한 아이도 있었어요. 열심히 했지만 성과가 좋지 않다는 아이들은, 웃는 표정 뒤로 깊고 짙은 그늘을 드리우고 있었습니다.


고2, 1학기 성적이 결정 났습니다. 아직 등급이 찍힌 성적표는 받지 않았지만, 아이들은 이미 치른 중간고사와 기말고사, 수행평가 점수를 합산해서 대략적인 등급을 예측하고 있었어요. 사실상 고2까지의 성적으로 수시 지원학교의 수준이 거의 결정되므로, 아이들 표정에 짙은 그늘이 지는 것은 당연했습니다. 열심히 노력하지 않았다면 억울할 것도 없지만, 상대평가로 치러지는 시험에서 내가 열심히 하는 것만으로는 좋은 등급을 보장받기 어렵습니다. 그러니 때론 억울한 감정이 드는 것도 어쩔 수 없지요.


“샘, 저에게도 기회가 올까요?”


자조하듯 묻는 한 아이의 질문에, 마음이 저려왔습니다. 이미 성적은 정해졌고, 지금부터 노력한다고 해서 뭐가 달라지겠냐며 헛웃음을 짓는 아이에게 무슨 말을 해줘야 하나 고민스러웠어요. 누군가는 “지금 상위권 아이들은 오래전부터 열심히 하면서 지켜온 성적인데, 이제와 기회를 운운하는 것은 이기적인 것이 아니냐” 되물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삶이 꼭 그렇게 같은 속도로 흐르는 것은 아니지 않나요? 누군가는 초반부터 빨리 달리지만, 누군가는 뒤늦게 시동이 걸리기도 합니다. 뒤늦다는 것도 '상대적인' 기준일 뿐이에요. 지난날에는 공부가 왜 중요한지 몰라서 등한시했지만, 이제라도 정말 열심히 해보고자 한다면 기회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아이들끼리 무한 경쟁을 시킬 것이 아니라, 아이들이 저마다의 때에 저마다의 삶을 계획할 수 있도록 기회를 주어야 하지 않을까요.


지금 학교 현장에서는 이미 많은 것이 일찌감치 결정이 납니다. 잘해나가던 아이들도 한 번 휘청거리면 회복이 쉽지 않아요. 뒤늦게 마음을 다잡고 도전해보려고 하면 과거의 성적이 발목을 잡고 놓지 않습니다. 과거에 비해 아이들이 쉽게 포기하는 경향도 없지 않은 것 같지만, 시스템 자체가 뒤늦은 아이들, 방황을 경험한 아이들에게 새로운 기회를 주지 않는 것 같아요.


막상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까지 졸업한 뒤, 사회에 던져져 보면 진짜 삶은 그때부터라는 생각이 듭니다. 십 대 아이들은 아직 그걸 모르지요. 지금의 성적이, 지금의 등급이 자신의 모든 때를 이미 결정지어버렸다고 생각해요. 너무 어린 나이에, 포기와 좌절을 경험하는 아이들이 애잔하고 안쓰럽습니다.


자신에게도 기회가 올지 물었던 아이에게 이 시를 써서 선물해야겠습니다. '지금 너는 작지만/너는 이미 크고, 너는 지금 모르지만/너의 때가 오고 있다'고 힘주어 써주어야겠어요. '때'는 언제 어떻게 올지 모르는 거니까 벌써 포기하지 말라고, 성적과 등급이 네 인생의 모든 때를 결정하는 것은 아니라고, 꼭 말해주어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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