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일의 평화(심보선)
[시쓰는 가을] 열여덟 번째 시
휴일의 평화(심보선)
오늘은 휴일입니다
오전에는 평화로웠습니다
조카들은 [톰과 제리]를 보았습니다
남동생 내외는 조용히 웃었습니다
여동생은 연한 커피를 마셨습니다
오늘은 휴일입니다
오후 또한 평화롭습니다
둘째 조카가 큰 아빠는 언제 결혼할거야
묻는 걸 보니 이제 이혼을 아나봅니다
첫째 조카가 아버지 영정 앞에
말없이 서 있는 걸 보니 이제 죽음을 아나봅니다
오늘은 휴일입니다
저녁 내내 평화롭기를 바랍니다
부재중 전화가 두 건입니다
아름다운 그대를 떠올려봅니다
사랑하는 그대를 떠올려봅니다
문득 창밖의 풍경이 궁금합니다
허공이라면 뛰어내리고 싶고
구름이라면 뛰어오르고 싶습니다
오늘은 휴일입니다
이토록 평화로운 날은
도무지 다시 오지 않을 것 같습니다
출처: <슬픔이 없는 십오 초>, 문학과지성사,2012
어떤 순간을 평화롭다고 생각하시나요? 제가 생각하는 평화는 고요와 짝을 이룹니다. 고요라고 해서 적막한 것은 아니에요. 좋은 사람들과 기꺼운 소란 속에서 느끼는 ‘감정의 고요’입니다.
주말 아침, 두 아이가 알콩달콩 소꿉놀이 하는 곁에서 달그닥거리며 아침 설거지를 할 때.
퇴근길 고속도로를 달리며 잔잔한 음악을 제법 크게 들을 때.
저녁 준비를 하는 동안 두 아이가 욕조에서 신나게 물놀이를 할 때.
늦은 밤 넷플릭스 영화 한 편을 틀어 놓고 남편과 못다 한 이야기를 나누며 맥주잔을 기울일 때.
놀이터에서 아이들이 제 친구들과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를 신나게 하는 모습을 지켜볼 때.
모두 소란스러운 평화를 느낍니다. 특별한 이슈도 없는, 지극히 평범한 일상의 순간 속에서 평화를 느껴요. 이 평화는 행복과 직결되어서, ‘아, 평화롭다. 참 행복하다’라는 생각이 절로 듭니다.
‘휴일의 평화(심보선)’는 제목을 구체적인 장면으로 고스란히 묘사한 시입니다. 시를 찬찬히 읽어보시면 아시겠지만, 시에 드러난 장면은 무엇하나 특별할 것 없는 평범한 일상의 모습입니다. ‘큰아빠’라는 것으로 보아, 화자는 집안의 장남인 듯합니다. 이혼을 했고, 아버지는 돌아가셨으며, 현재 사랑하는 이가 있는 것 같아요. 무슨 연유인지는 알 수 없으나, 화자와 동생들은 한 집에 모여 있습니다. 남동생 내외의 아이들(조카들)이 만화 영화를 보는 동안, 남동생 내외는 그 모습을 흐뭇하게 지켜보고 여동생은 연한 커피를 마십니다. 영화를 다 본 조카들은 큰아빠인 화자 곁에 와서 ‘큰아빠는 언제 결혼할 거야’ 종알거리기도 하고, 할아버지의 영정사진 앞에서 할아버지를 그리워하기도 합니다. 눈을 씻고 찾아보아도 특별한 일, 대단한 일은 없어요. 그저 일상입니다. 그런 일상 속에서 화자는 ‘다시없을 평화’를 느껴요.
화자가 이혼을 했다는 것, 아버지를 먼 곳으로 보내드렸다는 것으로 보아, 화자의 삶에도 그림자가 드리운 날들이 많았을 것 같아요. 눈물을 삼켜야 했던 순간도, 답 없는 고민에 몸과 마음을 혹사시켜야 했던 기억도 많을 듯합니다. 이런저런 감정의 소란이 지난 뒤, 드디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일상 속에서 화자는 감정의 고요를 느끼지 않았을까 싶어요. 감정의 고요는 곧 평화로 이어졌고요.
지금보다 어릴 때에는 평화나 고요가 지루하다고 생각하던 때도 있었습니다. 특별한 순간들을 더 많이 만들고 싶었어요. 낯선 곳에 가고, 특별한 인연을 만들고, 대단한 것을 먹고… 그런 역동적인 삶에 매력을 느꼈습니다. 물론 지금도 가끔은 역동적인 순간을 꿈꾸기도 합니다만, 간절함은 확실히 덜해졌어요. 오히려 고요하고, 그래서 더없이 평화로운 순간들을 더 자주 꿈꿉니다. 아무런 이벤트 없는 휴일, 일상적인 공간에서 익숙한 사람들과 평범한 시간을 보내는 그런 휴일이 좋습니다. 너무나 당연하게 느껴지는 그런 휴일의 평화가 다시없을까, 괜한 불안을 느낄 정도로 좋아요.
내일은(이제 삼십 분만 지나면!) 토요일! 드디어 일주일을 기다린 휴일이네요. 추석 연휴부터 한글날 연휴까지 10월의 긴 연휴가 끝나고 며칠 동안 출근을 했더니(심지어 오늘은 야간자율학습 감독이었답니다!), 이번 주는 평소보다 휴일이 더 간절했어요. 내일은 아침부터 저녁까지 정말로 평화로운 휴일이기를 바라봅니다! 독자님들도 고요한 평화를 누리는 휴일 되시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