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엄원태)
[시쓰는 가을] 스물네 번째 시
저녁(엄원태)
비 그치자 저녁이다 내 가고자 하는 곳 있는데, 못 가는게 아닌데, 안 가는 것도 아닌데, 벌써 저녁이다 저녁엔 종일 일어서던 마음을 어떻게든 앉혀야 할 게다 뜨물에 쌀을 안치듯 빗물로라도 마음을 가라앉혀야 하리라, 하고 앉아서 생각하는 사이에 어느새 저녁이다 종일 빗속을 생각의 나비들, 잠자리들이 날아다녔다 젖어가는 날개 가진 것들의 젖어가는 마음을 이제 조금은 알겠다, 저녁 되어 마음을 가라앉히는 것이 늙어가는 어떤 마음과 다름 없는 것을…… 뽀얗게 우러나는 마음의 뜨물 같은 것을…… 비가 그 무슨 말씀인가를 전해주었나보다
출처:<물방울 무덤>, 창비시선, 2007
이미 저녁을 한참 지난 밤입니다. 오늘 하루를 곰곰이 돌아봅니다. 수업에 업무에 육아에 살림에 빈틈없이 바빴던 하루였어요. 차분히 생각해 보니 종일 참 분주하게 하루를 보냈다 싶네요.
저에게 저녁은 일과 중 가장 분주한 시간인데요. 이른 아침에 헤어졌던 가족 모두가 집에서 모이는 시간이기 때문이에요. 집안 정리며, 저녁 식사, 빨래, 설거지, 어떤 때는 직장에서 싸들고 온 일까지 처리해야 하는 시간. 너무 종종거리며 저녁을 보내다 보면, 아이를 재우며 함께 잠들어버리기 일쑤입니다. 아마 이 매거진을 쓰지 않았다면, 저는 대체로 아홉 시 반이면 잠이 들었을 거예요.
두 아이를 모두 재운 후, 짙은 어둠에 고요가 깔린 이 시간. 작은 파우더룸에 앉아서야 몸과 마음을 가라앉힙니다. 저의 하루는 어쩌면 이 시간과 공간에 도착하기 위한 과정이었던 것 같아요. 무사히 밤을 맞아 좋아하는 글을 쓰기 위해 그토록 분주한 하루를 잘 견디어낼 수 있었습니다. 문득 지금의 고요가, 가라앉음이 사무치게 기껍습니다.
’저녁(엄원태)’는 저녁 시간에 대한 이야기예요. 비가 그치자마자 맞이한 저녁입니다. 화자는 가고자 하는 곳이 있었어요. 못 가는 것도, 안 가는 것도 아니었지만 결국 가려던 곳에 도착하지 못한 채 저녁을 맞이하고 맙니다. 종일 그곳에 가야 한다는 생각으로 들썩였을 마음을 그제야 가라앉혀봅니다. ’종일 빗속을 생각의 나비들, 잠자리들이 날아다녔다‘라는 표현에서 짐작컨대, 종일 비가 왔고 화자는 머릿속이 복잡하도록 생각하고 또 생각했던 것 같아요. 어쩌면 갈등했을지도 모릅니다. ’가야하는데, 가야 하는데….‘ 하면서. 저녁이 되어서야 복잡했던 생각들이 조금씩 정리됩니다. 그리고는 생각해요. ’저녁 되어 마음을 가라앉히는 것이 늙어가는 어떤 마음과 다름 없-‘다고요.
하루의 시간을 생의 시간에 빗대보면, 저녁은 하루가 저물어 가는 시간 즉, 하루가 늙어가는 시간입니다. 해가 쨍쨍하던 오전에는 해야 할 일과 하고 싶은 일들 사이에서 마음이 분주해요. 해질녘이 되면, 오늘 할 수 있는 일과 할 수 없는 일을 구분하게 됩니다. 더는 어떤 이유에서건 할 수 없는 일에 매달려 종종거릴 수 없어요. 곧 밤이 오고 오늘 하루도 완전히 끝이 날 테니까요. 그런 의미에서 화자의 말처럼 ‘저녁 되어 마음을 가라앉히는 것‘과 ‘늙어가는 어떤 마음’은 비슷한 마음이 아닐까 해요. 저녁에 마음이 가라앉는 것처럼, 생이 늙음의 역을 지나갈 때면 조금은 더 차분해지고 고요해지는 것이 아닌가. 조금은 덜 헤매고 덜 분주한 것이 아닌가…
아직 젊은 제가 감히 늙음을 말할 수 있는지 모르겠습니다만, 나이 들어감을 생각해 보면 확실히 그런 것도 같아요. 어렸을 때와 지금을 비교해 보면, 마음이 들뜨는 일보다는 차분해지는 일이 많습니다. 사소한 일에 일일이 흥분하지 않고, 조금은 길고 멀리 볼 줄도 알게 되었어요. 쉽게 들떠서 실수하는 일보다, 오래 곱씹고 생각해서 해내는 일이 많아지기도 했고요. 더 나이를 먹어 무사히 늙음에 도착하게 되면, 지금보다 더 갈등하지 않고 헤매지 않을 수 있을까요. 그렇다면 그 늙음은 어느 유행가의 가사처럼, 확실히 낡음이 아니라 익음일 것 같아요.
오늘을 무사히 보내고 이 시간과 공간에 잘 도착한 것처럼, 여전히 젊은 지금을 무사히 보내고 늙음에 잘 도착하고 싶어요. 익어가는 마음으로 늙어가는 시간을 잘 맞이하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