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음(이영광)
[시 쓰는 여름] 서른여섯 번째 시
물음
-이영광
넌 뭘 할 수 있니?
하는 물음에
온 집안이
온 동네가
온 나라가
아주
곤란하다
곤란이 매연같이 당연할 만큼
(매연도 이제 공기니까)
심히
곤욕이다
이래가지곤
넌 뭘 못 하니?
하는 물음이 설 자리도
누울 자리도 없으니,
언제 사람이 되고
언제 또 사람이란 걸
벗어던지겠나
이래 가지고 언제
넌 뭘 안 하니?
이런 응용문제쯤
풀 수 있겠나
출처: <아픈 천국>, 창비시선 318, 2013
“샘, 저는 할 줄 아는 게 없어요. 진짜 저는 뭘 하고 살아야 할까요?”
학교 아이들에게 듣는 말 중 가장 뼈아픈 말입니다. 할 줄 아는 게 없다는 말 자체가 아픈 게 아니에요. 할 줄 아는 게 없으니 자신의 존재 가치 자체가 없다고 여기는 것 같아 마음이 아파요. 뭔가 하나는 제대로 해야 할 것 같은데, 이도 저도 마땅치 않다는 아이의 말 앞에 속절없이 마음이 무너집니다. 정말 그런가요? 뭐든 하나는 할 줄 아는 게, 남들에게 당당하게 말할 만큼 해내는 게 꼭 있어야 하는 걸까요.
지금 와 돌아보니, 저는 참 어정쩡한 사람이었어요. 무엇 하나도 내세울 만큼 할 줄 아는 것이 없었습니다. 공부도, 노래도, 달리기도, 그림도, 하다 못해 (외모를) 꾸미는 것도, 노는 것마저 모두 어정쩡했어요. 어디 가서 좀 한다고 말하기엔 턱없이 부족하고, 그렇다고 뭐 영 바닥이냐 하면 그건 또 아닌, 정말 딱 중간인 삶이었습니다. (항목에 따라 중간에도 못 가는 것들도 분명히 있었고요.)
생각해 보면 그 정도 하는 것도 어딘가요. 중간쯤이라는 건 어정쩡한 게 아니라, 모든 것에 나름대로 노력하고 있는 건데요. 게 중에 어떤 건 좀 낫고 어떤 건 좀 모자랐지만, 그래도 늘 뭔가를 아등바등해내려고 노력하고 있었거든요. 그런데도 누군가가 ‘넌 뭘 할 줄 아니?’라고 물으면 선뜻 내가 뭘 할 줄 안다고 답하기 어려웠던 건, 무엇도 내세울만하지 않다고 스스로 평가했던 것 같아요.
그래서였을까요. ‘물음(이영광)’에 단번에 마음이 뺏겼습니다. ’넌 뭘 할 줄 아니?‘라는 질문에 ‘온 집안이/ 온 동네가/ 온 나라가/심히/ 곤란하다‘고 하는 것을 보니, 비단 저만의 문제는 아니었던가 봐요.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 질문 앞에는 속수무책으로 곤란함을 느끼고, 곤욕스러워한다니 어쩐지 위안마저 됩니다. 이러다가는 ‘넌 뭘 못 하니?’라는 물음이 설 자리가 없다고 해요. 돌이켜 보면 ‘넌 뭘 못 하니?’라는 질문은 받아본 기억이 별로 없어요. 누군가에게 ‘못 하는 것’을 묻는다는 것도 실례지만, 그 질문 앞에 선뜻 자신의 부족함을 고백할 사람도 별로 없을 것 같아요. 그러니, ‘넌 뭘 안 하니?’라는 응용문제는 당연히 풀 엄두도 낼 수 없지요.
시에서는 부정문의 두 가지 형태가 나오는데요. ‘못’ 부정문과 ‘안’ 부정문입니다. ‘못’ 부정문은 능력의 부족으로 할 수 없는 것을 말해요. ‘못 한다, 못 잡는다, 못 간다, 못 온다…‘ 직감적으로 느낌이 딱 오시지요? 하고자 하는 마음은 있지만, 능력이 따라주지 않는 경우에 ‘못’ 부정문을 씁니다. ‘안’ 부정문은 의지의 부족으로 하지 않는 것을 말해요. ’안 한다, 안 잡는다, 안 간다, 안 온다…‘ 능력과 관계없이 하고자 하는 마음이 없는 겁니다. (이 이외에도 ‘안’ 부정문은 ‘안 예쁘다, 안 작다, 안 아름답다… 등 상태 부정으로도 사용돼요. 이 시에서는 그 맥락은 아니라 상태부정은 제외할게요.) 부정문의 형태를 놓고 보면, ‘넌 뭘 못 하니?’라는 능력 부정이 설 자리가 없으면, ‘넌 뭘 안 하니?’라는 의지 부정이 설 자리는 당연히 없다고 말해요. (’넌 뭘 안 하니?‘가 응용문제라네요!) 고개가 끄덕여집니다. 하고 싶어도 능력이 부족해서 할 수 없는 것을 쉽게 말할 수 없는 상황에서, 마음(의지)이 없어서 하지 않는 것을 당당하게 말하기란 훨씬 어렵겠지요. (“능력이 있으니 하기 싫어도 해야지!”라는 답이 너무나 뻔할 테니까요.)
할 줄 아는 게 없다던 아이에게 ‘그럼 넌 뭘 못 하니?’, ’넌 뭘 안 하고 싶어?‘라고 물어줄 걸 그랬습니다. 다음에 저를 찾아온 아이가 또 그런 말을 한다면 이렇게 말해줘야겠습니다.
“지금 당장 대단한 것을 할 줄 알 필요는 없어. 네가 할 수 없는 것과 하고 싶지 않은 것을 잘 지워가다 보면 너도 모르는 사이에 네가 할 수 있는 무언가를 발견할지도 몰라. 어쩌면 그게 네가 꽤 잘하는 것일지도 모르고. 그래서 해보다가 아니다 싶으면 또 다른 것을 찾아가면 되는 거야. 끝내 별달리 할 줄 아는 게 없어도 괜찮아. 그 과정에서 네가 너를 발견하기 위해 노력한 시간들은 고스란히 남아 있을 테니까. “
태풍으로 여름 하늘의 두 얼굴을 고스란히 마주했던 한 주였습니다. 주말 동안은 긴장된 마음에 바람 한 점 쐬어주시기를! 그리하여 몸도 마음도 건강하게, 무사히 다시 만나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