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짜 빛을 내는 사람.

가족(진은영)

by 진아

[시쓰는 가을] 스물세 번째 시


가족(진은영)


밖에선

그토록 빛나고 아름다운 것

집에만 가져가면

꽃들이

화분이

다 죽었다


출처:<일곱 개의 단어로 된 사전>, 문학과지성사. 2012


저는 밖에서 꽤 다정한 교사이자 친구이고 선배이며 후배입니다. 딱히 화를 낼 일도 없고, 화를 내서 해결되는 일도 없다고 생각하는 편이에요. 학생들의 어처구니없는 행동에도 웬만해서는 큰소리를 내지 않고, 납득이 어려운 동료와 함께 일하게 되더라도 가능하면 얼굴 붉힐 일은 만들지 않습니다. 제 시간을 써서 친구들의 이야기 듣기를 좋아하고, 친구들의 생일이나 기념일을 기억했다 작은 선물 하기를 주저하지 않습니다.


이토록 다정한 제가, 유일하게 날 선 모습을 보이는 곳이 집입니다. (이 문장 하나 썼을 뿐인데 벌써 부끄러워집니다.) 밖에서 에너지를 많이 쓰고 와서인지, 집에서는 좀 풀어져도 모두 내편이라는 막연한 믿음 때문인지, 집에서는 마냥 다정하기 어려워요. 남편의 모습에서 이해할 수 없는 모습들을 찾게 되고 아이들의 모습에서 제 마음 같지 않은 모습들을 발견하게 됩니다. 그럴 때마다 밖에서 하듯 너그럽게 대처하지 못하고, 날 선 목소리, 뚱한 표정으로 화를 내고 말아요.


“엄마, 오늘따라 왜 이렇게 짜증스러워?”


어제 아침 출근과 등원 준비로 정신이 없는데, 첫째 아이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는 말했습니다. 아이의 말을 듣고 보니, 제가 그랬더라고요. 왜 빨리 밥을 먹지 않느냐, 왜 빨리 씻지 않느냐며 아이들을 재촉하고 조금만 제가 생각하는 속도에 뒤처져도 아이들을 몰아붙이고 있더군요.


“아, 사랑아. 엄마가 그랬어?”

“응, 엄마가 자꾸 짜증스러운 말투로 빨리빨리 하니까 내가 마음이 더 바쁘잖아. 나도 지금 빨리 하고 있다고.”

“아. 미안해. 엄마가 마음이 바쁘니 짜증이 났나 보다. 미안해. “


아이는 더 별말하지 않고 자기 속도대로 준비를 차근차근해나갔어요. 아이들을 무사히 등원시키고 출근을 하는데, 차 안에서 참 복잡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아마도 이번 주에 배달할 시 중 한 편으로 ’가족(진은영)‘을 골라놓았기 때문에 더 그랬을 거예요. ’밖에선/그토록 빛나고 아름다운 것/집에만 가져가면/ 꽃들이/ 화분이/ 다 죽었다‘ 이 짧은 문장에서 제가 가족을 대하는 태도를 돌아보았습니다. 밖에서의 저와 집에서의 제가 너무나 비교되었거든요. 부끄러움이 마구 쏟아졌어요. 학교에서 학생들을 대하는 태도로만 저희 집 꼬마들을 대해도 이것보다 훨씬 더 다정하지 않을까, 감히 반성조차 하기 힘든 마음이 들었어요.


밖에서 빛나고 아름다운 것이, 집에서도 빛나고 반짝이려면 정말 많은 애씀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 애씀이 있어야, 진짜 빛을 가진 아름다운 사람이 되지 않을까 싶어요. 그런 의미에서 저는 지금껏 거짓 빛에 본모습을 감춘 채 꽤 괜찮은 사람인 척했던 것 같습니다. 이제라도 진짜 빛을 찾고 싶어요. 어디서든 꽃피우고, 빛을 내는 진짜 아름다운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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