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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아 Aug 13. 2024

[사회과학서] 당연하다 생각한 것에 물음표를 던지는 책

<가족 각본>(김지혜)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을 바꿔준 몇 권의 책이 있습니다. <사피엔스>, <월든>, <그리스인 조르바> 예요. 누가 들어도 ‘아, 그 책!‘ 할 만큼 유명한 책들이지요. 그리고 또 한 권의 책이 <선량한 차별주의자>(김지혜)입니다.


<선량한 차별주의자>를 읽은 후, 저는 절대 ‘결정장애’라는 말을 쓰지 않아요. 아무렇지 않게 사용하던 그 단어에 담겨 있는 혐오적 시선을 알고 난 후, 그 단어가 쓰인 글만 봐도 마음이 쿵 내려앉을 만큼 민감해졌습니다. 결정장애라는 단어와 관련된 에피소드는 프롤로그에서 등장하는데, 프롤로그에서부터 충격적이었던 책은 실로 얼마 되지 않지요. 이후 학교 수업에서 책의 일부를 읽기 자료로 활용하기도 하고, 학교 도서관에 복본으로 구입해 두고 아이들에게 꼭 읽어봐야 할 책으로 소개하기도 했습니다.


오늘 소개해드릴 책은 <선량한 차별주의자>의 김지혜 작가님의 신간 <가족각본>입니다. (신간이라기엔 이미 일 년쯤 지났지만요.) 이번 책은 ‘가족’이라는 키워드에 초점을 맞춘 책이에요. 책을 읽다 보면 자연스럽게 ‘아, 우리가 가족이라는 이름하에 얼마나 잘 짜인 차별적 각본의 배우가 되어 살아가고 있는가’ 생각할 수밖에 없게 만드는 책입니다. 이제껏 혈연으로 이어진 가족만큼 자연스러운 관계란 없다고 생각해 왔지만, 실은 우리 사회에서 ’ 가족‘이라고 규정된 관계가 얼마나 부자연스러운 각본인지 깨닫게 됩니다.


책은 동성혼과 관련된 이야기부터 풀어가지만, 실제로 이 책에서 말하고자 하는 궁극적인 내용은 동성혼을 찬성한다는 정도의 작은 메시지가 아닙니다. 가족이라는 단어 앞에 당연하게 붙어 있지만 실제로는 잘 보이지 않는 ‘정상’이라는 단어가, 얼마나 다양한 공동체를 배제하고 차별하고 있는지 명백하게 보여주는 데 초점이 있어요.


저는 한부모가정에서 자랐습니다. 부모님은 제가 열 살이 되던 해에 이혼을 하셨지만 사실 이미 한참 전부터 두 분의 혼인은 파탄난 상황이었어요. 이미 수 년째 두 딸을 혼자 키우던 엄마가 이혼 서류에 도장을 찍지 못했던 것은 저와 동생을 ‘결손가정’의 자녀로 만들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었습니다. 당시에는 이혼가정을 한부모가정이 아니라 결손가정이라고 불렀습니다. 한부모가정이라는 단어에도 차별적 요소가 다분하지만, 결손가정이라니. 무언가 모자란 가정이라는 것을 못 박아버리는 용어에 가슴이 턱 막히네요.


사회적 시선이 많이 개선되었다고 하나, 여전히 한부모 가정을 바라보는 시선은 ‘비정상가족’에 가깝습니다. ‘정상가족’이 되려면 반드시 부모와 자녀가 함께 있어야 하며, 여기서 부모는 이성부모라는 것이 전제되어야 하니까요. 한부모가정은 이미 한쪽 부모가 없다는 말이므로 비정상가족일 수밖에 없습니다.


‘한부모가족, 입양가족, 재혼가족, 이주배경가족, 조손가족, 비혼가족, 동성커플가족, 트랜스젠더가족‘ 등 모든 가족은 가족의 ’위기‘나 ’해체‘, 혹은 ’붕괴‘의 결과가 아니라 다양한 삶의 양식이다. 그런데 가족각본이 이러한 삶을 열등하고 비정상적이라고 규정하고 낙인을 새기고 차별을 정당화한다. 국가가 특정한 가족 형태를 ’건강가정‘이라고 명명하며 ’ 만들어내는‘ 이 불평등을 어떻게 할 것인가.(191쪽)


책에서 던지는 질문이 묵직하지요. 저는 제가 경험해 온 세계이기에 더욱 무겁게 느끼는지도 모릅니다. <가족각본>은 분명 누군가에게는 매우 불편한 책입니다. 정말 너무 불편해서 읽고 싶지 않은 책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책에서 던지는 질문, 그리고 우리가 나아가야 할 답의 방향은 2024년을 살아가는 우리 사회 구성원 모두가 생각해봐야 할 문제임이 틀림없습니다.


당연한 것을 다시 보게 하는 책, 질문을 남기고 고민하게 하는 책은 좋은 책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 기준에서 <가족각본>은 정말 좋은 책이 아닐까 해요. 불편함을 느끼는 분들일수록 꼭 읽어보셨으면 좋겠습니다. 그래서 조금은 다른 방향으로 고민하고, 생각해 볼 수 있는 기회가 된다면 더할 나위 없겠습니다.




저는 내일부터 한 달 동안 긴 휴가를 떠납니다. 이번 휴가는 기간이 긴 만큼, 여행이라기보다는 새로운 곳에서 새로운 일상을 꾸린다는 생각으로 떠나고자 합니다. 새로운 일상을 꾸리려다 보면 기존의 일상은 잠시 내려놓아야 하겠지요. 그래서 앞으로 4주간은 정기적인 연재를 쉬고자 합니다. 하지만 새로운 곳에서 좋은 책을 만난다면, 예고도 없이 불쑥 나타날지도 몰라요. 그런 날은 조금 더 반갑게 맞아주시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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