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기억(문태준)
[시쓰는 가을] 서른 번째 시
첫 기억(문태준)
누나의 작은 등에 업혀
빈 마당을 돌고 돌고 있었지
나는 세살이나 되었을까
볕바른 흰 마당과
까무룩 잠이 들었다 깰 때 들었던
버들잎 같은 입에서 흘러나오던
누나의 낮은 노래
아마 서너살 무렵이었을 거야
지나는 곁에
내가 나를 처음으로 언뜻 본 때는
출처:<아침은 생각한다>, 창비시선, 2022
“봄아, 봄이가 기억하는 일 중에서 가장 오래된 일이 뭐야?”
“오래된?”
“응, 가장 아가 때 기억”
“음… 까꿍놀이 한 거!”
“까꿍놀이? 누구랑?”
“엄마랑!”
“엄마랑? 엄마랑 어떻게? 어디서 했는지도 기억나?”
“집에서 했지~! 엄마가 이렇게 두 손으로 얼굴을 가리고 까꿍! 했잖아.”
“진짜? 그걸 기억한다고? 그때 봄이는 어땠는데?”
“웃었지. 까르르~!”
둘째와 잠들기 전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어제의 다짐을 지키고자, 오늘은 함께 잠이 드는 한이 있어도 딸이 잠들기를 평온한 마음으로 기다려야지 싶어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어요. 그러다 문득, 오늘의 시가 떠올라 아이에게 물었습니다. 아이의 답을 듣는데 너무 놀라웠어요. 까꿍놀이를 가장한 숨바꼭질도 아니고, 제가 손으로 얼굴을 가렸다 손을 떼며 “까꿍!” 하는 까꿍놀이라니요. 그건 정말 아이가 작은 아가였을 때 하던 놀이인데요. 그 장면을 기억한다니 신기함을 넘어 신비롭기까지 했어요.
“그럼 사랑이 오빠랑 기억 중에 가장 오래된 기억은 뭐야?”
“오빠랑 미끄럼틀 탄 거.”
“미끄럼틀? 어디서?”
“우리 집에 예전에 미끄럼틀 있었지?”
“아, 응. 있었지.”
“그 미끄럼틀에서 오빠랑 논 게 기억나. 우리가 막 웃다가, 내가 오빠를 꼭 안았잖아.”
“세상에. 그게 기억나?”
“응!”
아이의 첫 기억은 모두 좋은 기억들이었어요. 많이 웃고, 많이 행복했던 순간의 기억들이었습니다.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요.
“엄마는 뭐가 기억나?”
“엄마는 사랑이랑 봄이의 모든 순간을 기억하지.”
“가장 오래된 기억은 뭐야?”
“그건 당연히, 너희가 태어나던 순간의 기억이지. 물론 뱃속에 있었을 때도 다 기억나.”
“나 태어났을 때 기억나?”
“그럼! 당연하지. 1분 1초 다 기억나. 봄이가 엄마를 만나러 오겠다고 한 날보다 3일이나 늦은 거 알아?”
“내가?”
“응, 원래 엄마랑 만나기로 한 날이 지나도 봄이가 안 나와서 우리 가족 모두 봄이를 간절히 기다렸지.”
“그래서?”
“3일 뒤에 봄이가 나왔는데, 나오자마자 봄이가 얼마나 크게 울었는지.”
“목소리 큰 룰라처럼?”(‘목소리 큰 룰라’는 그림책 제목입니다.)
“응, 맞아. 룰라처럼.”
“처음엔 그랬지만 그 뒤로 금방 지금처럼 예뻐졌지?”
“목소리 큰 룰라처럼 크게 울 때도 엄마 눈에는 가장 예뻤지.”
한참을 더 이야기 나누다 미소를 머금은 채 잠든 아이를 보며, 뭉클한 마음으로 글을 씁니다. 첫 기억으로 저와의 까꿍놀이를 기억하는 아이와, 그 아이의 모든 순간을 기억하는 저 사이에는 앞으로도 수많은 이야기가 생기겠지요. 어떤 건 기억될 것이고, 어떤 건 잊힐 겁니다. 아마 아이는 더 많은 것을 잊고, 저는 더 많은 것을 기억하게 될 것 같아요.
아이가 잊는 모든 순간까지 기억할 저는, ‘엄마’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