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픔은 이제(유병록)
[시쓰는 가을] 스무 번째 시
슬픔은 이제(유병록)
아무렇지 않은 척
고요해진 척
회사에서는 손인 척 일하지
술자리에서는 입인 척 웃고 떠들지
거리에서는 평범한 발인 척 걷지
슬픔을 들킨다면
사람들은 곤란해할 거야 나는 부끄러워질 거야
네가 떠오를 때마다
고개를 흔들지 몸속 깊숙한 곳으로 밀어두지
구덩이 속에서 너는 울고 있겠지만
내가 나에게 슬픔을 숨길 수 있을 때까지
모르는 척
내가 나를 속일 수 있을 때까지
괜찮아진 척
출처:<아무다짐도 하지 않기로 해요>, 창비시선, 2022
시는 감정(정서)를 다루는 문학입니다. 행복과 사랑, 기쁨과 환희를 다루는 시만큼이나 슬픔과 아픔, 고통과 절망을 다루는 시도 많아요. 저는 전자보다 후자를 더 아끼는데요. 행복과 사랑, 기쁨과 환희는 환대받는 감정들이지만, 슬픔과 아픔, 고통과 절망은 외면받는 감정이기 때문입니다. 중요하지 않아서 외면받는 것이 아니에요. 감당하기 힘들기에 모른 척하고 싶어지는 거지요. 그런 감정을 전면에 드러내는 시를, 무척이나 사랑합니다.
‘슬픔은 이제(유병록)’는 슬픔에 관한 시입니다. 시의 화자에게 어떤 일이 있었는지는 알 수 없어요. 시에는 그와 관련한 어떤 정보도 제시되지 않으니까요. 그러나 화자는 깊은 슬픔에 허우적거리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아무렇지 않은 척/ 고요한척/ 모르는 척/괜찮아진 척’ 합니다. 슬픔이 태양처럼 떠오를 때마다, 몸속 깊숙이 애써 밀어넣어버립니다. 울고 있는 슬픔을 온힘을 다해 외면하고 있어요. ‘내가 나에게 슬픔을 숨길 수 있을 때까지/내가 나를 속일 수 있을 때까지’라는 표현은 정말 마음 시린 표현입니다. 내가 슬프다는 사실조차 잊고 싶을, 아니 더는 슬프지 않다 믿고 싶을 때까지 모르는 척, 괜찮은 척하겠다니요. 얼마나 거대한 슬픔이면 이토록 온마음으로 외면하려는 걸까요.
누구나 한 번쯤은 그런 슬픔을 겪습니다. 오래 준비한 일이 좌절되었을 때, 마음을 쏟은 일이 엎어졌을 때, 깊이 사랑한 이와 이별했을 때, 소중한 이가 곁을 떠났을 때…… 속수무책으로 슬퍼해야 하는 날들입니다. 그럴 때, 마음껏 슬퍼할 수 있는 사람이 많을까요? 제 생각에는 아닐 것 같아요. 슬픔에는 유통기한이 없는데, ‘그정도 했으면 그만 해도 된다’라며 슬픔의 기한을 한정하는 사람들이 꽤 많거든요. 아직 내 마음에 슬픔이 가득하더라도, 내 슬픔을 부정하는 이들 앞에서 마음껏 슬퍼하는 것은 무척 어려운 일입니다. 그런 일이 반복되면 자연스럽게 깊숙한 마음의 방 안에 슬픔을 밀어넣고 빗장을 걸게 마련이에요.
빗장 안에 갇힌 슬픔은 예상치 못한 곳에서 튀어나오곤 합니다. 슬픔과 관련된 계절을 맞이하면, 장소에 도착하면, 사람들을 만나면 예고 없이 불쑥 떠올라요. 분명 내 감정이지만, 그렇게 불쑥 고개를 내민 슬픔을 외면하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어떤 슬픔은, 거대한 파도 같고 마음의 땅을 가르는 지진 같거든요.
그럴 때는 그냥 마음껏 슬퍼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누군가에게 들키더라도, 혹 누군가를 조금 곤란하게 하더라도, 슬픔에게 시간의 자리를 조금만 내어주면 좋겠어요. 내 안의 슬픔이 바깥으로 나오려는 데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지 않을까요. 어쩌면 마음껏 슬퍼하는 행위 자체가 슬픔의 유통기한을 조금이라도 앞당기는 유일한 방법일지도 몰라요.
슬픔을 외면하지 않는 사람이 건강한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나아가 슬픔을 외면하지 않는 사회가 건강한 사회라고 생각해요. 우리 마음껏 슬퍼하고, 마음껏 웁시다! 누구의 눈치도 보지 말고, 나의 슬픔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표현해요, 우리. 슬픔은, 결코 나쁜 감정이 아니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