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이 있어도, 꿈이 없어도, 꿈틀거린다.

꿈틀거리다 (김승희)

by 진아

[시 쓰는 여름]



꿈틀거리다 (김승희)


꿈이 있으면 꿈틀거린다

꿈틀거린다, 라는 말 안에

토마토 어금니를 꽉 깨물고

꿈이라는 말이 의젓하게 먼저 와 있지 않은가


소금 맞은 지렁이 같이 꿈틀꿈틀

매미도 껍질을 찢고 꿈틀꿈틀 생살로 나오는데

어느 아픈 날 밤중에

가슴에서 심장이 꿈틀꿈틀할 때도


괜찮아

꿈이 있으니까 꿈틀꿈틀하는 거야

꿈꾸는 것은 아픈 것

토마토 어금니를 꽉 깨물고

꿈틀꿈틀

바닥을 네 발로 기어가는 인간의 마지막 마음


출처:<단무지와 베이컨의 진실한 사랑>, 창비, 2021



“샘, 진짜 제가 뭘 잘하는지 모르겠어요. 하고 싶은 일이 없어요.”


내신 등급이 최상위권인 아이가 대뜸 던진 말입니다. 그 아이로 말할 것 같으면 언제나 잠이 부족해서 책상 위에 커피를 몇 개씩이나 줄지어놓는 아이입니다. 일반계 고등학교에서 그 정도 내신 성적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잠을 줄이고, 휴식을 줄여야 하는 게 당연한 일이거든요. 성적도 좋지만, 그 외 학교 프로그램에도 성실하게 참여하는 아이기도 해요. 작년부터 그 아이를 가르치면서, 늘 피곤한 모습으로도 끝까지 수업을 해내려는 모습이 애처롭기도 하고 기특하기도 해서 알게 모르게 마음을 쓰던 아이이기도 합니다.


그 아이는 경영학과 진학을 목표로 이제껏 달려왔습니다. 생활기록부만 봐도 경영학과를 희망한다는 것을 알 수 있을 만큼, 모든 활동이 거기에 맞춰져 있었습니다. 그런데 2학년 1학기가 끝나가는 지금에 와서 대뜸 진로가 고민이라고 합니다. 뭘 좋아하는지, 뭘 잘하는지, 하고 싶은 게 뭔 지조차 모르겠다고 말합니다.


“너 지금껏 계속 경영학과를 목표로 공부했던 거 아니야?”

“그건, 취업해야 되니까요. 돈 벌어야 하잖아요.”

“돈 벌어야지. 근데 그게 전부는 아닌데.”

“샘, 진짜 요즘 들어 뭘 하고 살아야 하는지 모르겠어요. 하고 싶은 것도 없고. 그나마 이번 학기에 재미를 느낀 과목이 있는데 그 과목 관련 사범대를 진학하려니 요즘 임용 뽑지도 않잖아요. “

“요즘 안 뽑지. 특히 그 과목은 TO가 진짜 없어.”

“아, 샘 진짜 뭘 하며 살아야 할까요?”


아이의 고민이 아프게 들립니다. 그래도 우리 학교 내에서는 내신 최상위 등급 아이이고, 친구들에게는 부러움의 대상인 아이인데 도무지 ‘꿈이 없다’고 말하니까요. 그나마도 문과 계열에서 취업이 제일 잘되는 과가 경영학과라고 하니, 좋은 대학의 경영학과에 가기 위해 각종 스펙을 쌓아왔는데... 그 시간들이 무색할 만큼 이제와 무엇을 해야 할지,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르겠다고 하니까요.


‘꿈틀거리다(김승희)’에서는 ‘꿈이 있으니까 꿈틀거린다’라고 합니다. 오늘 아침 이 시를 배달한 뒤, ’ 뭘 하고 살아야 할지 모르겠다, 꿈이 없다’라고 말하는 아이를 만나고 보니 ‘꿈’이란 뭘까 생각하게 됩니다. 분명히 아이는 꿈이 없다고 했지만, 저는 아이의 꿈틀거림을 보았거든요.


소금 맞은 지렁이의 꿈틀거림은 외부의 자극으로 인한 꿈틀거림입니다. 껍질을 찢고 생살로 나오는 매미의 꿈틀거림은 내적인 성장으로 인한 꿈틀거림이에요. 이러나저러나, 둘은 꿈틀거립니다. 살아남기 위해서, 더 잘 살아남기 위해서 쉴 새 없이 꿈틀거려요. 오늘 이야기를 나누었던 아이의 꿈틀거림은 외적인 자극과 내적인 성장이 동시에 일어난 결과입니다. 외적인 자극은 2학년 1학기가 모두 끝났다는(이 말은 이제 입시를 위한 내신 학기가 두 학기밖에 남지 않았다는) 시기로 인한 자극이었을 것이고, 내적인 성장은 지금껏 큰 고민 없이 성적만 좇던 것에서 처음으로 고민하게 된 ‘꿈’이라는 단어로 인한 자극이었을 겁니다.


'꿈'이 없다고 해서 꿈틀거리지 않는 게 아닌 것 같아요. 꿈을 찾아가는 동안에도 꿈틀거립니다. 꿈을 찾아가려는 마음이 있는 한, 우리는 모두 꿈틀거려요. '꿈꾸는 것은 아픈 것'이라지만, 꿈꾸기 위해 애쓰는 모든 시간도 꽤나 아픈 것입니다.


그러고 보면 삶은 곧 꿈틀거림입니다. 삶은 꿈을 찾고, 꿈을 좇으며, 꿈을 이루기도 하고, 꿈을 잃기도 하는 과정이니까요. 그렇게 성장하고 성숙하는 모든 과정이 꿈틀거림입니다.

결국엔 ‘꿈’이라는 말이 의젓하게 앞에 서서 우리 삶을 이끌어가는 것이 아닐까 싶네요.


오늘 하루 얼마나 꿈틀거리셨나요? 저는 아이와의 대화와 ‘꿈틀거리다(김승희)’ 덕분에 종일 꿈에 대해 생각하며 온마음으로 꿈틀거린 하루였습니다. 이제는 그만 (진짜) 꿈나라로 가야겠어요. 모두들 좋은 밤 되셔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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