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혼을 깨우는 음식, 소울푸드가 있으신가요? ‘흰죽(고영민)’을 읽으며, 소울푸드를 떠올립니다. 소울푸드에 관한 이야기는 제 첫 번째 책 ‘엄마만으로 완벽했던 날들’에 이미 썼던 터라, 오늘은 그 글을 인용하는 것으로 시에 대한 단상을 대신합니다. 모두, 영혼을 가득 울리는 음식을 떠올리며, 행복한 밤 되시기를!
엄마만으로 완벽했던 날들 (진아)
엄마는 요리를 잘한다. 덕분에 엄마를 떠올리면 함께 떠오르는 음식이 꽤 많다. 진미채 볶음이나 멸치볶음, 장 조림 등 밑반찬에서부터 불고기, 낙지볶음, 아귀찜 등 일품요리와 각종 국수류와 찌개류, 돈가스, 함박스테이크 등 양식 요리까지. 날씨와 계절에 따라 생각나는 엄마표 요리는 달라진다. 엄마를 떠올릴 때, 자연스럽게 오감이 자극되는 것은 엄마의 요리 솜씨가 큰 몫을 했을 것이다.
엄마표 음식을 모두 사랑하지만 그중에서도 딱 하나만 선택하라고 하면 오래 망설이지 않고 고를 음식이 하나 있다.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봄처럼 따스해지는 음식, 깊이 잠들어 있던 영혼을 단숨에 깨우는 소울푸드, 바로 ‘엄마표 김치밥국’이다. 엄마가 해준 음식 중에 이색적이고 특별한 음식도 꽤 있었는데, 영혼까지 가닿은 음식은 그토록 소박한 음식이다.
김치밥국은 몸이 좋지 않거나, 입맛이 없을 때 엄마가 종종 해준 음식이었다. 몸이 약해 감기와 소화불량을 달고 살던 나는 죽을 먹어야 할 일이 많았다. 흰 죽, 야채죽, 소고기죽, 전복죽…… 밍밍한 죽을 지겹도록 먹다가 김치밥국을 만나면 특식처럼 여겨졌다. 진한 멸치육수에 식은 밥과 송송 썬 익은 김치, 콩나물을 넣어 푹 삶아 끓여낸 김치밥국! 밥국이 끓어가면 집의 구석구석에까지 멸치육수와 신김치의 냄새가 그윽하게 퍼졌다. 그 냄새 만으로도 잃어버렸던 식욕이 다시 살아나는지 입가에 금세 군침이 고였다. 대접에 한 그릇 가득 퍼먹고도 아쉬운 마음에 그릇 바닥을 삭삭 긁어대곤 했다.
김치밥국은 몸이 아플 때만 찾던 음식은 아니었다. 마음이 긴장되어 움츠려 들면 막 끓여 김이 모락모락 풍기는, 뜨끈한 밥국 한 그릇이 간절했다. 교사임용 시험날 아침도 예외는 아니었다.
“엄마, 나 시험날 아침에 김치밥국 끓여줘.”
처음에 엄마는 의아해했다. 밥국은 죽은 아니었지만 밥을 삶아 죽처럼 뭉근하게 끓여내는 음식이었다. 미신이긴 해도 시험 치는 날 아침에 죽을 먹는 것은 일종의 금기였다. 그럼에도 나는 꼭 김치밥국을 먹어야 할 것 같았다. 11월의 서늘한 아침, 몸과 마음의 긴장을 덜어내는 데 그만한 음식이 떠오르지 않았다.
시험 날 새벽, 엄마는 특별히 더 정성을 쏟아 멸치육수를 우렸다. 깊은 잠을 자지 못했지만 이른 새벽부터 온 집안을 가득 채운 밥국 끓는 냄새에 몸의 피로가 눈 녹듯 사라졌다. 많이 먹으면 안 된다고 생각하면서도 숟가락질을 멈출 수 없었다. 씹을 것도 없는 밥국을 꼭꼭 씹어 삼키며 시험에 대한 긴장감을 조금씩 떨쳐냈다.
첫 번째 시험은 불합격. 1년을 기다려 두 번째 시험을 치는 날이 되었다. 그날 역시 이른 새벽 김이 모락모락 나는 김치밥국을 먹었다. 심지어 1차, 2차, 3차 시험 아침에 모두. 그리고 꿈에 그리던 ‘합격’ 두 글자를 받아 들었다. 이후 엄마의 밥국은 나에게 완벽한 소울푸드가 되었다.
찬바람 부는 계절이면 유난히도 자주 생각나는 엄마표 김치밥국. 몇 번이고 직접 끓여볼까 싶어 재료를 준비했다가 접어버렸다. 그것만큼은 엄마의 음식으로 남겨두고 싶었다. 아마 엄마의 레시피를 그대로 따라 끓이더라도 영혼을 깨우는 맛을 내지는 못할 것이다.
특별할 것도 없는 김치밥국이 이토록 애틋한 것은 그 속에 가득 담긴 엄마의 사랑과 기도 덕분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