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사하는 마음

귀한 마주침, 텅빈 충만(엄원태)

by 진아

[시쓰는 가을] 스물한 번째 시


귀한 마주침, 텅빈 충만(엄원태)


목요일 늦은 오후, 텅 빈 강의실 복도에서 쓰레기통을 비우고 있는 청소 아주머니와 마주친다. 눈이 마주치자 몸피가 조그만 아주머니는 내게 다소곳이 허리 굽혀 인사를 한다. 내가 마치 ‘높은 사람’이라도 된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키는 공손한 인사. 무슨 종류일지 짐작 가는 바 없지 않지만, 아마도 어떤 ‘결핍’이 저 아주머니 마음에 가득하여서, 마음자리를 저리 낮고 겸손하게 만든 것이겠다. 저 나지막한 마음의 그루터기로 떠받치고 품어 안지 못할 것이 세상에 있기나 한 것일까?


아주머니, 쓰레기들을 일일이 뒤적여 종이며 캔과 병 같은 것들을 골라내어 따로 챙긴다. 함부로 버려진 것들에서 ‘소중한 어떤 것’을 챙기는 사람 여기 있다. 아주머니는 온몸으로, 시인이다.


출처:<물방울 무덤>, 창비시선, 2007


저희 학교에는 학교 건물 전체를 쓸고 닦아주시는 아주머니 두 분이 계십니다. 한 학년 당 8개 학급, 총 24개 학급이 있는 큰 학교인데요. 두 분이서 그 큰 학교를 얼마나 열심히 청소해 주시는지 몰라요. 학교 건물 내에서 바닥에 떨어진 쓰레기 한 번 본 적이 없습니다. 화장실도 언제나 반짝반짝 윤이 납니다.


두 아주머니가 청소를 하시는 모습을 가만히 지켜본 적이 있습니다. 두 분은 인상 한 번 쓰는 법이 없으셨어요. 신기할 정도로 만면에 미소가 가득하셨습니다. 여름엔 덥고 겨울엔 추운 복도와 화장실 청소도 미소 띤 얼굴로 해주시는 두 분 덕분에 학교는 언제나 환한 봄입니다.


두 분을 보면 고개를 깊이 숙여 인사합니다. 두 분도 한참 어린 제게 그렇게 인사하세요. 으레 그렇듯 늘 환하게 웃는 모습으로요. 두 분과 인사를 나누고 돌아서는 걸음은 항상 가뿐합니다. 몸이 고된 일, 누군가가 버린 쓰레기를 치우는 일, 누군가가 더럽힌 공간을 깨끗이 정리하는 일. 그 일의 신성함을 믿습니다. 누구도 하고 싶지 않은 일을 누구보다 환하게 해내시는 분들 덕분에 내가 누리고 있는 안락함에 감사합니다.


‘귀한 마주침, 텅빈 충만(엄원태)’을 읽으며 내내 두 분을 떠올렸습니다. 함부로 버려진 것들 사이에서 소중한 것들을 골라내는 두 분 덕분에, 반짝이는 공간들을 생각했어요. 두 아주머니, 아니 두 시인 덕분에 우리 학교는 봄처럼 따스한 시를 품은 학교일 수 있습니다. 내일은 두 분께 더 깊은 감사를 담아 인사드려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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