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진 사람(백무산)
[시쓰는 가을] 스물여섯 번째 시
어진 사람(백무산)
어질다는 말
그 사람 참 어질어, 라는 말
그 한마디면 대충 통하던 말
가진 사람이나 못 가진 사람이나
양반이나 상것이나 잘난 사람이나 못난 사람이나
그 사람 어진 사람이야, 그러면 대충 끄덕이던 말
집안 따질 일이며 혼처 정할 일이며 흉허물 들출 일에도
사람을 먼저 보게 하는 말 나머진 대충 덮어도 탈이 없던 말
시장기에 내놓은 메밀묵맛 같은 사람
조금 비켜서 있는 듯해도
말끝이 흐려 어눌한 듯해도
누구든 드나들도록 숭숭 바람 타는 사람
보리밥 숭늉맛 같은 사람
뒤에서 우두커니 흐린 듯해도 끝이 공정한 사람
휘적휘적 걷는 걸음에 왠지 슬픔이 묻어 있는 사람
반쯤 열린 사립문 같은 사람
아홉이 모자라도 사람 같은 사람
아버지들 의논을 끝내던 그 말
지금은 사라지고 없지만
어질기만 해서 사람 노릇 못해,
그럴 때만 쓰는 말
출처: <그 모든 가장자리>, 창비, 2012
'호의가 계속되면 호구가 된다'
워낙 유명한 영화 대사라 한 번쯤은 들어보셨을 거예요. 직접 사용해 보신 분들도 꽤 많지 않을까 합니다. 호의, 즉 좋은 마음이 계속되면 호구, 즉 이용당하기 쉬운 사람이 된다는 말인데요. 이 대사는 대중들에게 엄청난 사랑을 받았습니다. 그만큼 깊은 공감을 얻었다는 말이겠지요.
이 대사가 유행한 이후부터, 어디까지 호의를 베풀어야 할지 고민하는 일들이 생겼어요. 이제까지는 별다른 고민이나 특별히 기분 나쁜 마음 없이 그냥 내 마음이 좋아서 베푼 호의들이었는데, 이 대사를 곱씹다 보니 정말 내가 호구가 된 것은 아닌가, 싶은 자괴감이 들지 뭐예요. 어진 사람까지는 못 되어도, 내가 할 수 있는 선에서 친절을 베풀고 마음을 다하려고 했는데 어느 순간부터는 그 마음을 이용하는 사람들이 보이기 시작한 겁니다.
좀 슬펐어요. 더는 좋은 마음을 지속하고 싶지 않은 상황에 내몰리는 것도, 좋은 마음을 이용하려는 사람들과 마주하는 것도. 제 마음을 지키기 위해 좋은 마음을 뒤로 감추고 계산부터 하게 되는 제가 마뜩잖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마음을 이용당하고 싶지도 않아 한동안 꽤 어정쩡한 채로 살았던 것 같아요.
'어진 사람(백무산)'을 읽으며 생각이 많아졌어요. 특히 2연에서 마음이 오래 머물렀습니다. 2연에 쓰인 '어진 사람'의 비유적 표현들을 나름대로 풀어보았어요. 맛은 심심하지만 시장할 때 먹으면 한 끼 거뜬한 식사가 되는 메밀묵처럼 든든한 사람, 비켜서 있는 것 같기도 어눌한 것 같기도 하지만 누구든 드나들 수 있는 여백을 가진 사람, 맹숭맹숭한 것 같아도 자기만의 구수한 향을 지닌 사람, 뒤로 물러나 흐린 것처럼 보여도 정의롭지 못한 일은 하지 않는 사람, 무심한 듯 하지만 슬픔에는 무던하지 않은 사람, 언제나 누구나 들여다보고 지친 발걸음을 쉬어 갈 수 있는 열린 마음을 지닌 사람.
풀어쓰는 과정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표현은, '뒤에서 우두커니 흐린 듯해도 끝이 공정한 사람'이었는데요. 화자가 생각하는 '어진 사람'은 그런 사람이었어요. 그저 착하고 순한 사람이 아니라 '공정함'을 아는 사람. 선한 마음을 지녔지만, 옳고 그름을 구분할 줄 아는 사람.
'어질다'의 사전적 의미를 찾아보면, '마음이 너그럽고 착하며 슬기롭고 덕이 높다'입니다. 시에서 정의한 대로, 어질다의 본뜻은 그저 너그럽고 착한 것만은 아니었던 거예요. '슬기롭고 덕이 높다'까지 갖추었을 때 진정으로 어진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언젠가부터 '어질다'라는 단어의 의미에서 슬기롭고 덕이 높다는 사라지고 착하다는 뜻만 남은 것은 아닌가 싶어요. 그러니 '어질기만 해서는 사람 노릇 못해'라는 말도, '호의가 계속되면 호구가 된다'라는 말도 흔해진 게 아닐까요.
진짜 어진 사람은 너그럽고 슬기롭습니다. 선하면서 현명해요. 넓고 깊은 마음을 지녔으며 옳고 그름을 구분할 줄 알아요. 성인군자 앞에 '어질다'라는 표현이 왜 붙었는지 이제야 분명히 알 것 같네요. '어질다'는 '어리숙하다'와 완전히 다른 표현이었어요. 결국 제가 호의를 베풀면서 호구가 되는 건 아닌가 번민했던 건, 제 안에 슬기와 현명함이 부족했기 때문이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인생의 중년에 들어서는 저에게 오늘 다룬 ‘어질다’라는 단어는 울림이 큽니다. 제대로 어진 사람, 어진 어른이 되고 싶어요. 정말 어려운 일 같지만, 한편 생각해 보면 성숙한 어른이라면 으레 그런 사람이어야 하지 않나 싶기도 합니다. 부단한 애씀이 필요할지라도, 한 번뿐인 생에서 어진 어른으로 늙어가는 건 꽤 근사한 일일 것 같아요.
그리고 또 하나, 어진 사람을 어진 마음으로 바라보는 사람들이 많아졌으면 좋겠습니다. 어진 사람이 귀해진 세상에서, 어진 사람들이 이루어가는 공동체를 꿈꿔봅니다. 꿈은 원대해도 괜찮은 거니까, 이왕 꾸는 꿈 크게 꿔보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