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이아몬드가 아니어도, 괜찮다는 마음.

흑연과 다이아몬드(유하)

by 진아

[시쓰는 가을] 열일곱 번째 시


흑연과 다이아몬드(유하)


다이아몬드와 흑연은

같은 구성 원소로 이루어져 있다

다만 차이가 있다면, 흑연은

원자의 결합 상태가 느슨하고

조직이 헝클어져 있을뿐


그렇다면 혹 나도, 심신의 조직이

미세하게 헝클어진 관계로

광휘만을 숭배하는 이 인생의 광산 속에서

흑연을 닮은 사람으로 살고 있는 게 아닐까


매순간, 자신의 육체를

값싼 종이의 여백과 기꺼이 맞바꾸고 있는,


캄캄한 흑연의 운명


같은 구성 원소? 물론 다이아몬드는 간단히 비웃겠지

같잖은 흑연의 광물적 몽상과 비약을,

그러나 닳아지는 살들이여, 난 끝끝내

흑연의 영혼으로 걸어갈 것이다

저, 노래의 다이아몬드를 향하여


출처:<세운상가 키드의 사랑>, 문학과지성사, 2009


‘흑연과 다이아몬드(유하)’는 많은 생각을 하게 하는 시입니다. 흑연과 다이아몬드, 겉으로만 보면 참 다른 두 대상이지요. 둘의 구성원소가 똑같다니, 다만 원자의 결합 상태가 다를 뿐이라니, 화학적 지식이 전무한 제게는 정말 놀라운 사실입니다. 같은 구성 원소라도, 어떻게 결합되느냐에 따라 조직이 어떠하냐에 따라 흑연이 될 수도, 다이아몬드가 될 수도 있다니요.


저는 이 시가 ‘그러니 우리도 노력해서 모두 다이아몬드가 되자’는 방향으로 흐르지 않아서 참 좋았습니다. ‘난 끝끝내/ 흑연의 영혼으로 걸어갈 것이다’라고 단언해서 좋았어요. 모두가 다이아몬드를 꿈꾸는 세상에서, 흑연으로 살고 있는 자신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며 나아가고자 하는 태도에 마음을 뺏겼습니다.


모두가 다이아몬드라면, 다이아몬드도 지금만큼의 가치를 인정받지 못했겠지요. 수많은 흑연들 사이에서 극소수만이 다이아몬드가 되었기에 특별한 의미를 얻었을 거예요. 흑연이 다이아몬드의 가치를 만들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그렇다면 흑연은 다이아몬드의 뒷배경, 그 외에는 아무런 가치가 없는 존재일까요.


흑연은 흑연대로의 운명이 있습니다. ‘자신의 육체를/값싼 종이의 여백과 기꺼이 맞바꾸는’ 것이 흑연의 운명입니다. 자신의 살을 닳게 하여 노래의 다이아몬드로 나아가는 것. 흑연은 거기에서 존재 가치를 지닙니다. 심신의 조직을 바로 잡아 다이아몬드가 되고자 노력하는 것이 아니라, 헝클어지면 헝클어진 대로 흑연의 운명에 따르는 삶 또한 의미가 있어요.


많은 이들이 다이아몬드가 되고 싶어 합니다. 몸과 마음의 헝클어짐을 인정하지 않고, 스스로를 가혹하게 단련하여 귀한 다이아몬드가 되기를 원해요. 한 번 사는 삶, 이왕이면 자신의 생을 값싼 종이 여백과 맞바꾸는 흑연의 삶보다는 누구에게나 귀한 대접을 받는 다이아몬드의 삶을 살기를 바라지요. 저도 별반 다르지 않았습니다. 한때는 다이아몬드 같은 삶을 살기를 간절히 소망했었어요. 조금 더 반짝반짝 빛나는 사람이 됐으면. 멀리서 봐도 한눈에 알아볼 수 있는 특별한 사람이 되었으면.


결론적으로, 지금의 저는 흑연의 운명과 유사한 삶을 살고 있습니다. 다이아몬드가 되고자 하는 욕심을 완전히 내려놓고요. 자주 헝클어진 몸과 마음을 마주합니다. 그럴 때마다, 나는 왜 이렇게밖에 하지 못하나 자책하기보다는 지금 내 몸과 마음이 버거운 상태구나 인정하는 쪽을 선택했어요. 내가 갖지 못한 것은 탐하지 않고, 가진 것에 만족하자고 다짐했지요.


앞으로도 단단한 조직을 이뤄 스스로 빛을 내는 다이아몬드는 되지 못할 것 같습니다. 애당초 그쪽은 제 운명이 아닌 것 같아요. 다만, 삶이라는 종이의 여백에 헝클어진 마음을 가감없이 써내려가는 흑연으로 살고 싶습니다. 흑연의 운명처럼, 제 살을 닳게 하더라도 생의 종이를 여백 없이 채워가는 삶을 살 수 있다면 그걸로 족할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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