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의 뒷모습(최정숙)
[시쓰는 가을] 스물일곱 번째 시
가족의 뒷모습(최정숙)
너와 내가 만나
서로의 뒷모습을 본다는 일
부모가 되고
자식이 된다는 일
모래바람 속에서
꽃이 피듯
놀랍고 놀라워라
어찌 이만한 기적이 있을까보냐
천지가 돕지 않고서야
신명이 살피지 않고서야
우주 속 한 점으로 떠돌던
너와 내가 만나
부모와 자식으로 만날 수 있으랴
이별과
저별 사이
그리움에 사무치지 않고서야
저 무한의 강을 어찌 건너
뒷모습만 봐도 좋은
달 같은
해 같은
가족이 되었으랴
출처: <가족이 뭐길래>, 허형만 외 21인, 스타북스, 2015
뒷모습이 애틋하다는 걸 알게 된 것은 엄마가 된 이후였어요. 아이들이 자라 저를 앞질러 걷기 시작했을 때, 첫째 아이가 제 손을 놓고 유치원 정문으로 혼자 들어서던 때, 둘째 아이가 선생님 손을 잡고 소풍 가는 버스에 오르던 때... 아이들의 뒷모습을 볼 때마다 괜히 울컥하더라고요. 그 마음을 뭐라고 표현해야 할지요. 얼마나 다정한 마음이면, 표정조차 알 수 없는 누군가의 뒷모습이 그토록 절절하게 다가오는 걸까요.
불현듯 '우리 엄마도 내 뒷모습을 그런 마음으로 쳐다봤겠구나' 싶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제가 처음 엄마를 앞질러 걷던 날, 엄마 손을 놓고 혼자 학교 교문을 통과하던 날, 수능 시험장과 임용 시험장에 들어서던 날, 고향에 엄마를 두고 타지로 독립해 떠나던 날, 결혼식장에서 신부 입장을 하던 순간, 신혼여행에 가기 위해 고속버스에 몸을 싣던 순간.... 떠오르는 대로만 써보았는데도, 엄마의 다정한 시선에 애틋하게 담겼을 저의 뒷모습들이 그려집니다.
저 또한 제 두 아이가 자라나는 뒷모습을 애틋하고 다정하게 눈과 마음에 담아 가겠지요. 생에 큰 변수 없이, 자연스럽고 당연하게 두 아이의 모든 뒷모습을 제 눈과 마음에 담을 수 있기를 간절히 기도하는 밤입니다.
제 첫 책 '엄마만으로 완벽했던 날들'에도 가족의 뒷모습과 관련된 시가 있습니다.(어쩐지 좀 부끄럽지만 제가 쓴 시입니다.^^) 제게 가장 애틋한 두 사람의 뒷모습을 함께 본 날, 일기처럼 쓴 시였는데요. 그날의 그 장면이 지금도 눈에 선명합니다. 오늘은 그 시를 덧붙여 드리는 것으로 글의 마무리를 대신합니다.
뒷모습만 봐도 좋은, 가족들을 떠올리는 시간이 되셨기를.
등(진아)
저 앞선 자리에
내 아들 업고 가는 울 엄마 등이 있다
가볍지 않은 무게, 가뿐히 짊어진
작고 가녀린 등
종종걸음으로 쫓아봐도
늘 앞서 걷는
저 등
수십 년 전
내가 업혔던 등에
수십 년 후
내 아들이 업혀 있다
참으로 따숩고 너르던 저 등
이제는 마르고 여위었다
멀어지는 등을 바라보다 알았다
저 등에 업힌 것은 내 아들이 아니구나
내 삶의 무게구나
그랬다
엄마의 등은
여전히 나를 업고 걷는 중이었다
아직도 그대로
참 따숩고 너른 등이었다
출처: <엄마만으로 완벽했던 날들>, 담다, 20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