돼지고기 두어 근 끊어왔다는 말(안도현)
[시 쓰는 여름] 서른일곱 번째 시
돼지고기 두어 근 끊어왔다는 말(안도현)
어릴 때, 두 손으로 받들고 싶도록 반가운 말은 저녁 무렵 아버지가 돼지고기 두어 근 끊어왔다는 말
정육점에서 돈 주고 사 온 것이지마는 칼을 잡고 손수 베어온 것도 아니고 잘라온 것도 아닌데
신문지에 둘둘 말린 그것을 어머니 앞에 툭 던지듯이 내려놓으며 한마디, 고기 좀 끊어왔다는 말
가장으로서의 자랑도 아니고 허세도 아니고 애정이나 연민 따위 더더구나 아니고 다만 반갑고 고독하고 왠지 시원시원한 어떤 결단 같아서 좋았던, 그 말
남의 집에 세 들어 살면서 이웃에 고기 볶는 냄새 퍼져 나가 좋을 거 없다, 어머니는 연탄불에 고기를 뒤적이며 말했지
그래서 냄새가 새어나가지 않게 방문을 꼭꼭 닫고 볶은 돼지고기를 씹으며 입 안에 기름 한입 고이던 밤
출처:<간절하게 참 철없이>, 창비, 2009
“돼지고기 두어 근 끊어왔다. “
무심한 듯 툭, 건네는 아버지의 말. 화자에게는 ‘두 손으로 받들고 싶도록 반가운 말’이었다고 합니다. 사실 이 시는 설명을 덧붙일 이유가 전혀 없는 시예요. 아마 독자님들도 시를 읽자마다 떠오른 누군가의 ‘한 마디’가 있으실 것 같아요.
저는 아버지가 안 계셨어요. 그 자리를 대신해주신 분이 (외)할아버지셨는데요. 오랜 시간 할아버지와 함께 살아온 덕분인지, ‘돼지고기 두어 근 끊어왔다는 말(안도현)’을 읽자마자 떠오른 할아버지의 말이 있었습니다.
“진아, 영아, 가서 하드 한 개씩 사 온나.”
늦은 밤, 아이스크림을 하나씩 사 오라는 할아버지의 말씀, 저는 그 말에서 딱 ‘반갑고 고독하고 왠지 시원시원한 어떤 결단 같아서 좋았던 말’과 같은 느낌을 받았습니다. 사실 구체적인 이야기는 이미 브런치에 쓴 적이 있어요. 오늘은 그 글을 재인용하는 것으로 시에 관한 단상을 대신합니다. 할아버지가 돌아가신 지 벌써 5년이 다 되어가는데, 이렇게 할아버지 목소리를 떠올리게 하는 시를 만나면 여전히 가슴 한 편이 저릿해지네요.
보고 싶습니다.
* 다음은 브런치에 썼던 글(고스톱과 아이스크림, 그리고 그리운 시간들)을 다시 다듬은 글입니다.
“진아, 영아, 가서 하드 한 개씩 사 온나.”
“네. 할아버지! 몇 명이지? 하나, 둘, 셋, 넷, 다섯, 여섯, 일곱, 일곱 명!”
“가자, 영아!”
추운 겨울밤이었다. 나와 동생은 겉옷은 챙겨 입었지만, 양말은 신지 않은 채로 슬리퍼를 신었다. 계단 열 개만 올라서면 작은 슈퍼가 있었다. 같은 초등학교에 다니지만, 친구라고 말하긴 어색한 여자아이의 부모님이 운영하는 그 슈퍼에 우리는 매일 밤 아이스크림을 사러 가는 단골손님이었다.
“아줌마, 오늘 아맛나 없어요?”
“아맛나 안 들어왔어.”
“빙빙은요?”
“빙빙은 겨울엔 잘 안 들어와.”
“.... 여기 비비빅 있네!”
“엄마는 누가바 사면 되겠지?”
“언니는 뭐 먹을 건데?”
“수박바 먹을까, 캔디바 먹을까...”
“어! 나는 쌍쌍바!!!”
“어? 쌍쌍바 있나? 그럼 나도 그거!”
잠깐의 외출에도 발가락 끝이 꽁꽁 얼어버릴 듯한 추위였다. 집으로 돌아온 우리는 고스톱을 치고 계신 할머니, 할아버지, 작은할아버지께 비비빅을 하나씩 나눠 드리며 오늘은 아맛나와 빙빙바가 모두 없었다는 아쉬운 소식을 전했다. 모두 아이스크림을 하나씩 물고는 어른들은 다시 고스톱에, 우리는 텔레비전에 집중을 했다. 그런 밤이 매일 이어지던 때가 있었다.
언제부터였는지 모르겠지만, 저녁상을 치우고 나면 옆집에 사시는 작은할아버지가 우리 집으로 건너오셨다. 가끔은 작은할머니도 함께 오셨지만, 대개는 작은할아버지 혼자 오셨다. 담벼락을 공유한 바로 옆집에 사셨던 작은할아버지는 할아버지의 유일한 동생이셨다. 더 많은 형제지간이 있으셨지만 다 돌아가시고 서로에게 남은 유일한 피붙이라고 했다. 그래서인지 두 분의 사이는 아주 각별해서 따로 살지만, 같이 사는 것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매일 밤 작은할아버지는 우리 집 현관문을 열고 들어오셨고, 할머니 할아버지는 기다렸다는 듯이 작은할아버지가 앉을자리에 방석을 내어주셨다. 이제 와 짐작해 보면, 아마도 작은할아버지께서는 나이 차이가 꽤 나는 형님 내외가 무료한 저녁 시간을 보내고 계실 것이라 짐작하셔서 그러셨던 것은 아니었을까 싶다. 그렇게 세 분은 텔레비전을 조금 보시다가 “고(고스톱)나 한 판 치자”는 할아버지의 말씀에 안방 아래쪽에 고이 개어둔 고스톱 전용 담요를 꺼내어 점 100짜리 고스톱을 치셨다.
그 작은 안방에서 세 분이 고스톱판을 펼치고 둘러앉으시면 나와 동생은 텔레비전 코앞까지 밀려나 텔레비전을 봐야 했다. 그래도 싫지 않았다. 맑고 경쾌하게 울려 퍼지는 화투패 마주치는 소리는 묘하게 신명이 났다. 그 와중에 누가 고를 외쳤니, 흔들었니, 광박이니, 피박이니, 아까 번에 내가 뭘 어쨌다느니……. 곧 큰 싸움이 될 것처럼 세 분의 목소리가 커지는 순간도 있었다. 하지만 고스톱 판 위에 와르르 패를 뒤섞으며 다음 판을 준비할 때는, 언제 무슨 일이 있었냐는 듯 다 같이 껄껄 소리 내어 웃으셨다. 그 웃음소리가 좋았다. 그리고는 지난 판에 이긴 분이 패를 가지런히 모아 내밀면 마주 앉은 분이 “퉁”하며 손으로 화투를 살짝 쳤고, 그 “퉁” 소리와 함께 잠시간의 언쟁까지도 퉁이 되는 듯한 그 모습이 그렇게 유쾌할 수가 없었다.
정말 특별한 일이 있지 않고서야 우리 집에는 매일 밤 그런 고스톱판이 벌어졌다. 그리고는 판이 무르익을 때쯤이면 어김없이 자신 앞에 가장 많은 동전을 놓고 계신 분(제일 많은 돈을 따신 분)이 “진아, 영아” 하고 우리 자매의 이름을 부르셨다. 그러면 우리는 텔레비전에서 눈을 거두어 몸을 일으켰다. 그다음 말은 듣지 않아도 알 수 있었기 때문이다.
“진아, 영아. 하드 하나씩 사 온나.”
왜 아이스크림을 하드라고 불렀는지는 모르겠지만, 우리는 아이스크림이 아닌 ‘하드’를 사러 갔다. 비 오는 날에도, 한겨울 추운 날에도, 열대야로 땀을 한 바가지씩 흘리던 여름날에도, 집 앞 계단 위에 있던 작은 슈퍼로 달려갔다. 어른들은 팥이 든 아이스크림을 좋아하셔서 아맛나, 비비빅, 빙빙바를, 엄마는 부드러운 것을 좋아하셔서 누가바나 바밤바를, 나와 동생은 새콤달콤한 맛이나 초코맛을 좋아해서 수박바, 캔디바, 쌍쌍바, 빠삐코 중 하나를 골랐다. 가끔 그 슈퍼가 문을 닫은 날이면, 동생과 둘이서 손을 잡고 좁고 어두운 골목길을 내달려 집 아래쪽에 있던 조금 큰 슈퍼에 가기도 했다.
검은 비닐에 하드를 가득 담아 집으로 돌아와 어른들에게 하나씩 나눠드렸다. 그러면 세 분은 한 손에 하드를 들고는 다시 고스톱에 집중하셨다. 우리 자매는 보던 텔레비전을 마저 보면서 하드를 먹었다. 9시 반이 넘어가면 슬슬 판을 정리할 채비를 하셨는데, 세 분은 각자가 처음 시작할 때 가지고 있었던 밑천만 빼고 그날 딴 돈을 모두 화투판 중앙으로 내어놓았다. 가장 돈을 많이 따신 분이 그날의 하드 값을 계산하는 것으로 그날의 판은 마무리되었다. 돈을 딴 사람도 잃은 사람도 없는 고스톱판은 끝이 났다.
매일 밤 돌아오는 그 시간을 우리 자매는 은근히 기다렸고, 세 분 중 누군가의 입에서 “하드 하나 사 온나.”라는 말이 떨어지면 그렇게 신이 날 수가 없었다. 삼십 대 중반이 된 지금의 나와 동생 같으면 아홉 시가 다 되어가는 시간에, 그것도 매일 밤 아이스크림을 먹는다는 것은 상상조차 할 수 없겠지만 그때는 모두 초등학생이었으니 달콤한 아이스크림을 먹는 시간이 그저 좋았을 것이다.
매일 밤 할아버지와 할머니, 작은할아버지의 고스톱 밑천으로 하드를 사 먹은 게 언제까지였는지 정확히 기억이 나지는 않는다. 아마도 내가 중학교 때까지는 계속되었던 것 같다. 내가 고등학교에 가면서부터는 야자에 학원까지 다니느라 12시가 다 되어서야 집에 들어올 수 있었는데, 그렇게 더 이상 나와 동생이 함께 아이스크림을 사러 갈 수 없는 날들이 이어지자 어른들의 점 100짜리 고스톱도 끝이 났다.
그 뒤로 할아버지는 종종 혼자 고스톱판을 펼쳐서 화투로 그날의 운세를 보셨다. 아주 가끔 할머니와 둘이 앉으셔서 맞고를 치기도 하시고, 작은할아버지까지 함께 예전처럼 고스톱을 치긴 하셨어도 더 이상 아이스크림 내기는 하지 않으셨다. 그러고 보면 어른들에게 고스톱은 무료한 저녁 시간을 달래주는 세분만의 취미 생활이기도 하셨겠지만, 비좁은 방에서 어른들 곁에 앉아 텔레비전을 보는 것 외에는 특별히 할 것이 없던 우리 자매에게 아이스크림 하나 사주는 재미를 선사하는 것이기도 했던 모양이다.
이제는 배스킨라빈스에, 각종 젤라토 전문점까지 집 앞에 있는 데다가 그런 체인점들은 늦은 밤에도 배달 서비스까지 하니 아이스크림 하나를 사러 늦은 밤에 나갈 일이 없다. 아주 가끔은 더운 여름밤공기를 마시며, 차가운 겨울바람을 발끝으로 맞으며 어릴 적 그날처럼 하드 하나 사러 집을 나서고 싶은 날이 있다. 그런 날은 어김없이 할머니, 할아버지, 작은할아버지의 점 100짜리 고스톱판이 생각나는 날이다. 늦은 밤, 집안에 울려 퍼지던 세 분의 정정한 목소리와 화투패 마주치는 소리, “진아, 영아. 하드 한 개 사온나.” 하는 목소리까지. 정겹고도 따사로운 소리가 귓가에 쟁쟁 울리는 오늘 밤, 왠지 세 분이 둘러앉은 고향 집 안방 꿈을 꿀 것만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