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죽었다면(이문재)
[시쓰는 가을] 서른다섯 번째 시
어제 죽었다면(이문재)
질문을 바꿔야
다른 답을 구할 수 있다
이렇게 바꿔보자
만일 내가 내일 죽는다면, 말고
어제 내가 죽었다면, 으로
내가 어제 죽었다고
상상해보자
만일 내가 어제 죽었다면
출처: <혼자의 넓이>, 창비, 2022
지난 한 주는 올 한 해 들어 가장 바쁘고 긴장했던 주였습니다. 수능 시험이 있었기 때문이에요. 고등학교에서 근무하다 보니 정말 매년 수능날마다 초긴장 상태인데요. 제가 아무리 긴장을 한다고 해서 시험 치는 아이들만 하겠냐마는, 그런 아이들을 지켜보는 마음도 못지않게 떨립니다. 어쨌든, 무사히 한 주를 보내고 주말이 왔네요. 한 주 내내 주말이 왔으면 하고 바랐는데요. 막상 주말이 오니 기말고사 문제 출제에 책 원고 최종 교정까지 바쁘긴 매 한 가지입니다. (눈물이…)
이럴 때가 바로 시 처방이 필요한 순간이지요. 이번주에 드릴 시는 '어제 죽었다면(이문재)'입니다. 제목부터 강렬하지요? 그런 질문은 흔합니다. '만약 내일 죽는다면 지금 무엇을 가장 하고 싶은가?' 이 질문을 받은 사람들은 마치 약속이나 한 듯이 비슷한 답을 해요. '사랑하는 사람과 시간을 보내겠다, 가장 좋아하는 음식을 가장 좋아하는 사람과 함께 먹겠다, 소중한 사람에게 전화를 걸어 사랑한다고 고마웠다고 말하겠다' 등. 아마 지금 이 글을 읽으시는 분들도 '내일 죽는다면'이라는 질문에는 비슷한 답을 하실 것 같아요.
'어제 죽었다면(이문재)'에서는 질문을 바꿔야 한다고 합니다. 아주 단호하게, '질문을 바꿔야/다른 답을 구할 수 있다'라고 해요. '내일 죽는다면'이 아니라, '어제 죽었다면'으로 질문을 바꿔보라고 합니다. 이 시를 읽고 스스로에게 질문해 봤어요.
'내가 어제 죽었다면?'
내일에서 어제로 시간이 바뀌었을 뿐인데, 답이 달라졌습니다. '내일 죽는다면'이라는 질문 앞에서는 '내 감정'을 먼저 살폈어요. 내가 덜 후회하기 위해서, 내가 미련을 덜 갖기 위해서 사랑하는 사람을 찾고 사랑하는 사람에게 내 마음을 쏟아놓고 가야지,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어제 죽었다면'이라고 묻자, 덜컥 겁이 났어요. 남겨질 사람들의 마음이 떠올랐거든요.
평생 저를 위해 당신의 삶을 희생한 우리 엄마, 엄마만큼이나 저를 사랑하고 아껴주는 남편, 축복처럼 제게 온 두 아이, 마음을 나눈 친구들과 동료들까지. '내가 어제 죽었다면' 그들의 마음에 얼마나 큰 슬픔의 그늘이 드리울까 생각하게 됐어요. 그들이 떠난 저를 생각하면서 조금이라도 덜 아플 수 없을까, 생각해 봤지만 그건 불가능한 일이었습니다.
가까운 누군가의 죽음은 언제나 가까움의 거리만큼 크고 깊을 테고, 그 슬픔은 제가 대신할 수 없는 남은 이들의 몫이겠지요. 제가 살아있는 동안 어떤 노력을 기울였더라도 남은 이들의 슬픔을 덜어줄 방법은 없을 겁니다. 그렇다면 질문이 다시 돌아옵니다.
'내가 어제 죽었다면?'
남은 이들이 저를 추억하며 슬퍼하는 동안에도, '아, 그래도 진아는 참 열심히 살다 갔어. 진아는 참 좋은 사람이었어. 내가 진아를 알았던 건 축복이었어.'라고 생각할 수 있다면 어떨까, 하는 욕심이 생깁니다. 다행히 저는 아직 살아있고, 적어도 아직까지는 죽음이 아득합니다. 아주 먼 훗날(그랬으면 좋겠습니다), 제가 떠나고 남은 자리에서 저를 추억할 만한 이들에게 조금 더 좋은 사람으로 남을 기회가 남아 있어요. 오늘을 더 즐겁고 재밌게, 따뜻하고 친절하게, 열심히 최선을 다해서 살고 싶다는 다짐이 섭니다.
시에서는 질문을 바꾸면 답이 달라진다고 했지만, 본질적으로는 같은 답을 내리게 돼요. '내일 내가 죽는다면'이나, '내가 어제 죽었다면‘이나 결국 죽음을 생각한다는 맥락에서 보면 같은 답으로 귀결될 수밖에 없을 것 같아요. '후회 없는 오늘을 살자!'라고 마음먹게 되거든요. 내가 덜 후회하기 위해서든, 남은 이의 슬픔이 마냥 슬픔은 아니기를 바라는 마음이든, 그 이유가 무엇이든 간에요.
죽음을 생각한다는 건, 결국 '삶'을 생각한다는 말입니다. 메멘토 모리(죽음을 기억하라)도, 카르페 디엠(현재에 충실하라)도 모두 같은 맥락인 셈이에요. 니체의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니체)'를 다 이해하지는 못했지만, 결코 잊히지 않는 한 문장이 있습니다. '영원의 오솔길은 굽어있다'인데요. 해당 부분을 오랜만에 다시 찾아보았습니다.
모든 것이 가고, 모든 것이 되돌아온다. 존재의 수레바퀴는 영원히 굴러간다. 모든 것이 죽고, 모든 것이 다시 꽃핀다. 존재의 세월은 영원히 흘러간다. 모든 것이 꺾이고, 모든 것이 새로 이어진다. 존재의 동일한 집이 영원히 지어진다. 모든 것이 헤어지고, 모든 것이 다시 서로 인사한다. 존재의 순환은 자신에게 영원히 충실하다. 존재는 매 순간 시작한다. 저기라는 공이 모든 여기의 주위를 굴러간다. 어디에나 중심이 있다. 영원의 오솔길은 굽어있다.(프리드리히 니체,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중, 건강을 회복하고 있는 자, 340쪽)
과거의 저는 이 부분을 읽고 이런 메모를 남겨 놓았습니다.
오늘을 살아야 한다. 어느 지점이나 시작점이 될 수 있고, 종착지가 될 수 있다. 오늘의 일을 내일로 미루지 말고, 어제의 일로 오늘을 저버려서는 안 되며, 내일의 일 때문에 오늘을 흘려버려서는 안 된다. 과거와 현재, 미래는 결코 직선에 놓인 시간이 아니며, ‘영원의 오솔길은 굽어 있다.’
언젠가부터 죽음에 대해 자주 생각했고, 그만큼 오늘을 열심히 살아야겠다는 다짐을 자주해왔던 것 같아요. 오늘의 시 '어제 죽었다면' 덕분에, 정신없이 바쁘던 일상에 쉼표를 찍고 죽음을 떠올려본 하루였습니다. 그렇게 오늘의 삶을 다시 한번 돌아본 하루였어요.
여러분도 질문을 한 번 바꾸어보세요.
'만약 내가 어제 죽었다면?'
* 함께 읽으면 좋을 시
꽃이 나를 보고 있다(김용택)
꽃에 물을 주며 생각한다
지금 꽃에 물을 주는 일을
성실하게 이행하자
다음에 할 일을 지금 생각하다보면
꽃에 물 주는 일을 서두르게 되고
꽃에 물주는 일이 허술하게 된다
그러니까, 지금 꽃에 물을 주며
딴생각하는 내가
나를 타이르는 것이다
꽃이 나를 보고 있으니까
출처: <모두가 첫날처럼>, 문학동네, 2023
* 함께 읽으면 좋을 책
1. 소설: <해가 지는 곳으로>(최진영)
2. 인문: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프리드리히 니체)
3. 인문: <라틴어 수업>(한동일)
* 매거진 [삶의 맛을 바꾸는 시 한 스푼]은 일주일에 한 번, 한 편의 시와 저의 단상을 엮어드리는 매거진입니다. 함께 읽으면 좋은 시와 책도 소개해드려요. 이 매거진은 매주 주말에 발행합니다. 항상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