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길(이성부)
[시 쓰는 여름] 서른아홉 번째 시
산길(이성부)
모든 산길은 조금씩 위를 향해 흘러간다
올라갈수록 무게를 더하면서 느리게 흘러간다
그 사람이 잠 못 이루던 소외의 몸부림 속으로
그 사람의 생애가 파인 주름살 속으로
자꾸 제 몸을 비틀면서 흘러간다
칠부능선쯤에서는 다른 길을 보태 오르다가
된비얄을 만나 저도 숨이 가쁘다
사는 일이 케이블카를 타고 오르는 일 아니라
지름길 따로 있어 나를 혼자 웃게 하는 일 아니라
그저 이렇게 돌거나 휘거나 되풀이하며
위로 흐르는 것임을 길이 가르친다
이것이 굽이마다 나를 돌아보며 가는 나의 알맞은 발걸음이다
그 사람의 무거운 그늘이
죽음을 결행하듯 하나씩 벗겨지는 것을 보면서
산길은 별을 받아 환하게 흘러간다
출처 :<도둑 산길>, 책만드는집, 2010
나이를 먹으면서 사는 게 참 무겁다, 종종 생각합니다. 엄마의 딸로 살 때는 몰랐던 것들이 딸의 엄마가 되자 선명해지고, 학창 시절에는 보이지 않던 것들이 사회에 나오자 분명하게 보여요. 선명해지고 분명해지는 것들은 대체로 삶의 무게를 더하는 것들이고, 생이 이어지는 동안에는 내려놓을 수도 외면할 수도 없는 것들입니다. 십 대 후반부터 지금까지 참 열심히 달려왔는데, 여전히 삶의 길은 오르막이고 중간중간 쉬어갈 샘도 쉽사리 만나기 어렵습니다. 정상은커녕, 굽이치는 생의 길은 어디로 이어질지도 예측할 수 없어요. 비단 저만 이런 것은 아니겠지요?
‘산길(이성부)’에 인생길을 산길에 비유한 시입니다. ‘올라갈수록 무게를 더하면서 느리게 흘러가는 길’은 바로 생의 길입니다. ‘엇, 나는 나이를 먹을수록 시간이 빠르게 흘러가는데?’라고 생각하는 분들이 많으실 거예요. 저도 격하게 공감하는 부분이고요. 그런데 시인은 왜 ’올라갈수록 느리게 흘러가는 길‘이라고 했을까 생각해 봤습니다. 시에는 정답이 없으니, 그런 생각이 들더군요. ‘느리게 흘러간다’는 것이 시간의 개념이라기보다는, 발걸음의 무게가 아닐까 하고요. 생이 이어질수록(나이를 먹어갈수록) 책임져야 할 것들의 무게는 늘어납니다. 나 하나 책임지는 것으로도 충분했던 시절에는 발걸음조차 가벼웠지요. 사뿐사뿐 걷는 걸음은 ‘느림’과 어울리지 않습니다. 이제 더는 혼자가 아니게 되면 사뿐사뿐 걷기 어렵습니다. 직업인으로서 책임져야 할 일이 있고, (아이를 낳았다면) 부모로서 책임져야 할 아이들이 있습니다. (결혼을 했다면) 배우자의 보호자일 것이고, 나이 든 부모님의 보호자이기도 하겠지요. 사회에서 누리는 권리도 있겠지만, 그만큼 많은 의무를 감당해야 하기도 합니다.
우리의 생은 ‘잠 못 이루던 소외의 몸부림 속으로/생애가 파인 주름살 속으로/제 몸을 비틀면서 흘러‘갑니다. 어떤 사람이라도 저마다의 생에서 비틀거리고 흔들리지요. ’사는 일이 케이블카를 타고 오르는 일이 아니라/지름길이 따로 있어 나를 혼자 웃게 하는 일이 아니라‘는 이 시에서 가장 사랑하는 부분입니다. 누구의 삶에도 케이블카는, 지름길은 없다는 말이 묘하게 위로가 돼요.
주변을 돌아보면 가끔, 케이블카를 탄 듯한 사람이, 지름길로만 가로질러 가는 사람이 있습니다. 왜 없겠어요. 부모님을 잘 만나서, 타고나길 많이 가지고 태어나서, 선택할 수 없는 조건들을 이미 갖추어서 고생도 고난도 없이 살아가는 사람도 분명히 있지요. 삶이 남긴 주름살조차 찾아볼 수 없는 그런 사람들. 한때는 그들에게 상대적 박탈감을 느끼기도 했습니다. 내 것이 아닌 케이블카를, 지름길이 선명히 새겨진 지도를 부러워하기도 했어요.
이제는 압니다. 누구에게나 삶의 된비얄(험하고 높은 비탈의 순우리말 표현)은 있고, 저마다의 주름살도 있다는 것을요. 케이블카에는 위험부담이 따르기도 하고, 지름길인 줄 알았던 길이 막다른길일 수도 있다는 것도요. 누군가 대신 놓아준 케이블카를 타고 산에 오른 사람은 내려가는 길을 헤매기도 하고, 지름길로만 오른 사람은 굽이치는 길에 놓인 아름다운 장면을 보지 못하기도 한다는 것까지도요. 혹, 아주 안전한 케이블카를 타고 오른 사람이 있더라도, 그가 길을 헤매지 않더라도, 지름길은 진짜 지름길이었더라도 상관없습니다. 그 사람과 나의 인생은, 우리가 오르는 산은 같은 산이 아닐 테고 내가 만들어가는 나의 길은 그 자체로 충분히 의미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으니까요.
오늘도 ‘나의 알맞은 발걸음’으로 오늘 몫만큼의 길을 올랐습니다. 역시나 쉽지 않은 발걸음이었지만, 할 수 있는 최선의 보폭으로 느리게 잘 걸어온 것 같아요. 무사히 고요한 밤에 도착했으니까요! (이만하면 잘 걸어온 게 아닐까요.) 독자님들도 오늘 하루, ’알맞은 발걸음‘으로 뚜벅뚜벅 생의 길을 오르느라 고생하셨습니다. 케이블카도 없고, 지름길도 없지만, 걸어온 걸음걸음이 모두 길이 되었을 테니 우리 내일도 힘내보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